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광복 75주년-무계 고영완 명명의 도로명 추진하자
■사설 : 광복 75주년-무계 고영완 명명의 도로명 추진하자
  • 김선욱
  • 승인 2020.07.30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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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장흥의 대표 위인 무계 선생의 현창사업도 추진되길
’무계(霧溪) 고영완(高永完) 선생

오는 8월 15일, 광복 75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광복회광주시지부에서 장흥군으로 협조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이 공문은 ‘제75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애국지사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기리고 후대에 불멸의 가치를 계승시키기 위하여 독립유공자 도로명 명명을 요청한다”는 내용과 그 해당 독립유공자를 ’무계(霧溪) 고영완(高永完, 1914~1991)’ 선생으로 지정하면서 “장흥이 낳은 독립 유공자 무계 고영완 선생의 성명으로 장흥 지역의 도로명‧공원명을 명명하여 주길 희망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무계 선생 독립유공자 공훈록, 무계 선생에 대한 소개문, 광주전남 독립유공자 도로‧공원명의 지정 사례 등을 함께 첨부하여 보냈다고 한다.

광주 전남의 경우, 독립유공자 이름을 명명한 도로명이 20여 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암에는 독립운동가 낭산 김준영 선생의 호를 명명한 ‘낭산로’가, 보성에는 송재 서재필 선생을 명명한 ‘송재로’와 흥암 나철 선생을 명명한 ‘흥암로’가, 화순에는 기미독립 선언 33인 중 한 분으로 독립투사였던 지강 양현묵 선생을 명명한 ‘지강로’ 등이 그 본보기다.

그런데 장흥군에는 독립투사 성암 김재계, 무계 고영완 선생이 있음에도 도로명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고대의 위인 중 존재 위백규, 반곡 정경달, 기봉 백광홍 선생을 명명한 도로명도 없다.

‘문림의향(文林義鄕)’이요 ‘의향(義鄕)’이라 자처하는 장흥과 의향(義鄕)‧예향(禮鄕)‧다향(茶鄕)의 삼보(三寶)로 자처하는 보성의 의향에 관한 역사 인식이 여기에서도 극명하게 대비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즉 역사의 위인이요 의인을 현창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는 면에서도 장흥과 보성은 큰 차이가 있다.

역사 위인·의인의 현창 사업의 하나가 그 인물에 대한 기념관 조성이라고 할 수 있다. 보성의 경우, 고대 인물로 이순신 장군의 장인이요 보성 군수였던 방진을 기념하는 방진기념관을 비롯하여 근현대 인물인 서재필의 서재필기념관, 홍암 나철의 나철기념관, 채동선의 생가 및 음악당, 백범 김구 은거 기념관 등을 조성하여, 보성이 의향임을 대내외에 강력히 내세우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보성의 의향으로서 현창 사업 등이 2020년 전남도의 의병공원 조성 유치전에서 당당히 2위를 차지하는 동인(動因)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장흥은 어떠한가. 역사의 위인·의인으로 반곡 정경달 선생을 비롯하여 기봉 백광홍‧존재 위백규 선생, 근현대에서 성암 김재계‧무계 고영완 선생이 있었으나 이들에 대한 기념관 하나 조성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몇몇 역사 인물로 위인이라 불릴 수 있는 경우는, 당대의 명사로 뛰어난 학문적(사상적) 업적과 본보기가 될 정도의 삶을 구현한 사람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러한 위인 중 더욱 평가받는 위인이라면 자기 학문의 궁구는 물론 후학의 양성과 당대의 사회발전을 위한 공익정신을 실행한 분들이었다. 논자는 후자 같은 위인이야말로 진정으로 후인들에게 더욱 본보기요, 사표(師表)가 되는 분들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장흥의 유구한 역사에서 이런 위인이 두 분이 있었다. 한 분은 조선조 중기 천방(天放) 유호인(劉好仁) 선생이었다. 천방은 자기 학문인 성리학을 중심으로 후학 양성에도 주력, 장흥 역사상 최초로 학맥을 일구었던 분이었다. 천방 선생의 제자였던 분들로 정경달(丁景達)을 비롯하여 백문린(白文麟), 위홍주(魏弘宙), 위덕의(魏德毅), 이섬(李暹), 김지주(金砥柱), 문희개(文希凱) 등 각 집안의 파조나 파조에 버금가는 당대의 명사들이었다. 천방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그 제자들의 자제들은 물론 만수재 이민기(李敏琦)도 그의 학통을 이었으니, 천방은 실로 장흥에서 3대에 걸쳐 학맥(學脈)을 이루었던 유일한 인물이었다. 이처럼 천방 선생은 이들 장흥의 각 성씨며 각 사족의 자제들에게 성리학을 전수하고 교육하여 그의 학문 및 문학이 후대에까지 널리 전승될 수 있게 하였다.

두 번째 위인으로 근현대에서 후학양성과 함께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크게 공헌한 무계(霧溪) 고영완(高永完)선생이 있었다.

무계 선생은 장흥의 대표적인 독립유공자요, 장흥군의 초대군수, 2대 국회의원(제2대, 제5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가였지만, 당대 이러한 명사로서 뿐만 아니라 후학 양성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공익사업에도 헌신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장흥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의인이요 위인이었다.

무계 선생은 장흥중학교 설립 부지 마련을 위해 전답 100두락을 무상으로 희사하였으며(현 시가 40억원 상당),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해 장흥농업기술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이를 위해 사재를 털어 농장 및 임야, 전답 3만 평을 실습용으로 내놓았고 옛 장흥부 동헌 터를 임차하여 장흥농업기술학교를 설립하였다).

무계 선생은 후학양성에서 그치지 않았다. 무계 선생은 농촌마을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1,600평의 전답을 마을에 희사하였으며(현 싯가 8억원 상당), 군청 앞에서 평화리 도로개설 때 도로 편입토지 3,000여 평을 희사하였다(현 시가 20억원 상당). 선생이 지역사회를 위해 사재를 털어 희사하고 기탁한 금액만 현 시가로 70억원 상당이다.

무계 선생을 잘 아는 강수의(姜守義) 전 장흥문화원장(제3대∼제6대 문화원장)은 “…그분은 정치인이라기보다 차라리 강직하고 고매한 선비였다. 큰 이익을 남기는 일이라도 옳지 않는 일이라면 절대 야합하지도 않았던 강직하고 진정한 의인(義人)이었으며, 장흥중학교 부지며 장흥의 공적 사업에 많이 기부하기도 했던 장흥에서 보기 드문, 대표적인 독지가요, 덕인德人이요, 만인의 사표(師表)였다”고 평가한 적이 있었다.

이번, 광복 75주년을 맞아 광주전남광복회가 공식적으로 장흥군에 무계 고영완 선생을 명명한 도로명을 요청했다.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부터라도 장흥군에서도 무계 고영완 선생의 이름의 도로명 지정 추진을 비롯하여 무계 선생의 기념관 조성, 무계 선생 조명 학술대회 등 무계 고영완 선생의 독립정신 및 의인정신을 조명하여 널리 기리고 현창하는 사업이 본격 추진되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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