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마을 문화사(2) -다향 우려낸 ‘상선약수’ 마을의 문화사 고찰(중)
■기획/마을 문화사(2) -다향 우려낸 ‘상선약수’ 마을의 문화사 고찰(중)
  • 장흥투데이
  • 승인 2020.12.31 15: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산지/시인

고산지/시인, 장흥읍 평화리 출신

 

제2부 차뜽(茶嶝)의 전설(傳說)

차뜽(茶嶝)에

산정(山亭)을 짓고

동백(冬栢)나무로

치소(治所)를 가리었네

적송(赤松) 그늘에 푸른 이끼

방천 뚝 길 따라

추강(秋江)의 깊은 수심(愁心)

하염없이 흘러가네

창현(彰顯)한 석양빛

애틋한 습독공(習讀公)

풀벌레 울음에도

마음이 상(傷)하네

- 고산지 시 ‘차뜽(茶嶝)의 전설(傳說)’ 전문

1) 차뜽(茶嶝)과 산정제(山亭齋)

차뜽(茶嶝)이라 일컫는 평화촌(平化村) 다산등(茶山嶝)에는 장흥위씨(長興魏氏) 오현조(五顯祖)의 위패를 모신 하산사(霞山祠)가 자리하고 있다. 장흥위씨(長興魏氏)의 본래 세거지는 장흥읍 동동리 장원봉(壯元峯)자락의 장흥도호부(長興都護府) 치소(治所) 자리였다.

고려 말 판사공(判事公) 위충(魏种)은 이성계 세력을 뒤엎으려다 적발돼 고초를 당했다. 설상가상으로 중령산(中寧山) 인근에 있던 장흥부(長興府)가 도호부(都護府)로 1414년 승격되면서 치소(治所)가 비좁다는 이유로 세거지를 내주고 나와야 했다. 판사공(判事公)의 아들 통선랑공(通善郞公)은 우여곡절 끝에 장원봉(壯元峯)에서 평화촌 다산등(茶山嶝)으로 거처를 옮기었다.

판사공(判事公)의 현손인 습독공(習讀公) 유형(由亨)은 조선이 건국한지 한 세기에 가깝거나 넘을 때의 인물이었으나 관(官)을 의식하여 다산등(茶山嶝)에 산정(山亭)을 짓고 주변에 동백(冬栢)과 대(竹)를 심어 정자(亭子)를 가리었다.

건너편에 있는 치소(治所)에서 보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묘소 좌향(坐向)은 유향(酉向)으로 강진 화방산(華坊山)이 정봉이나 제대로 분간하기 어렵다. 묘소의 방향도 식별하기 어렵게 만든 것은 지방관료들의 핍박이 심해서 자기방어를 위한 방편들로 보인다. 습독공(習讀公) 유형(由亨)은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1454∼1492)과 산정제(山亭齋)에서 수작하며 지냈다.

2)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새해 벽두부터 흙비가 내리더니

지진과 홍수 등 천재지변 계속되고

철 잃은 복숭화가 가을에 피어나

뒤숭숭한 민심이 요동치던 날

무거운 침묵 속에서 한 소리가 일어나

천기(天氣)가 불순함은 소릉폐치(昭陵廢置) 때문이라 직언(直言)했네

"내가 저 사람의 도(道)를 배우려 하나 저 사람에게는 도가 없고

내가 저 사람의 학업(學業)을 배우려 하나 저 사람에게는 학업이 없다"고

직언(直言)한 스물다섯의 젊은 유생

세상은 그를 광동(狂童). 광생(狂生)이라 불렀네

세상이 싫어 무악(毋岳)에 올라 통곡하다

압도(鴨島)에 타루(柁樓)를 짓고 거룻배에 누워 술과 벗해 보지만

가슴에 쌓인 울분(鬱憤) 어찌할 수 없었네

고독(孤獨)과 실의(失意)를 털어내고자

금강산에 올라 설악을 밟고 송악을 지나 평양에서 단군(檀君)은 만났네

백마강에서 눈물짓고 지리산을 찾았네

남도의 끝자락 장흥(長興)에서 만난 강호의 친구들

낚시를 하다 한 잔 술에 흥(興)이 오르니

"천은(天恩)이 내리면 낚시를 접고

출사(出仕)하라 하네, 출사(出仕)를 하라 하네"

가난과 병마(病魔)가 여독(旅毒)에 묻어나 슬픔이 되고

소갈병(소渴病)에 목이 타서 물조차 마음대로 마실 수 없네

나락(奈落)과 같은 영락(零落)에 눈물도 마르더니

서른아홉 나이에 세상을 떠났네

육신 떠난 그의 혼백(魂魄) 행주를 떠도는데

무슨 미련 남아 있어 행주를 떠도는가

그의 스승 김종직은 "우리 추강(秋江)" 불렀었고

살아생전 생육신(生六臣)으로 매월당(梅月堂)과 벗했는데

세상은 그의 주검 편안히 두지 않네

갑자사화(甲子史禍) 연루되어 부관참시(腐棺斬屍) 형을 받고

시신의 뼛가루는 나루터에 뿌려졌네

미친 것이 세상인가, 백공(伯恭)이 미친 건가

두 번 죽은 우리 추강(秋江), 사육신(死六臣)에 버금가네

온갖 풍상 겪으면서 오백년이 흘렀으나

암각(巖刻)된 추강사우(秋江祠宇) 바위에 살아 있네

- 고산지 시 ‘추강사우(秋江祠宇)’ 전문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예양리 예양서원(汭陽書院) 뒤편 바위에 암각(巖刻)된 추강사우(秋江祠宇)의 추강(秋江)은 생육신(生六臣) 남효온(南孝溫)의 호(號)이다. 남효온(南孝溫)은 영의정을 지낸 남재(南在)의 고손자이며 예문관 직제학을 지낸 남간(南簡)의 증손이다. 조부 남준(南俊)은 사헌부 감찰을 지냈는데 부친 남전(南恮)이 벼슬을 못하고 31살에 생을 마감하였다. 모친은 영의정 이원(李原)의 손녀였다. 남효온은 소릉 복위상소(昭陵復位上疏)를 올린 후로 여러 곳을 유랑하며 살았는데 전라도에서는 특히 장흥에서 오래 머물렀다. 그는 장흥에서 장흥 위씨(魏氏), 수원 백씨(白氏), 영광 김씨(金氏), 인천 이씨(李氏) 등의 유력 사족과 긴밀하게 지냈다. 이러한 이유로 장흥 지방의 사림에 의해 광해군 12년(1620)에 이색(李穡)을 위하여 건립한 예양서원에 숙종 7년(1681)에 배향되었다. 김시습, 조려, 성담수, 원호, 이맹전, 등과 함께 생육신(生六臣)으로 알려진 남효온(南孝溫)의 자(字)는 백공(伯恭)이요 호(號)는 추강(秋江)이다. 소릉 복위 상소(昭陵復位上疏)는 남효온 사후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남효온이 불우한 생애를 보내다 죽은 뒤 연산군과 그를 에워싼 권신들은 두 개의 사화를 일으켜 추강의 스승 김종직(金宗直)과 그 제자들을 발본색원했다. 연산군 10년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남효온의 상소가 소환되어 그의 시신은 부관참시(剖棺斬屍)의 화를 입게 된다.

3) 습독공(習讀公) 유형(由亨)과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의 수창(酬唱)

秋江先生原韻 (本題孟夏與聚餘慶遊魏習讀山亭)

본제는 맹하(초여름 또는 음력4월)에 여럿이 모여 위습독 산정에서 즐겁게 놀았다.

漠漠松陰護翠苔 막막한 소나무 그늘은 푸른 이끼를 보호하는데

奈崖忽斷勢崔嵬 달려온 비탈 문득 끊어져 형세가 높고 높네

前臨大野平如掌 넓은 앞들에 이르러 손바닥처럼 평평하고

望盡長江絲似醅 긴 강을 바라보니 출렁인 푸른 물결 술이 괸듯하네

村宴但知園菜足 마을 잔치는 논수밭 채소로 족할 것이고

俚歌猶覺客愁開 시골 노래는 오히려 객지의 슬픔을 일깨우네

主人高論能留我 주인의 높은 이론은 능히 나를 머물 게 하니

座待蒼然暮色回 앉아서 창연히 석양빛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네

< 남추강(南秋江)에게 화답(和答)함 >

草亭蕭瑟傍江濱 초당이 쓸쓸하게 강변에 있는데

落日殘秋送故人 해 저문 늦가을 고인을 보내는 구나

別後情懷猶不耐 이별한 후 오히려 정회를 견디지 못하는데

雷聲何處更傷神 피리소리 어디서 부는지 내 마음을 상하게 하네

4) 차뜽(茶嶝) Elegy

봄바람에 감꽃 흩날리면

하얀 감꽃이 흐드러지게 뜨던

산정천(山亭泉) 샘물 길어

차 끓이던 습독공(習讀公)

출사(出仕)하기 싫어서

산정제(山亭齋) 지어놓고

강호의 야인들과 어울리던

노옹(老翁)의 흔적

산정천(山亭泉)과 함께

사라져 버렸네

산정천(山亭泉) 그 자리

후손들 이름 새겨진

커다란 비석 하나

덩그러니 서 있네

- 고산지 시 ‘차뜽(茶嶝) Elegy’ 전문

산정제(山亭齋)의 산정(山亭)은 다산제(茶山齊)로 바뀌었고 지금은 그 흔적이 사라지고 없다. 1936년(丙子)에 백산재(栢山齋)를 짓기 전의 허술한 제각(祭閣)인 초가지붕의 다산제(茶山齊)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필자는 어렸을 때 가운데 골의 산정천(山亭泉) 우물물을 먹고 자랐다. 산정천(山亭泉) 우물에 떨어진 하얀 감꽃이 눈에 아른 거린다. 지금 산정천(山亭泉) 우물을 메꾼 자리에는 제각 중수에 헌금한 후손들의 이름이 적힌 커다란 비석이 덩그러니 서있다. 다산제(茶山齊)와 산정천(山亭泉)이 복원되어 다향이 물씬 배인 습독공(習讀公)과 추강(秋江)의 흔적이 우러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제3부 상선약수(上善藥水) 마을

차(茶)는 물의 정신(精神)이요

물은 차(茶)를 닮는 몸이니

참물(眞水)이 아니면

차(茶)의 정신(精神)은 나타나지 않고

참다(精茶.眞茶)가 아니면

차(茶)의 몸 또한 제대로 볼 수 없네

무릇 참물(眞水)이란

가볍고(輕), 맑고(淸), 시원하고(冷), 부드러워야 하며(軟)

맛있고(美), 냄새가 없으며(無臭), 비위에 맞아(調適)

마시면 탈이 없어야 하나니(無患)

8덕(八德)을 가진 여덟 개의 샘(八泉)이

옛적부터 평화(平化)마을 지키고 있었네

억불산 자락의 동사천(東寺泉)과 서당샘(書堂泉)

마을 안에 있는 윗샘(上泉), 아랫샘(下泉), 담안샘(內泉),

가운뎃골 대밭의 중곡천(中谷泉)

차뜽(茶嶝)의 산정천(山亭泉)과

우복동(牛腹洞)의 우복천(牛腹泉)은

정화다소(丁火茶所)의 보물(寶物)이었네

팔덕(八德)을 가진 여덟 개의 샘(八泉)과

주위에 산재한 야생의 차나무로

선차일여(禪茶一如)를 구현했던

정화다소(丁火茶所) 정화사(淨化寺)

지금은 정화사(淨化舍)로 형체만 남았네

강산이 비뀌기 수십 번 하는 동안

우복동(牛腹洞), 우복천(牛腹泉)은 저수지로 변하고

차뜽(茶嶝)의 산정천(山亭泉)엔 공덕비가 서있네

윗샘과 아랫샘, 푸른 이끼 무성하고

서당샘(書堂泉)과 동사천(東寺泉)만 제몫을 하고 있네

풍파(風波)에 마모(磨耗)되어

평등(平等)하게 화(化)한 동네

자미수(紫薇樹) 꽃 이파리 송백정(松白井)에 떨어지자

세상을 이롭게 하되 다투지는 말라면서

물처럼 살라며 물이 된 상선약수(上善若水)

이름처럼 흐르네, 평화(平化)뜰로 흘러가네 ]

- 고산지 시 ‘상선약수(上善藥水) 마을’ 전문

1) 상선약수(上善藥水)마을의 여덟 개의 샘

다신전(茶神傳)은 "차(茶)는 물의 신(神)이요, 물은 차(茶)의 체(體)이나 진수(眞水)가 아니면 그 신(神)이 나타나지 않으며 정다(精茶:眞茶)가 아니면 그 체(體)를 볼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산마루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맑고 가볍고, 산 아래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맑고 무거우며, 돌 틈에서 나는 샘물은 맑고 달(甘)며, 모래 틈에서 나는 샘물은 맑고 차가우며, 흙 속에서 나는 샘물은 맑고 희며, 누런 돌(黃石) 틈으로 흐르는 물은 좋으나, 푸른 돌(靑石) 틈에서 나는 물은 쓰지 못한다. 또 흐르는 물은 고여 있는 물보다 좋고, 그늘에 있는 물은 햇볕에 있는 물보다 나으며, 진수(眞水)는 맛과 향기가 없다. 물에는 8덕(八德)이 있는데. 가볍고(輕), 맑고(淸), 시원하고(冷), 부드럽고(軟), 아름답고(美), 냄새가 나지 않고(不臭), 비위에 맞고(調適), 먹어서 탈이 없는(無患) 8덕을 갖춘 물을 진수(眞水)라 한다고 서역기(西域記)는 정의하고 있다.

상선약수(上善藥水)마을에는 여덟 개의 샘물이 있었다. 억불산 자락의 동사천(東寺泉)과 서당샘(書堂泉), 마을 안에 있는 윗샘(上泉), 아랫샘(下泉), 담안샘(內泉), 가운뎃골(中谷) 대밭의 중곡천(中谷泉), 차뜽(茶嶝)의 산정천(山亭泉)과 우복동(牛腹洞)의 우복천(牛腹泉) 등이다. 이중 산정천(山亭泉)과 우복천(牛腹泉)은 메꾸어지고, 윗샘(上泉), 아랫샘(下泉), 담안샘(內泉), 중곡천(中谷泉), 동사천(東寺泉) 등은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서당샘(書堂泉)은 장흥의 대표적인 약수(藥水)로 사랑을 받으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듯 정화다소(丁火茶所)가 있었던 상선약수마을은 다선일여(茶禪一如)를 구현하는 가장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야생 차나무와 차를 끓이는 8덕을 갖춘 샘이 존재했기 때문이다.<다음호에 계속>

평화리 배롱나무 군학지-방죽
평화리 배롱나무 군학지-방죽
평화마을 약수터
평화마을 약수터

 


  • 전남 장흥군 장흥읍 동교3길 11-8. 1층
  • 대표전화 : 061-864-4200
  • 팩스 : 061-863-49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선욱
  • 법인명 : 주식회사 장흥투데이 혹은 (주)장흥투데이
  • 제호 : 장흥투데이
  • 등록번호 : 전남 다 00388
  • 등록일 : 2018-03-06
  • 발행일 : 2018-03-06
  • 발행인 : 임형기
  • 편집인 : 김선욱
  • 계좌번호 (농협) 301-0229-5455—61(주식회사 장흥투데이)
  • 장흥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장흥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htoday7@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