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컬럼 한여름 낚싯배서 먹은 아버지의 된장물회
■초대컬럼 한여름 낚싯배서 먹은 아버지의 된장물회
  • 김선욱
  • 승인 2021.06.24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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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소설가, 시인
한승원/소설가, 시인

아버지는 한여름 해질 무렵에 열한 살 난 나를 앞세우고 가조기 낚시질을 하러 득량만 바다로 나가곤 했다. 열네 살 형이 있었지만 멀미가 심하므로 멀미를 하지 않는 나를 데리고 다녔다. 고기 구럭에 밥과 신 물김치와 된장과 칼과 도마와 풋고추와 마늘과 생수 한 병을 넣어 짊어지고 갔다.

내 어린 시절 한여름의 고향 바다는 가조기 낚시터로 변했다. 가끔씩 팔뚝만 한 ‘보구치’도 잡혔다. 보구치는 민어의 일종이다. 지도상에서 보면 득량만 바다는 ㄷ자 모양이다. 남쪽에는 고흥반도가 뻗어 있고, 안쪽에는 보성·장흥과 강진이 있고, 터진 서남쪽은 완도의 섬들이 있다. 마을 남정네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돛을 단 목선을 타고 낚시질을 나갔다. 갯지렁이를 이용한 줄 낚싯질이었다. 갯지렁이를 대주는 것은 아낙들이었다.

고기가 잘 잡히는 골태기라는 물목에 이르면 아버지는 서둘러 낚시를 던졌다. 물론 나에게도 낚시 줄 타래를 안겨주었다. 저녁밥에 곁들여 회로 먹을 것을 우선적으로 잡아야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고물(船尾)에 자리를 잡고 나는 왼쪽 뱃전에 앉았다. 아버지는 낚싯바늘 끝에 달린 봇돌이 갯벌에 닿는 느낌을 낚싯줄 얹은 검지 끝으로 느끼는 법에 대하여 알려주었다. 그것을 계속 느끼고 있어야 하는 까닭을 말해주었다. 내 손끝에서 뻗어간 줄이 내내 팽팽하게 켕겨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고기가 입질하는 것을 놓치지 않게 되는 것이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 낚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가르쳐준 대로 했고, 아버지보다 더 먼저 고기 한 마리를 낚아채곤 했다. 그때 아버지는 “조급해 하지 말고 천천히 끌어올려라” 하고 말했다. 내가 끌어올린 것은 어른 손바닥 크기의 가조기였다. 뱃바닥에 누운 은빛 비늘의 그놈은 입과 아가미를 한껏 열면서 배를 불룩거렸다. 아버지는 그놈을 물간에 넣으면서 “우리 작은 놈이 아부지보다 솜씨가 좋다” 하고 칭찬했고, “한 마리만 더 잡아 가지고 회를 쳐서 저녁밥 묵자” 하고 말했다. 바야흐로 노을이 물들고 있었고 시장했다.

나는 신이 났다. 낚시에 꿰었던 갯지렁이는 물간에 들어간 그놈이 삼켰으므로 새 갯지렁이 한 마리를 낚시에 꿰었다. 갯지렁이를 낚시에 꿰는 일은 징그럽고 무서웠다. 갯지렁이 목에 바늘 끝을 찔러야 하는데, 이때 갯지렁이는 고개를 젖혀 나의 손가락을 물어뜯었고 따끔한 아픔이 있었다. 그래도 나는 아프다는 소리 하지 않고 갯지렁이를 낚시에 꿰었다. 그것을 본 아버지가 “아따 우리 작은 놈 낚시꾼 다 됐다” 하고 오달져 했다. 나는 낚시를 바다에 던지고 줄을 풀어주었다. 그때까지 아버지는 아직 한 마리도 잡아올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내 낚싯줄에는 다시 입질하는 느낌이 있었다. 나는 줄을 낚아채고 끌어올렸다. 그것을 본 아버지가 “우리 작은 놈은 아부지보다 훨씬 물머수가 좋다!” 하고 감탄을 했다. 물머수란 고기 잡는 재수가 좋다는 말이었다.

이번에 내가 끌어올린 것도 어른 손바닥만 한 가조기였다. 아버지는 그것을 물간에 넣으면서 “이제 저녁밥에 묵을 횟감은 넉넉하다”고 말했다. 노을이 꺼지고 어스름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나는 계속 낚시를 물에 드리우고 있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시장하지야, 내가 물회를 만들어야겠다. 너는 계속 낚시질해라.” 아버지는 낚싯줄을 오른발 엄지발가락에 감아 놓고 도마와 칼을 꺼냈다. 고기를 도마에 올려 놓고 칼로 비늘을 걷어냈다. 그때 내 손 끝에 고기 입질하는 느낌이 있었다. 나는 잡아채고 나서 줄을 끌어당겼다. 이번에는 줄이 팽팽하게 켕겼다. 아주 큰 고기인 듯싶었다. 과연 뱃전 가까이 올라올 때 보니 팔뚝만 한 보구치였다. 그것을 본 아버지가 얼른 뜰채로 떠 올려 물간에 담았다.

아버지는 “저놈은 잘 말렸다가 제찬으로 써야겄다” 하고 흐뭇해 하며 횟감을 썰었다. 풋고추를 썰고 마늘을 까서 쪼아 놓고, 시금한 열무 물김치를 몽글게 썰어 대접에 담고, 물을 부은 다음 된장 한 숟가락을 떠 넣고 횟감을 넣어 양념과 함께 휘휘 저었다. 한 숟가락 맛을 본 다음 싱거운 듯 된장을 더 풀어 간을 맞추었다.

“작은 놈아, 먼저 밥 묵고 나서 고기 잡자” 하고 숟가락 하나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나는 먼저 된장물회를 맛보았다. 비린 맛 없이 새콤하고 매콤하고 알싸하고 씹히는 생선회의 맛이 달콤했다. 보리쌀 섞인 밥을 말아 먹었다. 일렁거리는 짙푸른 바다에 뜬 목선에서 아버지와 마주 앉은 나는 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하늘을 머리에 인 채 달콤한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아버지는 달게 잡수며 말했다. “아이고 괴기 안 잡혀 맨밥을 먹을까 걱정했더니 우리 작은 놈 덕분에 맛있게 먹는다. 우리 집에서는 우리 작은 놈 물머수가 제일 좋은 것 같다.” 저녁밥을 먹은 다음 아버지와 나는 별빛 쏟아지는 어둠 속에서 낚시질을 계속했는데, 고기가 입질을 해주지 않아 내가 꾸벅꾸벅 졸자 아버지는 돛폭으로 나를 덮어 주었고 나는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지금 장흥 안에는 횟집이 무척 많다. 회진면 바닷가는 물론 장흥읍내에 산재한 횟집들이 경쟁적으로 된장물회를 웰빙식품으로 자랑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장흥 회진면 일대의 어부들이 배 위에서 즐겨 먹던 음식이 육지로 올라온 것이다. 여름철에는 더욱 인기가 많아 예약을 해야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먹을 수 있다. 회진면 바닷가 횟집들은 앞바다에서 잡은 자연산 농어, 도미, 갯장어, 쑤기미, 병어들을 된장물횟감으로 쓰고 있어 찾는 사람들이 많다.

한 주일에 한 번씩은 아내와 함께 된장물회를 먹으러 가기도 하지만 서울이나 광주, 부산 등지에서 찾아온 손님들하고도 간다. 된장물회를 먹을 때마다 환갑을 겨우 넘기시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출렁거리던 짙푸른 득량만 바다의 물너울이 그립다. 그것은 아릿한 추억의 맛이다. 요즘 횟집에서 먹는 된장물회는 시디신 열무 물김치에 식초와 매실효소를 넣고 청양고추와 마늘과 얼음과 고소하게 볶은 참깨 가루를 가미하기 때문에 더욱 맛이 향기롭고 소화도 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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