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읍 덕재마을/ '자울재 아래 장단등이 있는 장수마을'
장흥읍 덕재마을/ '자울재 아래 장단등이 있는 장수마을'
  • 전남진 장흥
  • 승인 2018.06.08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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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충선/사진-마동욱

장흥읍 덕제마을
장흥읍 덕제마을

 

누렇고 울긋불긋한 가을색이 완연 한 들길을 지나 덕제마을회관 앞으로 가니 벌써 회관 방안에 아재아짐들의 목소리가 떠들썩하다. 열 명이 넘는 아짐아재와 할머니들이 빙둘러 앉아 있다. 여느 농촌마을과 같이 65세 이 상 어른들이 다수인데, 그 가운데 마을에서 가장 나이를 많이 드신 98살 위극린 할머니도 조용히 앉아 계신다. 아직 정정하시고 귀도 잘 들리신단다. 할머니의 목소리로 그 오래된 세월을 듣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만 젊은 아짐들의 이야기에 침묵하고 있는 할머니의 고고한 몸가짐이 아름다워 참 기로 한다.

김도선(48세) 이장은 미리 마을사람 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자료를 찾아 세 쪽 분량의 마을이야기를 정리 해 가져왔다. 앞으로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서 더 풍부하게 마을의 역사와 문화을 취합해 보겠다고 한다. 젊은 이장의 패기다. 직장을 그만두고 농사지으며 마을에 사는 이장의 즐거 움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일 것이다. 내가 개입할 틈새도 주지 않고 젊은 이장이 주도하며 오래되고 새로운 마을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난 조금 섭섭했지만 편했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냥 들으며 핸드폰의 녹음기를 틀어놓았다.

마을이야기를 쓰는 일은 기억을 불러와서 서로 왁자지껄 줄다리기를 하는 말들의 수다다. 이제 시작해 보자. 말하는 사람의 이름 없이 말들의 풍 경을 즐겨보자.

“여그는 장수마을이어 갖고 어른들만 많고 젊은 사람은 나 혼자랑께.”

“남자들은 술을 좋아해갖고 다 돌 아 가셔불고, 세 명 계시구마, 세명...”

“사람들이 많이 살았는디 머여 석산 하고, 공기 머시기 하면서 많이 죽어 부렀어.”

“그 전에 큰 문제가 없었는디, 좋은 물 묵다가, 암이여 나부터 차근차근 늘 자빠진당께.”

“그라믄 그 물을 남자들만 묵었스까, 여자들은 멀쩡한디 왜 남자들만 죽어 불까.”(하하하)

“광주 사는 우리 딸이 그래, 엄마 엄 마 덕제 무섭다, 그래, 왜야 그란께, 왜 어르신들이 다~아 돌아가셔불고 암도 없냐, 그래, 참말로 동네가 짱짱하고 좋았는디 다 돌아가셔불고...”

다음은 덕산제라 불린 저수지 이야 기다. 옛날에는 인근의 송산마을 평장 마을까지 그 저수지물로 농사를 지어 먹었다고 한다. 지금 송산개발의 석산 앞에 있는 저수지다. 가슴 아픈 이야 기가 여러 사람의 기억 속에서 쏟아져 나온다.

“옛날 어른들 얘기 들어본께 저수지 얘기를 많이 하시등마. 저수지가 두 번이 터졌다며, 난리가 났다며, 그란 디 맨 처음 터진 시점을 잘 몰라. 두 번째는 군청에다 전화해본께 64년도에 터졌다고 하등마, 이름이 덕산제라 고 해갖고 나와있등마. 저수지가 맨 처음 터졌을 때 뚝 공사를 하다가 두 분이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

“너이, 네 명이여.” “어지께 까지 두 명이었는디 네 명이여.”

“열 멧살 총각이 한 명 죽고 어른들 서이가 죽었어.” “어매매...많이도 돌 아가셔부렀네.”

“인제 추운께 얼었다가 녹아갖고 허물어진께 묻혀 버렸제, 머.” “오매오 매...”

“함몰양반은 죽을라다가 살고, 거 어작난디 거그다 따악 붙여분께 살았더 라고...”

너나없이 쏟아내는 옛날이야기가 끝이 없다. 이제 함께 일하고 함께 놀았던 즐거운 이야기로 넘어간다. 다들 그때가 좋았다고 난리다. 다들 할 말이 많아 말이 섞이니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라고라, 이제 아짐들이 잘 알겄는디, 예날 품아시 한 거 얘기해 보 게. 그거시 언제까지 했능고, 마지막이...” “나 시집 와서 멧 년 동안 댕겼슨께...”

“이앙기 나옴서 없어져부렀제.” “그 시점이 언제 이까, 애기로 계산해 봐...”

“우리 애기 어렸을 때닌까 27년 전이나 되까, 나 시집와서 몇 년 더 했당께.”

“우리 아들이 82년생이여, 성환이가, 그란께 성환이 난 뒤로도 모심고 댕 겼당께.”

“우리 재인이가 서른일곱이거든, 작은 딸이, 그거 세 살 묵을 때까지 손모를 심갰어.”

“옛날에는 모를 심으믄 잔치여, 콩을 너 갖고 밥을 해서 감재 너서 갈치 지 지고, 간재미회 무쳐갖고 막걸리에다 묵고, 그 재미로 모를 심어.” “밥이 요래.”(양손을 크고 둥그렇게 하며)

“그건 암또 아니여, 애기들 미길라고 밥 때만 되믄 전부 업고 나오고...”

“그때는 임종철씨라고 계셨어요. 그 분이 모 심으믄 항상 노래를 하고, 그 분은 모 안 심고 꽹가리 치고...” “마 저 마저...”

“쪼깐 살 때여, 우리 아들을 나 놓고 우리 모를 심어, 닭을 멧 마리 때러 잡아갖고 죽을 써 갖고, 그것을 묵으며 장구 치고 논거여, 장구 까지 쳤당께 모 심으믄...”

“그때가 재밌섰는디 말이여.” “그때가 좋았어.” “아야, 기운도 파딱파딱 하 고...”

용산에서 자울재를 넘으면 왼쪽으로 덕제마을이, 오른쪽으로는 송산마을이 있다. 행정구역도 그렇고 활발한 생활 속 교류로 보면 덕제마을이 자울재와 훨씬 관련이 깊을 것이다. 장날이면 저 자울재를 넘어 걸어서 용산장, 대 덕장까지 비단장사를 다녔던 이극린 할머니(98세) 얘기도 나온다.

“자울재 내려오는 길에 술집이 한나 있었는디, 거그 색시까지 있었다등마, 가 보셨소.”

“집이 세 채가 있었어, 아니 우리 그 때 나락 실꼬 다니고, 나무도 폴러 다 니고, 대덕서부터 소장사들이 전부 술 묵고 요리 내려와...”

“그때가 정 있고 좋은 시절이었다고...”

“자울재는 걸어 다녔지라, 여기 할머니는 장사 하러 그때 재를 넘어 다녀 스까.”

“많이 걸어 다녀서 건강 하신갑다.” “그렇채, 많이 걸어 다녀서 건강하시 고 노래를 부르고 계산을 했기 때문 에 저렇게 건강하시제.” “치매기가 없 제.” “새복에먼 장사 나가제 관산장에, 걸어서 대덕장까지.” “새복바람이 그렇게 좋았등거여.”

"지금도 지팽이도 안 딛고 다니세.“ ” 잘 들리시고 웬 만한 사람들 보다 소통이 잘 되셔.“

오래된 과거는 먹고 사는 일은 힘들었을지라도 누구나 젊었고 기운도 “파딱파딱”했기에 꽃 같은 시절로 기억된다. 더구나 함께 노동하고 함께 밥을 나누어먹고 함께 춤추며 놀았 기에 즐거웠을 것이다. 이야기가 끝이 없다. “업고 가든 보듬고 가든” 어르신들 모시고 돌아가시기 전에 어 디 마을사람들 놀러가자고 젊은 아짐들이 성화다. 김도선 이장은 11월 1일 군민의 날 행사 때 만나 회의를 해 서 결정하자고 부드럽게 아짐들의 성화를 잠재운다. 이야기의 폭탄을 맞고 정신 차려 회관 밖으로 나와 마을사람들 단체사진을 찍었다. 자연스런 그 림은 아닐지라도 기록이니 찍자고 했 다. 아짐들의 우스개 소리가 끝이 없다.

”또 박을 거시요.“ ”또 박은다 하요.“ ”아하하하“(아짐들의 웃음소리)”왐마 또 박어야 쓸란 거시네.“ ”박자할 때 박을 거슬...“(어떤 아짐의 노랫가락)

마을사람들과 헤어지고 김도선 이장과 마을길을 걸었다. 오래된 골목길을 걸었다. 나이를 많이 먹은 마을사장나 무들이 가을색을 은은하게 표현하며 서 있다. 자울재 쪽으로 장단등이 보인다. 장단등에서 장단을 때리고 마을사람들이 춤추며 노래하는 시절이 다시 오긴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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