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 시인
팔월 보름달
이 날은 천지에 달이 넘쳐났다
어무니가 우물에서 퍼 올린 달은
불그레한 낯빛으로 허허 웃고
사랑채 할아부지 술잔에선 키득거렸고
공동우물에서 아낙들이 길어 올린 달은
사람들 가슴에 들어앉아
사람들은 죄다 붕붕 떠 다녔다
동그랗게 가지를 피어올린 사장나무 밑에서
매구치는 징이며 북이며 꽹과리며 소구에도
어른들의 신명난 춤사위에도 들어앉아
미친바람을 불어 넣었고
동 회관 앞마당에서 강강수울래 하며
흐드러지게 춤추는 처녀들 저고리 밑으로 숨어들어
처녀들 몸을 뜨겁게 불살랐다
이날 마을로 내려온 달은
마을 곳곳을 휘휘 내저으며 걸어 다녔고
사람들은 그 달을 먹고 마시고
달의 혼령으로 춤추고 노래하고
밤새 헐떡거렸다
지금은 누가 찾지도 않고
마을로 내려와도 반겨줄 사람도 없다
홀로 외로이 떠 있을 뿐.
-2012. <강은 그리움으로 흐른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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