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림의향 ‘文林(8)/ 장흥 詩 8편-무의자 혜심
■ 문림의향 ‘文林(8)/ 장흥 詩 8편-무의자 혜심
  • 김선욱
  • 승인 2021.01.2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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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눌, 억불산 수행, 무의자 혜심(진각국사)도 억불산 자주 찾아
혜심 詩 8편 새로 확인- 장흥부 관아, 장흥사長興寺, 천관산의상암
長興魏氏, 몽인거사 등 등장 … 무의자 총 9편의 장흥 詩 남겼다

<본 글은 무의자 혜심의 시문(詩文) 400여 펀을 국역하여 펴낸 《무의자혜심선시집》에서, 본 글의 핵심이 되는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한 ’억보산億寶山 백운정사白雲精舍’에서 ‘억보산’이 곧 ‘억불산’임을 전제하여 쓰여진 글임을 밝혀둔다. 이 책을 국역한 이상원 씨가 ‘億寶山=億佛山’임을 본 선시집에서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억보산億寶山은 전라남도 장흥읍 동쪽 7리 지점에 있는 지금의 億佛山이다(《무의자혜심선시집》”. 혜심의 백운정사 관련 시 4편을 제외하더라도, 무의자의 장흥관련 시문은 5편에 이른다 ... 편집자 주>

무의자 혜심 선지집

 

본지 지난 100호(2020.11.25)에서 장흥 외지인으로서 장흥 관련 시문을 작시한 분으로 무의자 혜심이 쓴 ‘천관산 의상암에 우거하다 몽인거사가 남긴 시를 보고 회포를 풀어 차운하다 寓居天冠山義相庵見 夢忍居士留題次韻敍懷’라는 시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혜심이 쓴 시로 ‘천관산 의상암에…’ 외에도 장흥 관련 시 8편이 추가 확인되었다.

①‘백운암에 이르러 청을 받고 대중에게 설법을… 到白雲庵請示衆’ ②‘노스승께서 껄껄 웃으시고 이에 부채를 주시기에…師翁呵呵大笑 因以扇子授之…’ ③‘백운암으로 향하며 사중시에 차운하여 向白雲庵 次辭衆’ ④‘백운대 위에서 선사를 추억하며 白雲臺上憶先師’ ⑤장흥부수 정공의 관아 안에서 대중에게 長興府守鄭公衙內’ ⑥‘계미년 칠월 28일 나주 장흥사 경찬회를 시작하면서 癸未七月二十八日羅州長興寺慶讚會 起始 上堂‘ ⑦‘위거사 정규에게 보임 示魏居士廷圭 ⑧’몽인거사가 목우시를 청하기에 夢忍居士請牧牛詩‘라는 시들이다.(이상원 역, 무의자혜심선시집, 도서출판 아라, 2013)

 

이 8편의 시도 ‘‘천관산 의상암에…’와 함께 ‘장흥의 고문학’에 편입한다. 그러므로 무의자 혜심의 장흥 시문은 모두 9편에 이른다.

이번에 발견된 혜심 시의 시제에서 등장하는 ‘백운암·백운대’ 등은 당시 억보산(億寶山)(억보산億寶山은 장흥군 장흥읍에 있는 억불산이다(이상원 역, 무의자 혜심선시집, 도서출판 아라, 2013, p 426), 즉 지금의 억불산에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1158∼1210, 자호 牧牛子, 시호 佛日普照國師)이 창건했던 백운정사(白雲精舍)를 이르는 표현이다. 또 ‘장흥부(長興府)·장흥사(長興寺)’ 역시 당연히 지금의 장흥을 이른다. 아마 진각국사 혜심(慧諶, 1178∼1234, 자호 無衣子, 시호 眞覺國師) 시에서 등장하는 ’장흥‘ 명칭은 장흥의 고문학사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장흥 지명의 장흥시 사례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혜심이 이 시를 지은 정확한 연대는 확인되지 않지만, 혜심의 생몰연대가 1178년〜1223년이고, 장흥 지역 일대가 장흥부(長興府)로 승격한 것은 고려 인종대(재위, 1122~1146)이므로, 이미 혜심 생존 시에는 그 이전 영암군에 속한 장흥 지역의 5개현(定安縣, 遂寧縣, 會寧縣, 長澤縣, 耽津縣)이 부(府)로 승격된 ’장흥부‘의 속현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목우자 지눌(보조국사)과 장흥의 억보산(億寶山)

간화선(看話禪 : 선禪 수행 방법 중 화두를 두고 수행하는 참선법)을 도입, 우리나라 불교 역사 속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던 고려의 수선사(修禪社-현 송광사) 제1세조인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1158∼1210)과 장흥의 인연은 참으로 깊다.

지눌이 수선사(현 송광사)에 주석하고 있을 때, 대사는 장흥의 억보산(億寶山)에 백운정사(白雲精舍) 와 적취암(積翠庵)을 창건, 자주 왕래하면서 여기서 수행하거나 참선하였기 때문이다.

사서에 의하면, 지눌의 법을 이어 수선사 제2세조가 된 혜심이 그의 나이 28세 때인 1205년(희종1) 가을, 당시 억보산에 머물고 있던 지눌을 찾는다.

“혜심이 선승(禪僧) 두어 사람과 같이 국사(지눌)를 만나려고 억보산을 찾아 산 밑에서 쉬고 있는데, 암자와의 거리가 천여 보나 떨어졌건만, 멀리 국사가 있는 암자 안에서 모시는 자(侍者)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혜심이 게를 지었는데, 대략 이러하다.

아이를 부르는 소리는 솔 넝쿨에 바람처럼 감돌고 / 呼兒響落松蘿霧

차를 달이는 향기는 돌길로 부는 바람에 전해오도다 / 煮茗香傳石徑風

하였다.

혜심이 국사(지눌)에게 참례하게 되었을 때 이와 같이(게를 지은 일) 이야기 하니, 국사가 그렇다, 하고 손에 쥐었던 부채를 혜심에게 주었다. 이에 (혜심)이 또 게를 지어 올리기를,

옛날에는 국사님의 손 안에 있더니 / 昔在師翁手裏

이제 와선 제자의 손바닥에 있구나 / 今來弟子掌中

만약에 들끓는 번뇌를 만나게 되면 / 若遇熟忙狂走

흔들어 청풍을 일으키는 것이 좋겠소 / 不妨打起淸風

하니, 국사(지눌)는 혜심을 더욱 큰 그릇으로 여기었다.(이 사건을 혜심이 지눌로부터 정식으로 법통을 잇게 되는 일대사건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乙丑秋。國師在億寶山。師與禪者數人方往謁。憩山下。距庵千餘步。遙聞國師在庵中喚侍者聲作偈。其略云。呼兒響落松蘿霧。煮茗香傳石徑風。及參禮。擧似此話。國師頷之。以手中扇授之。師呈偈曰。昔在師翁手裏。今來弟子掌中。若遇熱忙狂走。不妨打起淸風。國師益器之”(《동문선》 제118권, 碑銘, ‘조계산제이세고단속사주지수선사주증시진각국사비명 병서 봉선술曹溪山第二世故斷俗寺住持修禪社主贈諡眞覺國師碑銘 幷序 奉宣述’)

湖山錄 寄金大禪師

이 기사는 《동문선》의 무의자 혜심(진각국사) 비명에 나오는 내용의 일부이다.

그런데 《동문선》에 출전되는 혜심의 이 게송 즉 “아이를 부르는 소리는…차 달이는 향기는 돌길 바람에 전해오도다”는 여기서는 7언2구로 마무리되었지만, 혜심의 선시집(《무의자 혜심선시집》)등에서는 7언2구가 더 추가되고 장문의 시제도 붙여졌으며, 혜심이 국사를 참례한 후 설한 게송도 시제와 함께 별도의 시문으로 출전되니 다음과 같다.

①‘백운億寶山암에 이르러 청을 받고 대중에게 설법을 하였다. 기억하니 승인 을축년 잔몰암의 여름안 거 후 끝나는 날, 이 암자에서 선사님을 뵙고 게송을 지어 올림

到白雲庵請示衆 記得承安乙丑 在轉物庵 夏末上謁謁先師于 此庵作偈奉呈’

아이를 부르는 소리는 솔 넝쿨에 안개처럼 감돌고 / 呼兒響落松蘿霧

(송라松蘿 : 여승이 쓰는 모자. 여기서는 소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를 이른다)

차를 달이는 향기는 돌길로 부는 바람에 전해오도다 / 煮茗香傳石徑風

이제 막 백운암 아래 접어든 순간 才入白雲山下路

이미 암자에는 스승께서 설법을 마치셨네 已參庵內老師翁

(: 소참小參. 총림에서 새벽상당을 조참早參, 저녁 염송을 만참晩參이라고 그밖의 설법을 소참 小參이라고 부른다.)

 

②‘노스승께서 껄껄 웃으시고 이에 부채를 주시기에 내가 그걸 받고 곧 게송으로 화답함

師翁呵呵大笑 因以扇子授之 我接得便以頌對’

옛날에는 국사님의 손 안에 있더니 / 昔在師翁手裏

이제 와선 제자의 손바닥에 있구나 / 今來弟子掌中

만약에 들끓는 번뇌를 만나게 되면 / 若遇熟忙狂走

흔들어 청풍을 일으키는 것이 좋겠소 / 不妨打起淸風

1201년(신종4), 혜심의 나이 24세 때 사마시에 합격하여 태학(太學)에 들어갔으나, 어머니의 병보(病報)로 귀향(화순현)하여 인척 형인 배광한(裵光漢)의 집에서 시병(侍病)할 때 관불삼매(觀佛三昧 : 부처의 모습, 공덕 등을 생각하며 관찰하는 수행)에 들었는데, 어머니는 그 꿈에 여러 부처와 보살들이 사방에 두루 나타나는 것을 보고 꿈을 깨자 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듬해 어머니가 죽자, 혜심은 당시 조계산(曹溪山)에서 수선사(修禪社)를 창건하여 불교세를 크게 확장시키고 있던 지눌(知訥)에게 나아가 재(齋)를 올려 죽은 어머니의 명복을 빈 다음, 곧 머리를 깎고 지눌의 제자가 되었다. 이때부터 혜심은 힘써 정진하였다. 오산(蜈山)에 있을 때에는 어떤 바위 위에 앉아 밤낮으로 선경을 익히기도 하였고, 오경(五更)만 되면 게송(偈頌)을 읊었는데 그 소리가 매우 우렁차 10리 밖까지 들렸다고 하며, 조금도 때를 어기지 않아 듣는 사람들이 그로써 아침이 된 줄을 알았다고 한다.

혜심이 억보산의 지눌을 찾았을 때는 1205년(희종1), 그가 출가한 지 5년 째이던, 새내기 승려였고, 기록으로 보면, 혜심은 이때 억보산에서 지눌로부터 큰 가르침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지눌과 사제 인연으로 장흥의 억보산은 혜심에게도 큰 인연이 맺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혜심의 장흥 관련 시문이 많았던 것도 이 때문으로 여겨진다. 선사(지눌)의 사후 선사를 그리워하며 억보산의 백운암, 백운대를 찾는다든지, 장흥부 관아, 장흥사, 천관산과 몽인거사, 위정규魏廷圭) 거사 등을 주제나 소재로 하는 여러 시문 등이 그렇다.

혜심에게 고향이었던 화순 관련 시문도 고작 2,3편에 불과한데, 장흥 관련 시문이 이처럼 많이 출전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까닭인즉, 스승 지눌의 수행처 백운정사白雲精舍가 장흥 억불산에 있었고, 그런 연유로 장흥을 자주 찾았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혜심이 억보산 백운정자에서 지눌을 만났을 때의 시문 2편 외에도 더 출전되는 장흥 관련 시문 6편을 더 들여다 보자.

③‘백운암으로 향하며 사중시에 차운하여 向白雲庵 次辭衆’

병든 몸 잠시 쉬러 백운암으로 가노니 / 暫向雲庵養病身

산승은 절대로 자주 오고가지 마시게 / 禪流切勿往來頻

조계의 가풍은 본래 한 물건도 없으니 / 曹溪無物 不常住

집안에 주인이 없다고 말 하지 마시게 / 莫道堂中無主人

(무사인無事: 무사無事는 진여眞如인 마음의 본체를 가리킨다. 법성法性, 청정법신淸淨法身이라고 한다.)

 

④‘백운대 위에서 선사를 추억하며 白雲臺上憶先師’

강산은 그림에서 나온 듯 / 江山如畵出

바위 봉우리는 병풍을 펼친 듯/ 巖嶂似屛開(바위 봉우리 : 역불산의 며느리 바위를 지칭한 듯)

일찍이 선사의 입에서 / 曾向先師口

그 몇 번이나 삼켰다 토해 냈을까 / 幾經呑吐來

⑤‘장흥부수 정공의 관아 안에서 대중에게 보임 長興府守鄭公衙內 示衆'

바람은 부드럽고 햇살 따스한 태평한 봄날 / 風和日曖大平春

학이 머물고 구름 흐르는데 일없는 사람이라 / 鶴住雲行無事人

남녘 끝 바닷가에 교화의 자취 남겼으니 / 南極海涯化述

다만 발걸음은 떼었으나 몸은 옮기지 않았네 / 但能移步不移身

⑥‘계미년 칠월 28일 나주 장흥사 경찬회를 시작하면서 癸未七月二十八日羅州長興寺慶讚會 起始 上堂’

(당시 나주는 행정 구역으로 장흥부長興府보다 상급인 나주목羅州牧으로 전국 8목 중 하나였던 곳이기에, 장흥부는 나주목의 속부屬府였다고 할 수 있어, ‘나주 장흥사로 표기된 것으로 보인다.)

(경찬회慶讚會 : 낙성법회(落成法會) 또는 낙성회(落成會)라고도 한다. 불상을 봉안하거나 절 또는 탑을 조성하는 불사를 마쳤을 때 또는 경전을 새로 인출하거나 판각하였을 때 그 완성을 경축하고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법회.)

산 앞 한 뙤기 땅 / 山前一片地

천년 지난 오랜 절터 / 千年古寺基

아무도 부흥시킬 줄 몰랐더니 / 無人解興復

황폐한 채 이미 오랜 시간 흘렀네 / 荒廢已多時

진공(陳公)이 비로소 터를 잡고 / 陳公始經營

여러 사람이 서로 힘을 도와 / 夫唱而婦隨

공사 마쳐 낙성을 하게 되니 / 工終旣落成

그 공덕 생각이나 말로 다하기 어렵네 / 功德叵思議

⑦‘위거사 정규에게 보임 示魏居士廷圭

(위정규魏廷圭 : 위씨魏氏라는 성을 가진 사람은 거의 장흥 사람이었다)

부처님은 묘방을 베풀고 / 醫王施妙方(의왕醫王 : 부처님의 별칭)

이끌어주는 스승은 바른 길로 가르치네 / 導師指正道

그대로 따르면 고향에 이를 것이요 / 行之達古鄕

복용하여 신이한 효험을 얻었음을 명심하시게 / 服之得神効

복용하지도 않고 잘 따라가지도 않으면서 / 不能善服行

훌륭한 의사가 이끄는 것을 잘못 의심하네 / 錯怪良醫導

삼가 여러 지혜로운 사람에게 부탁하니 / 謹囑諸智人

반드시 이 요점을 알아야 하리라 / 切須知此要

⑧몽인거사가 목우시를 청하기에 夢忍居士請牧牛詩

(몽인거사夢忍居士 : 이 시의 몽인거사는 혜심이 쓴 천관산 의삼암에 우거하여 몽인거사가 남긴 시를 보고 회포를 풀어 차운하다 寓居天冠山義相庵見 夢忍居士留題次韻敍懷에 나오는 몽인거사와 동일인이다.)

집 근처 밭에 소를 풀어놓고 / 放在家田地

한가롭게 물 대는 암소 바라보네 / 閑看水牯牛

때때로 풀밭에 들어가기만 하면 / 有時纔入草

꼬뚜레를 끌어 문득 하늘을 돌아보네 / 拽鼻便咽回頭

날이 오래될수록 순하게 길들여져 / 日久方純熟

해가 지날수록 자유로움을 얻는다 / 年來得自由

영겁에 소 먹이는 일 끝나지 않았는데 / 劫中牧不着

누가 감히 세월을 헤아릴 것인가 / 誰敢計春秋

(목우牧牛 :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을 상징. 소 사육을 수행을 닦아가는 것으로 상징. 송나라 보명普明이 지은 십우도(十牛圖)는 수행과정의 경지를 10단계로 보여주고 있다. 혜심의 스승인 목우자(牧牛子) 지눌의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이 남아 있다.)

김선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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