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 선생님
섬마을 선생님
  • 장흥투데이
  • 승인 2021.06.1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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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소유 (서울성모의원 원장·재경장흥중고총문회 수석부회장)

 

 

 

 

 

 

 

 

 

 

 

양소유 (서울성모의원 원장·재경장흥중고총문회 수석부회장)

 

1989년. 서해안 덕적도(德積島)에서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했다. 면사무소와 보건지소가 서로 가까이 있고, 거기서 살짝 논둑길을 걸어가면 남녀공학 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하나로 합쳐진 학교가 있다. 학교 바로 뒤편이 해변가. 송림이 울창했고 바다에 달이 뜨면 황홀한 마음으로 달려갔던 백사장. 풍류(風流)가 넘치는 그곳. 평생 잊을 수 없는 정경으로 떠오른다.

덕적도는 현재는 인천 연안부두에서 쾌속선으로는 약 1시간 20분, 차도선으로는 2시간 40분 가량이면 가나 당시에는 더 걸렸다. 그때는 쾌속선도 없었다.

내가 근무할 당시에는 밤 9시가 넘으면 섬에서 자가발전하는 전기가 끊겨 적막했다. 즉, 제한송전을 했다. 응급환자가 보건지소의 문을 두드리면, 섬에 있는 한전에 전화해 발전기를 잠깐 다시 돌리라 하고서 환자를 봤다.

덕적도가 원양어선의 전진기지이기도 하다. 선원들이 섬에 들어올 때면 술 마시고, 서로 대판 싸워서 외상(外傷) 환자가 왕왕 발생하기도 했다. 야간에 찢어진 상처를 꿰매려면 전기불을 켜야만 했다.

환자가 없으면, 중·고등학교 선생들이 거주하는 학교에 딸린 바닷가 기숙사를 찾아 촛불 켜고 담소하며, 밤 늦도록 카드 하고 화투 치며 놀았다. 그러다가 환자가 발생하면 면사무소에서 마을에 설치된 확성기로 나를 찾는 방송을 한다. 덕적군도(德積群島, 인천시의 서남쪽 약 82㎞ 지점에 있다. 덕적도를 비롯하여 소야도·문갑도·선갑도·굴업도·선미도·백아도·울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에 의료시설은 보건지소 한 곳, 의사는 오로지 나 홀로뿐이라 24시간 근무를 했다.

덕적도와 소야도. 지금은 그림에서 보듯 섬과 섬을 연결하는 다리가 놓였으나(2018년 개통), 내가 근무할 당시에는 다리가 없어 배를 타야 했다.

어느 날 밤. 방송이 나왔다. 보건지소로 달려가니까 면사무소 직원이 기다리다가 덕적도 바로 앞의 소야도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했다고 왕진을 요청한다. 면사무소 직원과 함께 진리선착장으로 내려가니, 이미 환자의 부친이 소야도에서 자신의 고깃배를 몰고 와 대기하고 있었다. 그 날 비가 세차게 왔고, 소야도에 도착해서도 쏟아지는 비에 우산을 쓰고 다시 야트막한 산 하나를 넘고 걷고 또 걸어서 환자 집에 갔다. 위의 사진이 소야도인데, 소야도 우측 끄트머리 마을에 환자가 있었다.

진찰해 보니까 급성충수염(일반인들이 말하는 맹장염)이 의심이 되어 일단 진경제와 항생제를 주사 했다. 부모님이 과일을 내오고 밥상을 차려온다. 나는 한 시간 정도 방안에서 환자 곁에 앉아 경과를 살피다가 아무래도 충수가 터질 것 같아 복막염으로 진행할 위험이 있으니 인천으로 빨리 후송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막염으로 가면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덕적도가 접적지역(接敵地域)이라, 그리고 섬에 해군기지가 있어서 환자를 후송할 때는 보통은 해군 구축함이 출동하는데, 그 날 따라 어떤 연유인지 모르겠으나 구축함이 못 오고 어쩔 수 없이 면사무소의 조그마한 행정선(行政船)을 환자와 함께 탔다.

빗발은 여전히 점점 더 거세지고, 배 안에는 조타수와 나 그리고 환자 이렇게 셋. 배가 까파지면 함께 익사(溺死)할 지도 모를 운명(運命).

내가 부임하기 전에 덕적중·고교의 어느 여선생이 결혼식 날짜를 다잡아 놓았는데 태풍이 불어 배가 뜨지 못하자 관청에 출항신고도 아니하고 결혼식 하루 전에 몰래 어선을 빌려 타고 육지로 향했다. 그러다가 배가 표류하여 목적지인 인천으로 못 가고 태안반도의 이름 모를 어느 해변에 상륙. 길을 헤매 빗속을 뚫고 산길을 걷고 또 걷다가 어떻게 길을 찾아 차를 얻어 탔는데, 예정된 혼인식 시간이 지나 목숨만 겨우 부지해 도착했다는 전설적인 얘기를 들었기에 . . . 나는 행정선에 목숨을 걸고 탔다.

환자 곁에서 환자의 상태를 보며 주사를 놓고, 빗줄기를 우산으로 막으며 동이 틀 새벽녘에야 간신히 인천항에 도착했다.

육지에는 미리 연락을 받은 앰뷸란스가 대기 중인데, 항구에 수많은 배들이 서로 체인으로 연결하고서 정박해 있어서 부두에 배를 바로 못 대고, 들것에 환자를 싣고 첩첩이 연이어 있는 배와 배 사이를 넘고 넘어 육지에 닿았다.

환자를 인계하고 나서 나는 다시 행정선 타고 덕적도로 복귀. 이미 낮 시간이 되어 그 날의 진료를 시작. 환자의 상태가 궁금하여 면에다 물어보니까, 인천 중앙길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응급수술 시행했고, 충수가 천공 되기 바로 직전이었다고 했다. 아마도 항생제 주사를 내가 적시에 놓아준 덕분에 천공의 위기, 복막염으로의 진행을 넘긴 듯. 길병원 의사도 환자에게 그리 얘기 했다고 하고 . . .

그러고 나서 몇 달 후에 아침에 조깅 하며 보건지소 가까이에 있는 언덕길을 뛰는데, 선착장 쪽에서 오는 여학생들 무리와 마주쳤다. 가까이서 오는 한 여학생이 얼굴이 빨개지고 외면하듯 학교 쪽으로 뛰면서 달아난다. '너 목숨을 살려주신 선생님이야. 인사해라'하며 재잘거리며 웃는 여고생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아른거린다.

섬마을 선생님이 나의 18번이 된 연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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