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文林 고을 장흥, 가사문학·고문학 재조명돼야 한다
사설-文林 고을 장흥, 가사문학·고문학 재조명돼야 한다
  • 김선욱
  • 승인 2021.07.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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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학의 뿌리 ‘가사문학 자료집’ 재발간 주문에 부쳐

모 대학교 학생이 학사논문으로 ‘호남의 가사문학’을 준비 중이어서 장흥의 가사문학에 대한 자료가 필요하다 고 요청해 왔고, 후에 이중전의 ‘장한가’의 내용이 이상하 다며, 원문을 보내줄 수 없느냐고 다시 요청해 온 적이 있 었다.

이에 장흥의 한학자 치인 이봉준 선생에게 이를 문의 하니, 치인 선생은 “이미 ‘장흥의 가사문학’ 자료집(책자) 에서 ‘장한가’가 엉망으로 편집, 발행된 것을 잘 알고 있 다”면서, “직접 대조해 보라”며 원문 복사본을 보내 와, 비로소 책자에 소개된 ‘장한가’의 편집이 크게 잘못됐다 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우곡 이중전(愚谷 李中銓, 字 和執, 1825∼1893)은 비 록 가사 ‘장한가’ 1편을 남겼지만, 문집 『우곡집愚谷 集』을 남겼으며, 이 유집에는 유시 145여 수가 있어, 당 대 지역에서는 큰 시인으로 명성을 가졌던 장흥의 선비 요 문인이었다.

그리고 그 유시 중 한 편이 장편 가사로 ‘장한가(長恨歌)’였다. 시인‧평론가로 조선대 국어교육과 교수 출신인 백수인 에 의하면, 호남 출신의 가사작가는 31명이고 작품 수는 총 56편에 이른다.

그 중 장흥 출신 가사 작가는 기봉 백 광홍을 비롯 7명으로 전체 가사 작가의 22.58%에 이르 고, 작품 수는 총 15편(작자 미상 2편 제외)으로 전체 호 남 작가 작품 수의 26.79%를 차지한다.(가사문학의 고장 이라고 자칭하는 담양군-창평포함-은 가사작가 5명, 작 품 11편).

이러한 장흥의 가사문학으로 인해 조선조 후기 장흥은 ‘장흥가단(長興歌壇)’으로 불릴 만큼 가사문학이 성세하 였던 문림의 고을이었고, 이러한 가사문학의 성행과 장 흥만의 독특한 문맥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전승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당대의 장흥 가사문학은 오늘날 장 흥을 ‘문학의 고을’로, 문림의향(문림(文林義鄕)으로 불리 울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조선 후기 장흥의 가사문학은 장흥문학에서 주 요한 역사적, 문학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1979년 장흥군은 문림 고을 장흥의 든든한 뿌리로서 장흥 가사문학을 조명하는 자료집을 발간한다. 이 책자 에서 장흥의 가사문학 전부를 소개하였고, 백수인‧장희 구 박사의 장흥 가사문학 관련 논문과 새로 발굴된 가사 작품 5편도 소개하였다.

그로부터 5년 후인 2004년에 재발간된 동일 제목의 책 자는, 1979년본 책자 내용 외에 고단의 ‘친정길’ 외 2편과 작사 미상의 ‘임계탄(壬溪歎)’을 부가하였지만, 기존의 장 흥 출신 작가들의 작품은 1979년 본을 그대로 전재하는 편집으로 발행했다. 만일 1979년 본 책자에서 이중전 작품의 오류를 발견 하였다면, 2004년 재발간본에는 당연히 수정 편집으로 발간돼야 마땅했는데도, 1979년본 ‘장한가’의 오류 편집 은 2004년 본에도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장흥 가사문학 자료집으로 발행돼 있는 『장흥의 가사문학』 은 오류 투성인 채로인 것이다. 혹자는 “우곡 선생이 장흥의 가사문학 책자에서 당신 의 작품을 직접 보았다면, 다 읽기도 전에 무덤에서 벌떡 일어났을 것이다”고 했다.

이제 와, 그 책자의 편저자가 누구였으며, 누가 감수는 했는가 고 ‘그 잘못’이며 ‘그 책임’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이제라도, 장흥의 그 귀중한 가사 자료집의 오류를 확인 했으므로, 당연히 이제라도 잘못된 부문을 수정하고 보 완해서 보다 완벽한, 제대로 된 원고로 재편집‧재발행되 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기왕에 ‘장흥의 가사문학’이 재편집‧재발행된 다면, 차제에 한문이 포함된 원문 그대로의 작품 소개와 함께 부문 부문에 주석도 곁들이고 작품에 대한 전문가 해제며 평설도 곁들여, 한글 세대의 후인(장흥인이나 외 지 문학인 등)도 능히 당대에 크게 부흥된 장흥의 가사문 학을 충분히 공유될 수 있도록 하면 더 나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장흥 가사문학의 재조명이 절실히 요구 되는 것이다. 한 그루의 나무도 뿌리가 단단하면 그 줄기 또한 무성 하기 마련이다. 오늘날 장흥이 문학의 고을로 문림의향이 되고, 전국에 서 유일한 문학기행 관광특구가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장 흥문학의 뿌리인 가사문학과 가사문학 이전의 한시(漢 詩) 등 장흥의 고문학이라는 단단한 문학적 기반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고려조 후기, 당대의 대선사로, 삼국시대 이후부터 조 선조 초까지 승려 문인으로 가장 많은 작품이 『동문선 (東文選)』 등재되어, 명실상부 고려조 불교문학의 최고 봉에 올랐던 장흥 출신의 승려 시인 원감국사 충지의 문 학이며, 조선 조 중기 장흥의 한시 문학의 성세를 주도했 던 천방 유호인의 문학도 우리가 새롭게 조명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200여 명의 역대 장흥 출신 문 인들의 문집 등을 국역화 하는, 이른바 ‘장흥 고문학 조명 프로젝트’도 추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는 지금 장흥문학의 뿌리로서 그 가사문학과 장흥의 고문학 등을 등한시하고 무시하는 경 향이 짙다. 이는 뿌리를 의식하지 않은 무성한 줄기의 나 무만 의식하는 것이나 진배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장흥문화원 서고에 보관된 역대 장흥 문인들의 유문집(원본, 복제‧필사본 등)은 120여 종에 이른다.

이 밖에도 여태 수습되지는 않았지만, 장흥의 성씨 대종회 나 그 후손들이 보관하고 있는 유문집은 대충 60∼80여 권으로 파악되고 있어, 오늘날까지 전승돼 오고 있는 역 대 장흥 문인들의 유문집만 어림잡아 200여 권 이상에 이를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기실 의향(義鄕)의 요체에 속하는 의리(義理)·절의(節 義) 정신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기반이 문(文)에 있 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역대 문인들이 남긴 장흥의 전체 유문집을 수습하고 이를 해제하고, 또 국역화 하는 등 ‘장흥 역대 유문집의 집대성’이야 말로, 진정으로 문림의향의 정체성 을 규명하고 문림의향의 그 기본 바탕을 밝히고 널리 알 리는 일에 다름 아닐 것이다.

아직 늦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적기도 여태 가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더 늦으면 이 적기마저 절로 가셔지고 말 것이다. 장흥군이, 장흥문화원이, 장흥의 문화계가 이제 라도 장흥문학의 뿌리인 가사문학의 정체성 규명과 재조 명, 역대 문인 고문집 국역화 사업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서둘러 추진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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