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두, 대한민국 제3‧4대 국회의원 역임하다
손석두, 대한민국 제3‧4대 국회의원 역임하다
  • 김선욱
  • 승인 2018.08.3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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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인물(3)/국회의원 손석두
자유당 전남도당집행위원,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위원장 역임
‘자유당 3.15부정선거’ 가담 이후 2회 국회의원도전에 실패
‘말년 불운, 쓸쓸’… 67세 숙환 별세, 고향 안양 선산에 안장

손석두(孫錫斗. 1911.1.24~1976.4.4)는

손석두는 대한민국 제3,4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말년은 불운한 정치인이었다.
손석두는 대한민국 제3,4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말년은 불운한 정치인이었다.

손 의원은 경성부 중동학교,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를 졸업하였다.

8.15 광복 후 우익 정치인이 되어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장흥군지부장, 대한청년단 장흥군 단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한편 장흥군에 박애원을 설립하였다.

■해방 후 장흥 정치인 3인 중의 1인

해방 후 장흥군에는 제헌국회의 후보로 3명이 있었다.

이들 3인이 해방 후 장흥군 정치 일선에 나선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해방 후 한국 정계는 대체로 민족 진영과 좌익 진영으로 분류되었다. 여기서 민족 진영 측의 인물로 손석두와 고영완이 있었고, 김중기 씨는 민족진영과 좌익 측의 중간 진영의 사람이었다.

제헌국회 진출을 희망하였던 민족진영 측의 후보로 손석두 후보 외에, 미군정하(1994년말~1948년 8월 15일)에서 초대 장흥군수를 역임한 후 독촉국민회(獨促國民會)에 참여하였다가 제헌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독촉국민회에서 탈퇴하며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송진우(宋鎭禹) 등이 창당한 한국민주당에 입당, 한민당 후보로 입후보하였던 무계 고영완이 있었다.

김중기 씨는 또 8·15광복 후 여운형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최초의 건국준비단체인 조선건국준비위원회에서 지방조직 장흥읍을 맡았던 인물이었다.

당시 김중기 씨는 민족진영과 좌익 측의 중간진영으로, 민족진영 측 고영완, 손석두의 난립을 이용하려고 출마하였던 것이다.

■제1대 국회의원 선거-고영완에 양보

이런 정치 상황에서 손석두 후보는 과감하게 후보직을 사퇴하여 고영완 씨를 지지하고 나서게 된다.

(‘중간파 입후보로 장흥 손 씨 기권=전남 장흥군에서는 민족진영 측에서 고영완 손석두 양 씨가 입후보로 출마하였는데 그 난립을 이용하여 중간진영의 김중기 씨가 출마하여 중간파와 좌익의 협조를 얻어 민족진영의 당선이 우려되던 바, 손석두 씨는 자진하여 자기의 투표 지반을 동지 고영완 씨에게 일체 양보하여 후보 난립 방지에 좋은 모범을 떨치었다.’-동아일보.1948.4.21.)

그럼에도 당시 고영완 씨는 좌익 계열의 지지를 받은 중도 성향의 무소속 김중기 후보에 밀려 낙선하고 만다.(총 투표수 35,644 ▸김중기 22,979표 득표율 64% ▸고영완 12,665표 득표율 36%)

장흥출신으로 대한민국 제1대 국회의원이었던 김중기(金仲基, 1901년 생) 씨는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장흥읍장(초대)을 역임했으며, 1950년 5월 30일에 치러진 제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재선을 노리고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 이후 한국동란 때 월북하였고, 1956년 7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중앙위원을 지냈지만, 1957년 3월경 순안농장에 배치되고 1959년 초 숙청사업 시 함북 무산방면으로 추방된 것으로 알려져, 1959년이 그의 사망 연도로 표시되고 있다.

손석두 씨는 1950년 5월 30일 치른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 후보로 입후보한다.

당시 후보는 초대 국회의원이었던 김중기(무소속, 득표율 27%, 전 국회의원)를 비롯, 고영완(민국당, 37%, 동경전수대, 장흥군수 3년) 외에도 이세옥(무소속, 20%, 장흥읍장 9년), 박진(무소속,11%, 대졸), 이양래(무소속,7%,대졸), 장순섭(무소속, 5%, 대졸, 학교장3년), 김형배(민국당, 3%, 전문대졸),김종석(무소속, 2% 중졸), 손석두(무소속, 5%, 전문대졸) 등 9명의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당시 민국당 소속의 고영완 씨가 당선된다.

■제3대‧4대 국회의원 되다

손석두 씨는 1954년 5월 20일에 치러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자유당 소속으로 재도전, 2대 국회의원이었던 고영완 씨를 낙선시키며 제3대 국회 등용에 성공한다.

(▸손석두, 자유당, 득표수 15,810표, 득표율 38% ▸고영완, 민국당, 14,925표, 36% ▸이병민, 농민당, 8,194표. 19% ▸윤대하, 유도회, 1,900표 5% ▸정동렬,무소속,813표 2%)

당시 손석두 후보는 ▸1911년 1월 24일생(43세)▸재임기간=1958.5.12∼1960.7.28 ▸주소=장흥읍 기양리 ▸직업 양조업 ▸학‧경력-보전상과(普專商科)졸, 장흥군 국민회 회장 등이었다.

제2대 국회의원이 된 이후 손석두는 북진통일투쟁위원회 장흥군 위원장, 자유당 전리남도당 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이어 1958년 5월 2일의 제4대 국회의원선거에서도 자유당 소속의 손석두 씨는 재선에 성공하며, 3대~4대에 도전했던 민주당 고영완 씨에게 다시 고배를 들게 했다.

(손석두, 26,851표 55.8%/고영완 21,248표,44.2%)

재선 국회의원이 된 손석두 씨는 1959년 대한민국 국회 재정경제위원회(현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3.15부정선거 가담 낙인-2회 국회재도전 다 실패

1960년 7월 29일 제5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이 선거에 앞서,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선거가 치러졌는데, 이 선거는 이승만대통령이 12년간 지속된 장기집권 체제를 연장하고, 승계권을 가진 부통령에 이기붕(李起鵬)을 당선시키기 위하여 대규모 부정행위를 저질렀던 이른바, 3.15부정서거가 자행됐고, 이는 결국 4·19혁명과 이승만 정권 및 자유당의 붕괴를 야기했다.

당시 국회 재정경제위원회(현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까지 역임한 자유당 소속의 손석두 역시 3.15 부정선거 가담과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1960년 7월 29일 제5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4.19 의거와 함께 출범된 허정 과도내각에서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는 참의원(상원 격)과 민의원(하원 격) 선거를 동시에 실시했다. 이때 손석두가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가운데, 민주당 고영완(득표수 26,663표 61.4%)이 무소속 김형배(11,869표, 27%)와 이양래(사회대중당, 4,633표, 10.7%) 두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3.15 부정선거-반민주행위자로 공민권 제한

1961년 손석두는 ‘1960년 3.15 부정선거’ 가담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은 4 ·19혁명 후인 1960년 10월 7일, 반민주행위자(3.15 부정선거 가담자)에 대한 처벌을 규정한 특별법으로 국회가 헌법을 개정하고, 1961년 1월 6일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을 제정, 공포했다. 이 법에서 ‘공민법’의 적용 규준을 공무원 지원 자격 박탈과 선거권 및 피선거권의 제한으로 삼았고, 공민권 제한 대상자를 부정 선거 관련자 및 부정 축재자로 정했으며, 선거관련 부정을 저지른 주모자급은 7년간 공민권을 제한하고, 기타 관련자는 심사 과정에서 관련 사실이 현저히 나타날 때 5년간 제한하도록 했다.

1961년 2월 25일 법무부는 1차로 주모자급 609명(이후 추가 공고자를 포함해서 주모자급은 총 629명)에 대하여 7년간 공민권을 제한한다고 공고하였다. 이 609명 중 손석두는 제4조에 속한 231명 중의 1인에 포함됐다. 여기서 제4조는 ‘특정한 지위에 있었던 자로 그 지위를 이용하여 현저한 반민주 행위를 한 자’로 간주한다는 규정에 따라 자동적으로 개인의 주관적 의지와는 관계없이 지위와 역할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했다.

결국 손석두는 1960년 3.15 부정선거 가담자로 인정되어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저촉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고, 이 불명예가 이후 그의 정계 재진출의 도전을 막는 족쇄가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 후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은 소급입법으로 국민의 참정권을 제한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논의가 많았고 5·16군사 정변이 일어나면서 제대로 시행되지도 못하였고, 끝내 ‘정치활동정화법’(1962.3.16. 법률 1032호)에 의하여 폐지되었다. 이 결과 손석두는 제6대, 제7대 국회의원선거에 도전할 수 있었으나 매번 실패하고 말았다.

■제6대‧제7대 국회도전 –길전식에 밀렸다

제6대 국회의원 선거는 1963년 11월 23일 치러졌다. 5.16으로 제2공화국이 사라지고 혁명정부가 민정 이양을 한 후 제3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치러진 선거였다.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하지 못했던 손석두 씨는 족쇄(‘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으로 공민권 제한)이 풀리면서 다시 국회의원 3선에 도전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여 3선 도전에 나서고자 했으나 공천에서 길전식에 밀려 탈락하고 만다. 이에 반발하여 민주공화당을 탈당하였지만 끝내 제6대 국회의원선거에는 참여하지 못했다.(제6대 국회의원 선거=▸길전식, 민주공화당, 득표수 15,643표 31.3% 당선 ▸김영태, 신민당, 득표율 24.6% ▸박석희, 국민의당, 19.8% ▸김형배, 민주당, 7.3%)

1967년 6월 8일 제7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이 선거에서 손석두 씨는 다시 예전의 자유당 후보로 나서 전라남도 장흥군 선거구에 출마하며 정치계에 재도전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길전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때 손석두 씨의 나이는 56세였다(▸길전식, 민주공화당, 25,932표, 52.0% 당선 ▸손석두, 자유당, 5,035표, 10% ▸김영태, 신민당, 15,813표, 31,7% ▸이양래, 한국독립당, 3,119표 6.3%)

결국 손석두 의원은 제3,4대 국회의원이었지만, 제5대에서는 자유당 3.15 부정선거로 자유당이 몰락하면서 선거에 불참하였고, 제6대 선거에서는 공천에서 길전식에 의해 후보가 되지 못했으며, 제7대 선거에서는 정식 후보로 나섰지만 다시 한 번 민주공화당 길전식에 패하면서 결국 4대 국회 이후 3회에 걸친 정계 진출 재도전마다 실패, 그의 말년은 실패와 좌절 등 불운이 연속되는 쓸쓸한 삶이 되었다.

손 전의원은 1976년 4월 4일 서울 도봉구 수유동 239의 6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

세했다(동아일보,1976년 4월 5일). 향년 67세였다. 손 전의원은 장흥군 안양면 교동리 선산에 안장되었다.

■이양래, 김형배도 불운의 정치인

한편, 장흥의 거물 정치인 고영완 손석두와 동시대에 태어나 1950∼1970년대에 3회째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다가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불운의 정치인으로 이양래와 김형배가 있었다.

일본 동경 명치대법학부를 중퇴했고 전 근로시보사 논설위원도 역임했던 이양래(李陽來, 191년생, 안양면 출신)는 제2대(무소속 2,912표 7%), 제5대(사회대중당, 4,633표 10.7%) 제7대(한국독립당, 3.119표 6.3%) 등 3회에 걸쳐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으나 매번 고배를 마셨다.

또 전문대학 졸업으로 민주한국당과 민주국민당 소속이었던 김형배(金亨培, 1912년생) 역시 제2대국회의원 선거에 도전(민국당, 1,205표, 3%) 한 이래 제5대(무소속 11,869표, 27%)와 제7대(민주당, 3,650표, 7.3%)에도 도전했으나 도전했으나 매번 탈락하는 불운을 겪었다./김선욱 기자

<손석두 의원 프로필>

△중동학교 졸업 △보성전문학교 졸업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장흥군지부장 △대한청년단 장흥군 단장 △북진통일투쟁위원회 장흥군위원장 △장흥군 국민회회장 △제3대국회의원(자유당:1954.5.31.-1958.5.30.)△제4대국회의원(자유당: 1958.5.31.-1960.7.28.) △자유당 전남도당집행위원 △제4대 국회4대 재경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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