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인 시인, ‘태고의 숨결 담긴 뜨거운 서정의 노래’ 읊다
백수인 시인, ‘태고의 숨결 담긴 뜨거운 서정의 노래’ 읊다
  • 장흥투데이
  • 승인 2021.09.0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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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집 '더글러스 퍼 널빤지에게' 출간( 푸른사상 시선 147)
고향집서 "별들의 반짝이는 몸짓 내 가슴에 담뿍 담겠다"
백수인의 새 시집 '더글러스 퍼 널빤지에게'

 

시인 백수인

백수인 시인(조선대학교 명예교수)이 새 시집 <더글러스 퍼 널빤지에게>를 펴냈다.(푸른사상 시선 147/132/10,000)

시집 <바람을 전송하다> 출간 이후, 4년여 만에 발간한 두 번째 시집인 이 시집에서 백 시인은 섣달 그믐56편을 묶었다.

마을 앞으로는 억불산 그리고 바로 등 뒤로 사자산을 눕혀놓은 기산리는 두 명산의 정기와 인맥(仁脈)을 자양분 삼아서인지, 예로부터 지금까지 장흥에선 독특한 문학의 마을로 입지해 오고 있다.

시집 <더글러스 퍼 널빤지에게>를 펴낸 백수인 시인도 기봉 백광홍의 후인으로 기산리 출신이다. 그의 선대로 가면 장흥문학의 토대를 쌓으며 당대 문명(文名)을 크게 떨친 기봉 백광홍과 옥봉 백광훈 형제가 있었다. 후대로 와선 백수인의 고조부 백운희(시 수편을 남겼으며, 마을에서 시문을 가르쳤다)에 이어 지금은 시인 백수인, 소설가 백성우 형제가 기산리의 그 독특한 문맥을 전승해 오고 있다.(소설가 고 김석중, 시인 김선욱도 중고시절 동계마을에서 살았다)

고향 마을에 안착, 2의 문학인생을 알차게 일구어가고 있는 백수인이 펴낸 이번 <더글러스 퍼>에는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 이야기는 물론 자연과 역사를 노래하는 시편들이 많다. 독자들은 이러한 시인의 가족과 자연 사랑에 대한 시편들에서 시인의 치열한 삶의 열정과 밝고 투명한 서정의 숨결을 공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특히 자연과 역사를 읊은 시편에서도 그 시들은 시공을 초월한 아픔과 자기 부끄러움이 기저가 되고, 나아가 자기 승화의 확장으로까지 연결되고 있어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이에 대해 나종영 시인은 백수인 시인의 시편들은 시간적으로 현재와 과거를 비약적으로 오가며, 공간적으로 주체의 자기보존 지점을 넘어서 보다 커다란 지평을 향해 확장되어가는 시적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시적 스케일의 구심점에 언제나 자기 자신을 두고 있어 서정의 자기 본위에 충실해 있다. 이때 구심점으로서의 자기 자신이란, 대상에 대한 상실과 회복을 시인이 모티프로 삼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자아 대상 세계로 확대되어가는 시적 이미지를 통해 서정이 지닌 자아의 무한성을 구축해가고 있는 것이다. 백수인 시인의 독특성과 보편성은 이와 같은 시세계 구현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중략)”고 평가하고 있다.

다음은 백 시인의 억불바위라는 시다.

단 한 번도 당당하게 쳐다 본 적이 없는 당신을 향해 걷는 길이었어요

환하고 널찍한 오르막길을 따라 고개를 넘고 있었어요. 숨이 목까지 차오르자 문득 먼 길 당기고 싶은 욕심에 지름길을 택해 숲속 길로 들어섰지요 그런데 얼마쯤 지나자 길은 자취도 없어지고 하늘 높이 솟은 편백나무 그림자가 나를 덮치고 내 눈을 가렸어요 그리고 나무의 썩은 시체들이 가로세로 즐비하게 누워 내게 손사래를 치고 있었어요 여기저기 웅덩이가 파여 검은 물들이 출렁거리고 동서남북의 방향이 그루터기 속으로 곤두박질쳐 박혀버렸지요 어디선가 도깨비바늘이 폭풍처럼 몰려와 내 몸에 치욕처럼 덕지덕지 달라붙었어요 가시 돋친 넝쿨들이 내 다리를 걸고 멱살을 잡았어요 하늘을 쳐다보면 나무우듬지들이 무서운 시선을 한꺼번에 내 몸에 내리꽂았어요 얼마나 많은 허방을 딛고 얼마나 많은 허공을 허우적댔던가 나는 그때서야 스스로 새 길을 만들 수 없다는 걸 겨우 깨달았지요

나는 살아남기 위해 몸을 낮추고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어요 아래로 더 아래로 줄곧 내려가자 마침내 어디선가 하늘빛이 터지고 편편하고 반듯한 새 길이 나왔어요 그 곁에 작은 시내도 졸졸졸 흘렀지요

그때서야 당신이 내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 환하게 뚫린 산길의 끝자락에서 나는 비로소 당신의 거룩한 얼굴을 당당히 쳐다볼 수 있었어요

-억불바위전문

시제는 장흥의 억불산을 상징하는 억불바위라는 자연물이지만, 시의 본질은 억불바위신적(神的)인 존재같은 대상인 당신이고 내용은 자신의 삶에 대한 통찰이다. 하여 그 당신아래서 몸을 꼿꼿이 세우고 높은 곳만을 지향하고자 했지만 헛길만 헤맨, 부끄러운 자신에 대해 자성한다. 그리고 비로소 이제야 새 길인 다른 길, 몸을 낮추고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발길을옮기면서 당당해지고 당신(억불바위)’도 부끄러움 없이 당당히 우러를 수 있게 되었다는, 이른바 통렬한 삶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명시다.

다음은 시 주먹밥이다.

우리는 주먹밥으로 뭉친 끈끈한 밥알들이다

산수동 오거리에서

대인시장에서

양동 닭전머리에서

광주의 어머니들이

뜨거운 손바닥으로 꽉꽉 쥐어 뭉친 동지들이다

 

우리는

광주 청년들 몽둥이로 두들겨 패고

무고한 시민들 사냥하듯 쏘아대던

무차별 무자비 살육의 부대

공수부대 군사 깡패들

모두 울밖으로 몰아내고

평화가 출렁이는 광주를 지키는

시민의 아들 딸 시민군이다

 

교통도 통신도 끊긴 고립된 섬 광주의 오월

동네 가게에도 백화점에도 은행에도 마트에도

금남로에도 충장로에도 화순 너릿재 가는 길에도

시민들의 따뜻한 마음이 큰 강물로 흐르고 있다

역사 앞에 모든 이기심 다 털어버린

서로 어깨를 겯고 한 길로 나가는 대동 세상

우리는 시민정신으로 꽁꽁 뭉친

뜨거운 주먹밥 속 밥알들이다

광주를 지키는 시민군들의 속을 뎁히는 주먹밥

그 안에 뭉쳐 있는 자유 민주 자주 인권 평화 통일의 불타는 열망이다

-주먹밥전문

이 시는 5.18과 그와 연관된 주먹밥이 주제다. 이 시에서 소환한 것은 그 시대적 아픔에 대한 기억들이다. 시인은 치열했던 그 시대적 아픔을 소환하고, 그 아픔이 바로 대동 세상인 민주정신을 구현하는 데 있음을 갈파하고 있다.

이 시에 대한 평자 손남훈 씨도 무자비한 살육속에서도 훼손되지 않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고립되어 있음에도 서로 어깨를 걷고 한 길로 나갔던 체험들을 복원하고 재현함으로써 그 숭고한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고자 하는 시인의 과거 회상 방식은 더 보편적 대동세상에 이르기까지 확장함으로써 시민정신의 현재화된 의미를 밝히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이번 <더글러스 퍼> 시집에는 이처럼 거의 모든 시편에서 시인의 시공을 초월한 아픔이 진하게 배어있다. 시인은 그 아픔을 가감없이 들여다보며 자기 승화와 보편적인 가치로의 지평을 확장시키면서 자기만의 시의 예술성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또 백수인 시인의 시선도 고향 집이 자리 잡은 전남 장흥부터 두만강 건너에까지 무한하게 펼쳐지며 시 세계를 무한정 확장시켜 놓고 있다.

이처럼 백 시인은 어느 시인의 평처럼 슬픔을 녹여내어 영롱한 이슬을 만들 듯 용광로 속에 쇳물같은 시어, ‘태고의 숨결같은 시어로 뜨거운 서정을 노래하며 아름다운 서정시를 창조, 더욱 큰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백수인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대대로 10대를 이어온 고향집을 이제 내가 지키게 되었다 유년 시절 나를 감싸던 솔바람은 나에게 를 데려다주었고, 나는 그와 함께 한 생을 살아왔다. 돌이켜보면 그는 나에게 꾸준히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쉴 수 있는 집까지 마련해주었다. 나는 그에게 참으로 많은 빚을 지고 살고 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지금부터라도 나를 키워준 그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드려야겠다. 허물어진 돌담 너머로 나뭇잎들이 출렁이고, 나뭇가지 사이로 작은 새들이 포르르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올여름 밤엔 앞마당에 평상을 펴놓고 반듯이 누워 수많은 별들의 반짝이는 몸짓을 내 가슴에 담뿍 담아야겠다고 적어, 앞으로도 더욱 확장된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해 나갈 것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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