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에 포함되며 자가 격리가 시작되었다. 이틀째인가. 자가 격리 하루가 또 시작되고 있다. 이날따라 일요일이여서 그런지 핸드폰 소리가 조금은 조용해 졌다. 거실 쇼파에 멀거니 앉아만 있었다. 그동안의 익숙한 일상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격리생활이 무척 답답하고 불편하다.
끼니도 홀로 챙겨야 한다. 아주 낯설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끼니를 챙겨왔지만 이렇게 혼자 한 끼니를 준비하고 있자니 당연시했던 장보기, 식사준비의 그 소중함이 느껴진다. 된장찌개를 끓이기 위해 풋 호박 한 개만 달라고, 마을 이장 아우에게 전화를 했다. 얼마 있지 않아, 싱싱한 어린 호박 4개와 대파를 가져왔다, 대문 앞에 놔 두고 간다, 며 담장 너머로 소리 치고 휭하니 가버렸다.
도시에서는 저녁에 주문하면 아침에 도착하는 배송서비스를 편하게 이용한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가당치 않다. 끼니 해결부터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도시가 마냥 부럽지만은 않다. 도시의 식자재 배송 서비스는 빠르고 정확하다. 그러나 우리 이장 아우의 배송은 따뜻함이 배어 있다. 호박 하나가 4개가 되고 덤으로 대파까지 챙겨주는 우리 아우의 마음으로 나는 평생 몰랐을 뻔한 사람 사이의 따뜻함을 비로소 알게 되어 참 다행이라 싶다.
사람은 사람에 기대어 함께 살아가고 서로를 지탱해 살아간다. 역시 우리는 겪어 보지 못한 위기 속에서도 서로에 기대어 이 어려움을 극복해 가고 있다.
집에 있으니 생활필수품이 떨어져 있는 게 한두 개가 아니다. 그동안 의정활동을 핑계로 집안일을 소홀히 했었나 보다. 평소 바쁘게 달리기만 하다 보니 무심코 지나쳤던 것이 너무도 많았다. 그렇게 저렇게 무심히 지나쳤던 사소한 것들이지만, 정작은 우리 삶에 그 사소한 것이 중요한 것들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함께 사는 사람에게도 문득 고마워지는 순간이다. 고요함 속에서 집을 둘러보니 묵묵히 옆에서 이해해주고 기다려준 남편이 더욱더 감사하다.
오후에는 내가 집에 있다는 소식 듣고 안부 전화가 많이 왔다. 불편한 일상에 대해 걱정해주고 응원하는 전화다. 멀리 있어도 전화나 메시지로 힘내라는 말에 기운이 난다. 꼭 만나지 않더라도 걱정하고 염려해주는 그 마음들이 그대로 전해져 행복했다. 자가 격리로 마음까지 힘들 수 있었지만 긴 하루를 벗이 되어준 이들에게도 감사하다. 이것 역시 자가 격리로 깨닫게 된 소중한 가치가 아닌가 싶다
혼자서 식사 후 마당에 앉아 주변을 멍하니 응시했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되지만, 꽃밭에는 무궁화 꽃이 환하게 피어나고 어여쁜 나비도 꽃향기 짙게 품어 보려고 나풀거린다.
저 멀리 바다에는 은빛 모래사장에 갈매기 떼가 젖은 깃털을 말리는지 옹기종기 모여 재잘거리는 모습도 정겨워 보인다. 앞산에 참새 때들도 종달새도 까투리도 다양한 목소리로 하모니를 이루어 오케스트라 연주를 시작한다.
이렇게 값진 시간이 또 있을까. 먹고 자는 것이 사람의 삶이라지만, 아름다움을 느끼며 삶은 더 보석 같아지고 귀해진다. 결국은 내 마음이 바쁘니 사소한 풍경이었을 뿐이다. 여유를 가지고 자세히 보면 값진 삶의 순간들이 무수히 많다. 나를 둘러싼 귀하고 소중한 사람들, 풍경들에 세상에서 가장 풍족해진 느낌이다.
격리기간이 끝나면 가장 하고 싶은 것도 생겼다. 코로나의 위기에서도 서로를 챙겨주며 극복했듯이 나또한 지역민들에 사랑을 나누고 싶다. 신의를 마음에 새기며 지역민을 돕고 내가 느낀 따뜻함을 전할 것이다.
코로나의 해결책은 현재로는 기다림이다. 하지만 이 기다림 속에서도, 우리는 사람의 따뜻함과 일상의 소중함을 새롭게 느끼며 그 기다림을 슬기롭게 극복해 가고 있다. 기다림의 미학으로 남은 한 해 코로나를 잘 극복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