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마을 순례/ 장흥읍 월평마을 ---장흥읍내 자연마을로 제일 大村인 월평리
■자연마을 순례/ 장흥읍 월평마을 ---장흥읍내 자연마을로 제일 大村인 월평리
  • 김선욱
  • 승인 2020.12.31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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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인물 배출 … 고속화도로, 철로, 산단으로 환경 변화

1986년 140호, 783명 주민 …2019년 말엔 150호 289명으로

여전히 대촌(大村)…여존히 평화롭고 정주하기에 ‘아름다운 마을’

 

 

하늘에서 본 월평마을 /사진 마동욱

■ 월평 마을의 인구 변화

행정리로 향양리 2구인 월평마을은 지난 1986년에 간행된 <마을유래지>에서는 140호에, 총 주민 수는 783명(남 419, 여364)이었다. 이후 30여년이 지난 2017년 발행된 <장흥읍지>.에서는 26호가 증가된 166호였지만, 주민 수는 450명이 줄어든 총 334명(남자 163, 여자 171)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이 흐른 2019년의 ‘장흥군 통계’에서는 가구 수 150호에, 주민총 수 289명으로, 나타나, 월평마을 역시 인구 감소는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거주 성씨의 변천을 보면, 1986년(마을 유래지)에는 인천이씨 38호, 영광김씨 12호, 광산김씨 10호, 김해김씨 7호, 죽산 안씨 5호 등(기타 성씨 68호)이 대표적인 성씨였는데, 2017년(장흥읍지)에는 인천이씨(52명), 영광김씨 (92명), 죽산 안씨(11명)를 제외하고는 더 많은 여러 성씨들이 거주하고 있음이 드러났다(장흥위씨 6명, 수원백씨 13명, 장흥마씨 1, 광산김씨 4명, 최씨 9명, 박씨 26명, 강씨 7명, 다문화 3명, 기타 118명).

주민 연령별 구성을 2017년 말 인구조사를 기점으로 살펴보면, ‘▶0-9세 : 20명 ▶10세-19세 : 25명 ▶20세-29세 : 23명 ▶30세-39세 : 28명 ▶40세-49세 : 31명 ▶50세-59세 : 57명 ▶60-69세 : 59명 ▶70세 이상 : 91명’으로 60세 이상 고령층이 150명이나 돼 전체 주민 수 334명 중 45%를 차지하고 있어 월평마을의 고령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월평마을의 역사

 박형대 이장

월평마을은 사자산 아래 드넓은 월락 평야에 자리 잡고 있어, 아침 일찍부터 오후 늦게까지 햇빛이 잘 드는 곳인 데다 마을 위쪽의 금산저수지의 풍부한 수원으로 벼농사 짓기에 알맞은 땅으로 예부터 대촌(장흥읍내 밖 자연마을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마을이었다)으로 형성되어 왔던 정주 여건이 좋은 마을이었다.

일본의 후지산과 비슷한 사자산의 사자가 감싸고 있는 듯한 월평은 ‘일지승’이라는 풍수학자가 팔도강산을 두루 돌다가 ‘달 떨어진 명지(名地)’미라하여 ‘월낙평(月落平)’ 또는 ‘월평(月平)’으로 불린다’(‘마을유래지’)고 한다. 1868년경에 간행된 ‘장흥도호부읍지’에도 ‘월락평’은 ‘풍수가들이 이름있는 터라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은 경지정리로 흔적이 없지만 사주목(사자발목) 아래 사자발톱에 해당되는 바위들이 여섯 개가 있었다고 한다.

본래 김씨(金氏) 김한상(金漢祥)이 1899년 생양마을(향양3구)에서 살다가 “이곳의 터가 ‘달 떨어진 명지’라 하여 오성(五姓)이 모두 번창하고 장차 만호(萬戶)가 들어설 수 있다”는 풍수설에 의하여 이곳 대지(垈地)에 처음으로 입주하였다고 한다. 이후 장흥 위씨, 인천이씨 등이 들어선 후 마을이 성촌이 되었다고 한다(‘마을 유래지’)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 때 월평은 인근의 ‘생양(生陽)’, ‘월전(月田)’, ‘병천(竝泉)’ 마을과 합하여 ‘향양리(向陽里)’가 되었다.

1949년 7월 지방자치법(地方自治法)이 제정되어 장흥읍조례(長興邑條例)에 의하여 ‘월평’과 ‘월전마을’의 두 마을을 합하여 ‘향양2구(向陽2區)’ 분구되었다.

마을 주민들과 인근 마을에서도 일반적으로 자연마을인 ‘월평(月坪)’으로 부르고 있다.

현재 ‘월평(月坪)’은 4개 반(169-325, 116-168, 37-115, 1-3번지)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인 1940년에 마을 북쪽에 축조된 금성저수지는 인근의 평야지대를 수리안전답으로 만들었으며, 마을 서쪽으로 장흥동초등학교를 설립하였다. (지금은 바이오산단 조성으로 많은 마을이 사라지면서 폐교가 되었고,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있다).

■교육·문화의 현황

교육기관으로 예전부터 마을 서당인 ‘월산재(月山劑)’를 마을회관(동각)에서 운영되다가 신학문의 등장으로 1970년대 말 소멸되었다. 서당 외에도 해방 후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야학이 운영되었다.

초등학교는 해방 2년 뒤 1947년 월평마을 비롯 이 학교를 학군으로 두고 있던 근동의 여러마을 사람들에 의하여 문을 열었다.

이후 근 반세기 동안 이 지역의 초등교육기관으로 역할을 다해오다가 2000년 2월 28일초 학생 수 감소로 인하여 장흥초등학교와 통폐합되며 학교가 문을 닫았다. 이후 장흥군 관찰체험장으로 운영되다가 바이오산단이 개발이 추진되면서 전남도개발공사의 사무실로 운영되었고, 지금은 해당산단공원으로 조성되었다. 현재까지 장흥 동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4,300여명에 이르고 있다.

마을에는 예전에는 ‘풍영계(風詠契)’라고 하는 마을사람들이 시를 짓고 읊으며 성리학을 논하는 모임이 있었으나 70년대 소멸되었다. 또 마을 주민의 화합과 협동을 위해 ‘마을 대동계’가운 영되었는데. 대동계는 음력 6월15일, 음력 11월 15일 1년에 두 번의 회의를 가져왔으나, 현재는 마을총회가대동계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또 ‘마을 상포계’가 운영되었는데, 이는 마을에서 ‘상(喪)’이 있을 때 전 주민이 봉사하며 장례를 치루었으나 장례식장의 발달로 소멸되고 말았다. 또 전통적으로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울력에 참여하는 등 ‘품앗이’ 작업이 남녀노소 마을 주민 모두가 참여하여 치루어지고 있다.

마을의 민속놀이로 정월 대보름, 유두, 백중에 농악놀이를 했으나 인구 감소로 현재는 하지 않고 있다. 월평마을은 대촌인 탓인지, 많은 인물이 배출된 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월평 마을의 특성

인천이씨(52명), 영광김씨 (92명), 죽산 안씨(11명), 수원백씨(13명) 등이 많이 살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다양한 성씨들이 거주하는 월평마을은 전통적으로 화합하고 단합이 잘되는 마을로 전통을 쌓아왔다. 이러한 연유로 6.25때도 서로 중상모략을 한 사건이 한 건도 없었으며 희생된 자도 한 명도 없었다.

마을 이장을 선출방식도 선거를 치르지 않고 추대 형식으로 선출하여 왔다는 점에서, 그리고‘경로회’가 조직되어 있어 어른을 공경하는 경로사상이 투철하였다는 점도 이러한 마을사람들의 풍조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월평마을 특기로, 월산 노인정 앞에 수령 150년의 마을정자나무(느티나무)가 있고(성촌 당시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주변에 8각형 돌 마루 형식의 쉼터가 있다는 점이다.

또 서편 일신정 앞에 수령 100년 정도 된 팽나무가 있으며, 이 외에도 정자나무 쉼터가 4개소가 있고, 돌기둥으로 된 일신정(日新亭)도 마을 역사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또 전통적으로 짚공예’문화가 발달되었는데, 매주 정남진 토요시장에서 월평마을 사람들이 짚공예 시연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그동안 마을 발전에 공이 큰 사람들의 공적비 등에 세워졌다. 서부 노인정 앞 경헌 이선생 기적비(1993년), 서부 노인정 앞 일석 임홍권 공적비(2005년), 월산 경노당 옆 성암 이선생 유적비(단기 4308) 등이 그것들이다.

마을에서 오래된 가옥으로 1940년대 지어진 김영진씨 집(5칸 와가, 팔작지붕, 박우인 씨 가옥)과 1954년에 지어진 이점기 씨 집(5칸 와가, 동족툇마루 쪽 하양식 지붕)이 있다.

■월평마을의 산업

1950년대 마을에서 몇 사람이 재원을 모아 합자형태로 현재의 마을회관 근처에 정미소를 세워 운영했다. 이후 김평환 씨가 3반에서 따로 정미소를 운영했으나 화재로 소실되자 합자 정미소를 인수하여 새로운 10마력 발동기를 들여와 운영했다.

또 1980년대에는 마을 서편에 위승복 씨가 최신설비인 RPC개념의 정미소를 개소하였다. 이후 김평환 씨 정미소는 점점 사양길에 접어들게 되자 정미소 자리를 씽크대 공장 등으로 사용하다 현재 위치에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다.

서편의 위승복 씨 정미소는 이후 ▶백형기 씨가 인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미소 외에도 ▶두부공장이 김경전 씨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외에도 ▶월평마을 사람들의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미역을 가공하는 월성산업 대표 이진오 ▶마을 앞 국도변에 문상영 씨가 운영하는 버섯판매장 ▶김서형 씨가 운영하는 자동차 1급 보림공업사 ▶최대일 씨가 운영하는 보림 주유소 ▶김성만 씨가 운영하는 명동식당 ▶kg로지스의 택배 ▶윤기현 씨가 운영하는 대한중기 골재 ▶강해숙 씨가 운영하는 진천가든 ▶이재진 씨가 운영하는 장흥 가설재 ▶마길원 씨가 운영하는 억불미화사 ▶김영철 씨가 운영하는 탐진자라양식장이 등이 있다.

■역대 이장 및 중요사업

■1900년 경자년 설기 월락지지 165번지에 김한상 소점 ■김창제 1891년1월17일생 ■김김익현 1894년6월9일생 ■이수평 1900년9월15일생. 재직시 구회관건립. 동쪽사장 설기. 남북 암거 설기. 향양1.2.3구 분구 ■김인식 1918년2월16일생 ■이정원 1985년3월7일생 ■김태환 1911년2월5일생 ■이승호 1919년7월9일생. 동답 3두락 매득, 6.25 동란 ■양철승 1943년 재직5년. 동답 2 두락 매득. 1921년10월5일생 ■이병일 1959년 재직2년. 1912년4월10일생 ■김명식 1961년 1년재직. 동답 2두락 매득(창고 터). 국유림 51정대부 받음. 1912년1월5일생 ■선공래 1962년 재직1년. 1900년4월8일생 ■이충근 1963년 재직5년. 1917년10월20일생. 남부간통도로 확장, 서편 사장 설기, 전기가설 ■안정무 1968년 재직1년. 1911년6월4일생 ■김종환 1969년 재직1년. 1919년8월7일생 ■김수환 1970년 재직1년. 1931년7월8일생 ■이장근 1971년 재직5년. 1932년3월5일생. 경로회 발족, 동쪽 사장제 폐치, 중앙창고 건립 및 방송시설. 2차 소하천 정비, 장흥동교 도로확장 ■김재열 1976년 재직4년. 1925년19월8일생. 연애똘 하천 정비 사업. 마을 안길 확장. 현 회관건립. 가로등 가설 ■김수장 1980년 재직2년. 1940년2월2일 생. 현 회관준공. 동편 창고건립 ■이오만 1982년 재직2년. 1912년2월22일생. 1차 중앙로포장.

■임홍권 1984년 재직2년. 1927년5월7일생. 3차 소하천정비. 가로등 재가설. 독서실개설. 간재골 상수도시설 및 마을안길 포장. 1차 경지정리사업. 마을버스 통행(상하 월평 합동) ■임영묵 1986년 재직2년. 1942년11월27일생. 마을안길포장 650m. 새마을 헌장탑건립. 2차 경지정리 착공 ■김장환 1988년 재직2년. 1930년8월30일생 ■김수장 1990년 재직3년. 1940년10월22일 생. 동편사장 건조장포장. 남자 노인당건립 ■임영묵 1992년 재직2년. 1942년11월27일생. 맨 밑 우회도로포장 300m. 1차 상수도관정시설 ■김경전 1994년 재직4년. 1948년6월19일생. 마을 외곽도로 2차선공사. 맨 밑에 가는 도로포장 500m. 중앙로 돌담정리 확장아스콘 포장 500m, 마을 진입로 동백꽃나무식재. 화산가는 진입로 벚꽃나무 식재(벚꽃나무 기증 김재열) ■ 임영묵 1998년 재직4년. 1942년11월27일생. 동편 똘 개거복개포장 400m. 1반5반 쉼터설치. 마을 승강장설치. 외곽도로 벚꽃나무식재 ■김경전 2002년 재직4년. 1948년6월19일생. 마을 앞 농로포장. 2차 상수도 관정시설. 1반안길포장. 건강관리시설 ■김남배 2005년. 재직2년 ■ 김경전 2007년 ■김남배 2008년. 마을회관 건립 ■이형익 2012년 ■안영근 2013년. 마을광역상수도 완공. 마을진입로 아스콘 포장. 평화천 정비사업 ■백형기 2015년. 연하천 정비사업. 방송 시설 현대화. 서편사장, 회관 실내 개선사업 ■박형대 2019년∼.

■월평리-100여 명의 주요 인사들 배출

월평마을은 150호에 289명(2019년 장흥군 통계연보)의 주민이 살고 있는 대촌이다.

실제로는 읍내 권역(시내권) 마을을 제외한 자연마을 중에서 우산리 다음이다. (2019년 통계연보, 우산리 175호. 인구 301명). 우산리는 우드랜드 편백 숲이 개발되면서 ‘치유의 숲’으로 문화관광마을이 된 마을이어서, 순수 자연마을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순수한 의미의 자연마을로 월평리가 가장 대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월평마을은 장흥읍 자연마을 중 규모가 가장 큰 마을이니만큼 인물도 많이 배출한 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관계(공직)에 진출한 인사(사무관급 이상) 12명, 교육자(초중고교장 이상, 교수, 학자 등) 30명, 으료계(전문의 등) 10명, 국영기업체 및 기업인 대표 5명, 지방의회 의원 2명, 군·경찰(중위·경감급 이상) 2명, 금융 및 농·수·축협 임원 4명, 언론계(언론사 국장 이상) 5명, 종교계(향교 전교 및 목사) 4명, 사회 단체장 2명 등 100여 명의 주요 인사들이 배출되었다.

이처럼 월평마을은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면서 사람들이 정주하는 데 더없이 좋은 마을이었다. 드넓은 평야를 앞에 두고 동북으로는 제암산과 동으로는 사자산이 저립해 있는 데다, 서북쪽으로 금성 저수지가 있어 수자원이 풍부했고, 들녘 한 가운데 입지하여 있어 더없이 고즈녘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그런데 최 근년 들어 2번국도가 마을 우편 쪽으로 뚫리고 마을 좌편쪽으로는 철로로 RH, 마을 뒤쪽으로 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마을은 이 삼각 ‘현대적 구조물’에 의해 갇혀 있는 듯한 형국이 되면서 예전의 그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에 큰 변화가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평 마을은 읍내 시내권역(장흥군청)에서 불과 3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근거리에 위치하는 시골적이면서 아늑하고 평화로운 전원적인 위치로 여태도 대촌으로서 규모를 자랑하며 예전의 대촌으로서 성세가 꺼지지 않고 있다. 인구 감소 부분도 여타 읍내 시내권 외 마을보다는 인구 감소세가 그리 심하지는 않는 편인 것도 이 때문이다.

박형대 이장은 “여전히 월평마을은 대촌이다. 무엇보다 시내 권에서 가깝고, 여전히 시골적인 풍광이며 전원적인 위치로 하여 삶의 경쟁력이 가장 큰 자연마을로 입지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그래서 월평마을은 여전히 정주하는 농촌 마을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월평마을 개촌 120주년 기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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