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리와 상리 중간에 위치 中里(중리)로 불리어졌던 마을
원도리와 상리 중간에 위치 中里(중리)로 불리어졌던 마을
  • 김선욱
  • 승인 2018.08.0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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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우리마을/ 장흥읍 축내리
탑이 있어 ‘탑동’으로 불리어진 자연마을 탑동도 축내리에 병합 돼
조선조 왕께 진상되던 방죽 밑 늪지서 재배된 미나리-마을 특산품
축내리 본마을
축내리 본마을
축내리 탑동마을
축내리 탑동마을

■마을 현황

현재 53호에 인구는 93명(남-48 여-45)에 이른다. 그런데 전체 53호 중 농가가 6호에 지나지 않아(비농 16호, 상업 5호 기타), 이 마을 역시 도시권으로 편입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산물은 미나리인데, 마을 팡 방죽 밑으로 펼쳐진 늪지를 이용한 미나리 생산은 원도리와 함께 질량적으로 장흥군의 특산품이 되고 있다. 한때 이곳에 생산된 미나리는 왕실에 진상품이 되기도 했다.

■마을 환경

축내리(築內里)는 장흥군청 소재지로부터 북동쪽으로 4㎞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마을 바로 밑으로는 원도리, 관덕리가 잇대어 있으며 마을 위로는 상리가 위치한다. 축내리 동북쪽으로는 장흥바이오산단이 조성되어 있다.

축내리는 축내 마을과 탑동 마을로 구성되었다. 축내 마을은 장흥읍에서 금산리 등으로 올라가는 도로변에 위치한다.

탑동 마을은 축내 마을로부터 남동쪽으로 500m 떨어진 중령산 기슭의 야트막한 구릉 위에 위치하고 있다. 탑동 마을은 지형이 소쿠리 형국으로, 마을 주민이 화복한 가운데 농업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설이 전해오고 있다. 또 부자가 되면 마을에서 떠나야 한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차면 비워야 한다’는 삶의 철학이 담겨 있는 말로, 큰 욕심이 없이 베풀며 살아야 한다는 소박한 진리가 담겨 있다.

■마을 연혁

축내리는 1067년(고려 문종21) 이후 정부의 공공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치된 교통 통신기관인 역참(驛站)의 마방(馬房)의 말을 먹이기 위한 저수지를 만들었는데, 이 저수지가 있어 방죽안 또는 축내(築內)로 부르는 마을과 1310년(고려 충렬왕 2년) 경에 이 동네 안에 탑이 있어 이 마을 이름을 탑동(塔洞)이라고 부르는 두 마을이 통합되어 이루어진 마을이다.

방죽안은 1067년경(고려 문종21) 벽산역(碧山驛)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관덕리 동백

(觀德里 冬柏)’ 마을이 형성되기에 이르자 도로를 따라 역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산발적으로 관덕리 부근에 거주하게 되면서 마을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면서 마을 이름을 역촌(驛村)이라 불리었다.

이후 1457년에 벽산역(碧山驛)이 벽사역(碧沙驛)으로 이름이 바뀌고, 찰방(察訪)이 집무하면서 전라좌도(全羅左道) 9개소의 역승(驛丞)을 관리하게 되어 보다 많은 역무를 수행하는 종사자가 늘어나 마을이 확대되기에 이르자, 찰방이 집무하던 관아(官衙)와 마방(馬房)이 있는 곳이 중심이 되면서 ‘벽계중리(碧溪中里)’라는 마을 이름이 1896년 역참제(驛站制)가 폐지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이후 1910년 경에 이르러 벽사역 관아와 마방 그리고 벽사찰방의 소유처(逍遊處)이던 동백사(冬柏榭)가 있는 곳을 관덕리(觀德里)로 분리시키면서 중리(中里)라는 마을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 당시 중리에는 김해 김(金)씨와 온양 방(方)씨가, 탑동(塔洞)에는 김해 김(金)씨, 여산 송(宋)씨, 영광 정(丁)씨가 거주하고 부동면(府東面)에 속한 것으로 장흥읍지(庚戌誌)에 나타나 있다. 중리(中里)와 탑동(塔洞)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두 마을을 합하여 축내리(築內里)가 되었다가, 1949년 7월 지방자치법이 제정되어 장흥읍조례에 의하여 중리(中里)를 축내1구(築內1區)로 탑동(塔洞)을 축내2구(築內2區)로 나누어 운영하였다.

1960년에 축내1구와 축내2구를 다시 합하여 축내리(築內里)가 되었다. 현재는 옛 마을 이름인 방죽안과 탑동으로 나뉘어 2개 반을 운영하고 있다.(양기수 글)

■마을의 변천-개발사

축내리 사람들
축내리 사람들
축내리 사람들
축내리 사람들

1970년 경 축내리(방죽안)에는 김해 김씨 8호를 비롯하여 기타 성씨 20여 호에 주민 140

여 명이 살았으며, 탑동마을에는 김해 김씨 5호, 온양 방씨 5호, 기타 성씨 17호 등 모두 30여 호에 110여 명의 주민이 살았으나, 현재는 탑축내리와 탑동마을을 합친 전체 주민은 53호에 93명이 거주하고 있다.

도로(신작로)는 1995년에 마을 진입로 등 마을 도로가 확포장 되었으며 2015년 바이오산단 개발 이후 산단 진입로 확포장 공사로 마을 앞 도로가 2차선으로 개설되었다.

지붕개량은 1970년대 새마을 개발사업으로 초가집에서 지붕은 기와, 스레트 양철 지붕으로 개량되거나 슬라브 벽돌집으로 개량 신축되었으며, 1985년에 스레트 지붕 등 철조 기와 등으로 개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난방은: 1970년 까지 전 주민이 땔감으로 난방해결을 하였다. 땔감은 주로 제암산 영골재나 탁골재 등에서 확보하였다. 이후 1980년대부터는 연탄으로 난방을 대용하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부터는 연탄, 화목, 석유 보일러 등으로 교체하였으며, 일부 가옥에서는 태양광이나 태양열 온수 시스템을 설치해 사용해오고 있다.

식수는 각 가정마다 자가로 지하수를 개발해 사용해오다가 2012년에 광역상수도가 보급되었다.

주택은 1970년도에 초가집의 지붕을 함석, 스레트 등으로 대부분 개량하였고, 1980년도에 들어서며 시멘트 기와지붕으로 개량되었고 1990년도에 들어서며 슬라브조 집이나 콘크리트집이 개축 및 신축되고 있다.

전기시설은 1971년에 마을 전체 가구에 전기 시설이 완비되었으며 1990년도에 마을 앞 도로변이나 주요 골목에 모든 가로등이 설치되었다.

버스운행은 2010년 경부터 장흥읍에서 원도리, 관덕리를 거쳐 상리, 금산리로 올라가는 마을버스가 매일 6회씩 왕래하고 있어 주민들의 교통편의를 돕고 있다.

1948년까지 ‘남강서원’이라는 곳에 간이학교가 있었다. 마을 아이들 모두 초등학교는 장흥동초등학교에 다녔지만 2010년에 동초등학교가 폐교되면서 장흥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마을 인물들

▶역대 이장들 = ▷1963. 1. 1 최상량 ▷1983. 2. 1 김봉언 ▷1964. 3. 13 방재규 ▷1987. 4. 1 김호현 ▷1968. 8. 30 김 영 ▷1991. 1. 1 손재홍 ▷1975. 1. 1 김호현 ▷1991. 2. 1 방대일 ▷1976. 2. 1 방현식 ▷1980. 3. 1 방대일 ▷1993. 5. 1 방제수 ▷1977. 5. 6 김봉언 ▷2011. 1. 1 신명근 ▷방현식 2015. 1. 1

▶새마을 지도자 = ▷1980 ~ 1986 마준기 ▷1987 ~ 1997 김봉언 ▷1998 ~ 2008 정상채 ▷2009 ~ 2015 마준기 ▷2016 ~ 현재 방은식

▶부녀회장 = ▷1981 ~ 1985 신금초 ▷1986 ~ 1990 정행자 ▷1991 ~ 2016 김금순

▶마을 발전 유공자 = ▷방제수 : 마을이장 20년 복무 ▷김현관 : 노인회장 18년 복무

▶기타 인물 = •마율배 : 장흥교육청 서무과장 역임 •신진근 : 서울지방법원 부장 판사 •신두령 : 경찰서 수사과장 •방해곤 : 장흥군청 민원과장 역임 •마현욱 : 장흥초등학교 교장 •김춘식 : 장흥초등학교 교장 •신영도 : 장흥읍 신산부인과 원장 •정선지 : 영상의학과 전문의 •방열중 : GS 칼텍스 광주정유 소장 •방기식 : 해군 대령 •신명근 : 장흥군다문화가정 협의회장 •임종록 : 장흥신문사 편집국장, 장흥군재향군인회장 •김현우 : 곡성군 축협 전무(현) •방제기 : 경기도 안양시 늘푸른교회 목사(현) •방희숙 : 전남도지사 효부상표창

■문화 – 역사

탑동석탑
탑동석탑

▶탑동 석탑 : 축내리 155-1에 있는 승효재 재사(齋舍)안에 있다.

본래 생양사(향양리 188번지에 있는 절로 1997년에 재건되었다)에 있던 고탑으로, 생양 사가 폐찰이 되면서 축내리로 이전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현재 생양사지에는 3층석탑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설이 사실일 경우 생양사에는 쌍탑이 있었던 것으로 유추된다. 이 석탑으로 인해 이 마을의 이름도 탑동으로 불리어졌다.

본래 마을 어귀에 자리해 있던 이 탑은 언제인가 이곳에 문중 재실이 들어서며 담안에 가두어졌다. 전해지기로 본래 4층 석탑이었으나 지금은 3층만 남아있다. 조각 수법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어 불교사와 향토사를 밝히는데 도움이 되는 유물이다. 장흥군 향토문화유산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남강 유허비
남강 유허비

▶남강서원 : 축내 마을 건너편 저수지 위에 1948년까지 남강서원(간이학교)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서원을 졸업하면 초등학교 5학년에 편입할 자격이 주어졌다고 한다.

▶한사랑 교회

-주소 : 축내리 탑동길 11-11

2014년에 교회가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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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선욱 /사진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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