김민한/김민환(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
저는 장흥에서 나고 자랐지만 지금은 완도 조그만 섬에서 저녁놀을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황혼녘에 멀리 고깃배가 지나갑니다. 돛단배가 아니라 고속엔진을 단 신식 배지만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 아름다운 그 어부는 그 스스로도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夕陽明遠島 먼 섬에 석양 밝은데
天外小帆遲 하늘밖 작은 배 더디 가네
望者爲佳興 보는 이 가흥에 젖는데
漁人自不知 어부는 그걸 알까
제가 지은 한시가 아닙니다. 오늘 학술회의의 주제가 된 반곡 정경달 선생의 어옹(漁翁)이라는 시입니다. 임진왜란의 영웅인 반곡이 이런 아름다운 시를 지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반곡이 장흥 출신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친구 하나가 있습니다.
반곡의 혈손인 고등학교 동기 정훈상이 바로 그입니다. 지금은 만날 수 없는 곳에 가있지만 반곡을 알게 해준 그 친구가 새삼 고맙고 또한 몹시 그립습니다.
몇 해 전에 저는 반곡문집이 고이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 이 문집의 번역출판을 권한 적이 있습니다. 고맙게도 원장이던 고려대 철학과 조성탁 교수께서 제 청을 받아들여주셨고, 재작년에는 박종우 박사 손을 거쳐 『반곡 정경달 시문선』 1,2 집이 번역되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저는 그 책이 나온 뒤로 때때로 시 몇 편을 골라 읽으면서 시인 반곡의 시심을 훔쳐보곤 합니다.
오늘은 저에게 매우 기쁜 날입니다.
시인 반곡의 얼굴이 아니라 반곡의 다른 얼굴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다산이 말했듯이 반곡은 장흥을 대표할 만한 인물입니다.
앞으로 우리 선인의 진면목이 올곧게 조명되기를 기대합니다. 이런 기회를 만들어주신 정종순 장흥군 군수님과 서울대 정근식 교수님께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