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은칼럼」 내마음의 강 빛나는 스승님들
「야은칼럼」 내마음의 강 빛나는 스승님들
  • 장흥투데이
  • 승인 2021.10.22 16:56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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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장흥중·고의 푸른 잔디
수필가 김창석

가을이 깊어가 목화꽃이 다 떨어지고 국화전시회가 열리고 나면, 야구시합이 끝나면, 첫 눈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 그 죽음의 시그널이 또 시간의 축적물인 추억들을 불러온다.

무정한 세월! 단절과 고독속에 갇힌 쭉정이들 노인, 은퇴자들의 커피잔은 우울과 슬픔의 호수다. 그들에겐 그나마 향수라는 그늘이 있기에 다소 위안이 된다.

필자에게도 아직 잉크가 마르지 않은 1960년대 중,고학창시절의 향긋한 추억노트가 남아있다. 빛 바랜 흑백사진속에 담긴 그리운 얼굴들을 쓰다듬으며 모처럼 친숙했던 국민교육헌장과 쑥덕바지와도 교감 하노라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우정,스승,연인,소풍,방학,졸업식,시험,엽서,극장,빵집,삼각관계등 태마의 소재는 다양하고 끼는 넘친다.

그 첫장은 언제나 스승님과의 만남에서부터 거슬러간다.

필자의 자랑스런 모교 장흥중,고의 사도의 서품에서 그 위상이 대부격인 남전 김용술 선생님을 필두로 최병태,유정운 선생님 세분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중 특히 곧은기개와 선비적인 풍모가 김삿갓의 풍류를 연상케하는 김용술 선생님의 농담이 흔들리지 않는 전설바위처럼 고향의 무게를 대변한다. 중학시절 어린이 합창단을 “아이들 노래떼”라는 스승의 조크는 학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했다.

다음은 소탈하면서도 근면한 맑은 성정의 농학자 최병태 실업선생님의 담백한 미소가 평화롭고, 바로 그 곁에는 온화하면서도 냉정한 성리학의 도덕적 규범이 녹아있는 유정운 선생님의 겸허한 침묵이 주위의 허영과 거짓을 행궈내며 맑음을 깨운다.

이해심 많고 숫기없는 선생님, 학생들을 편하게 대하고 친절한 말투로 명확하고 정확한 질문만을 던지고 학생의 답변을 중간에 끊지않고 끝까지 들은뒤 별다른 말없이 넉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그만 가 봐도 좋다고 말해주는 선생님 !

정녕 이 세분이야 말로 저마다 그 기품이 여유와 위엄의 상징인 홍곡처럼 높은곳에서 제자들의 주변을 살피시고 품어주신 존엄한 스승의 사표이셨다면 비단 필자만의 주제넘는 표현일까?

어쩌면 그 시절 결이 다른 서양문화의 격류에 휩쓸린 청소년들의 거센 저항을 격돌없이 순탄하게 타이르는 방향키의 기초성역은 학교라는 문이었다.

그와같은 풍토에서 10대들의 한창 물오른 예민한 감성을 자극하며 이들의 미래를 조감하는 스토리를 제공해주신 젊은 선생님들의 독특한 케릭터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 맨 앞줄에 국립대학 정치학과 출신의 호방한 인품에 훤출한 외모가 부잣집 귀공자를 빼닮은 퇴근길 선술집의 단골 취객 최광우 선생님을 꼽는다. 그는 진보적 사고와 관대함의 지성으로 제자들과도 자유롭게 소통하였다.

다음은 경쾌한 푸트웍과 날렵한 잽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기교의 알리 정해상 체육선생님과 그와는 대척점인 저음의 바리톤에 묵직한 펀치의 저돌적인 복서 조프레이저 스타일의 김용석 지리 선생님, 두분께서 맏형처럼 우리 곁을 지켜주셨다.

과묵하면서 보스 기질의 마스크에 취미가 등산인 김용석 선생님께서 일찍 요절하셨다는 비보를 듣고 제자들은 한없이 슬퍼했다.

이제 분위기를 바꿔 여선생님 한 분의 매력을 들춰본다.

볼륨있는 몸매에 지적인 욕망을 절제하려는 차가운 눈매의 무용수 발레리나 장옥희 선생님의 뛰어난 감각과 리더쉽의 카리스마가 주목을 끌었다. 선생님께선 무대 위 소녀들의 잘록한 허리를 유연하게 길들이는 한편, 단발머리와 투박한 스커트를 세련된 트랜드로 변화시키는 아우라를 지닌 패션 디자이너의 역할도 한몫 하셨다.

그런데 세상 어디서든 사람들의 질투란 끝이 없다. 기계체조, 중간체조, 트레이너 정해상과 백조의 호수 연출가 장옥희를 그럴싸하게 교묘히 엮어 황당한 염문이 나돌더니 얼마 못가 거품처럼 가라 앉았다.

알고보니 장난꾸러기 얄개들이 지어낸 반짝 가짜 뉴스였다. 하마터면 알만한 한 명문가의 현숙한 종부가 어염집의 음탕한 유부녀로 욕될 뻔했다.

체육과목에 못지않게 음악 선생님의 미려한 악보와 미니 잠자리체 콘닥터도 일품이었다. 아리랑과 칸소네의 간극을 유려하게 접목시킨 음악성에 가곡 가고파와 라팔로마를 청량한 음색으로 꼿꼿하게 발성하신 테너 고지복 선생님의 핸섬한 마스크에 링컨의 사진이 겹친다. 선생님의 나비넥타이와 턱시도의 경건함에 익숙하기까지 우린 최소한 3년을 보내야 했다.

특히, 학교 행사때나 국경일 시가 행진때마다 종잣돈 보리닷되로 창단한 “장흥고 악대부”의 우렁찬 연주는 군민들의 절대적인 성원과 사랑을 받았다. 군 사관생도의 꿩털모와 노란 맨드라미 휘장을 벤치마킹한 화려한 의상에 성난 트렘펫과 큰 호박덩이만한 드럼이 협주한 행진곡 “자이언트”의 박진감 넘치는 리듬은 당시 수척했던 고향의 활력을 고무시키며 흥분 속에 학생들에겐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는 석탄이 되었다. 조용한 고을의 지축을 쿵쿵 울리던 악성, 그 내면에는 선생님의 고뇌의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필자의 가슴속에는 잘 영근 특별한 에피소드 몇줄이 웅크리고 있다. 바로 인연이 깊은 은사님들과의 의미있는 스토리는 나의 성장기 취미와 진로에 많은 영향을 줌으로써 평생 동안 날 행복하게 그 속에 가둬놓고 놓아주질 않는다.

고교 진학을 얼마 앞두고 김용술 선생님께서 국어과목에 재능을 보인 나를 아끼는 마음에서 어느 고교를 지망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실력보단 욕심이 앞서 당시 호남의 명문인 광주 제일고를 희망했더니 선생님께서 한참 생각에 잠기시고 나서 “글쎄 거긴 수재들이 모이는 곳이라서 좀 약한데”하시며 한단계 낮은 광주고를 추천하신다. 단번에 기가 꺾인 나는 결코 만만찮은 광주고에 응시하였는데 그 마저 실력이 딸려 수험번호 72번은 합격자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결국 두체급 낮춰 후기 장흥고에 진학하게 된 부끄러운 사연의 고백임이랴,

필자가 성인이 된 훗날 우연히 시내 한 음식점에서 옆좌석에 계신 선생님을 뵙게 되었는데 스승께서 향기 머금은 표정으로 추억을 회상하시며 “그래 그때 참 영리했어, 우등생이었지, 또 친구들을 꽁무니에 달고 다녔었지!” 나를 격려하여 주신다. 아마 좌중의 시선을 의식해서 나의 체면을 세워주려는 취지에서 배려해 주신 보너스였다.

나는 무안한 나머지 약주 한 잔 공손히 올리고선 바쁘단 핑계로 도망치듯 자리에서 떠났다. 혹여 한 질 컷다고 스승님 앞에서 불경스런 언사라도 튀어나오면 어쩌나 염려되고, 또 한편 스승의 기대에 못미친 제자의 자격지심 때문에 위기의 분위기에서 미리 탈출한 지혜였다.

최근에 와서 지역의 원로 후학들이 정성을 모아 스승의 약력을 새긴 기념 표석을 취지에 맞게 정남진 장흥도서관 입구 화단에 세웠다.

함흥고보와 서울대 사범대학을 졸업하신 재원으로 고향 장흥에 현대문학의 뿌리를 돋우신 선생님을 기리며 고인의 애목 “들꽃나무”를 잘 다듬어 함께 편히 쉬시도록 표석 윗목에다 눕혀 놓았다.

필자가 간혹 마음이 심란하고 문장이 막힐때면 찾아가 은사님의 영혼에 기대어 정신을 추스리고 중심을 잡는 명소이기도 하다.

다음은 인기짱 최광우 선생님과의 코믹한 스토리다.

한번은 영어 수업시간에 HomeTown(고향) 발음을 내가 “곰탕”이라고 하자 교실은 온통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 이후부터 선생님께선 어디서든 나만 보이면 “어이 곰탕!”하고 호명하셨고, 나란 명칭은 졸지에 곰탕이라는 명사가 따라 붙어 옆집 짜장면 홍보대사까지 겸사 귀여움을 독식했다.

그런데 선생님 또한 필자를 뛰어넘는 익살이 발군이다.

요는 school(학교)의 발음을 놓고 마치 학생들이 숯굴에서 구어진다는 의미의 “숯굴:이라며, 또한 Teacher(선생님)의 발음을 놓고도 선생님은 숯굴에서 학생들에게 시달려 파김치처럼 디쳐지므로 ”디쳐“로 해석하는게 맞다며 여백에 훈민정음의 운치를 깔아놓는다.

이 얼마나 해학과 낭만이 버무러진 진보한 가설의 비약인가?

또, 한칸 건너방 화실에 선생님 한 분이 깊은 사색에 잠겨 계신다.

인형처럼 단아한 용모에 호소력있는 보이스, 사서적 영혼이 감도는 화백 엄용준 미술선생님의 모습이 왠지 자신의 중량이 무거운 듯 쓸쓸하게 보였다.

필자는 선생님으로부터 맨 처음 세계 문학사의 거장들의 기호품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매료되었다.

처칠의 시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황금술잔, 제임스 조이스의 지팡이, 윌리엄 포그너의 파이프 등은 달아오른 나의 호기심에 성냥을 그어

오늘날까지 낭만을 탐닉하며 문학의 불씨를 지핀 심지가 된 것이다. 선생님께선 그런 나를 예지로 밝혀 내신 듯 고3 미술시간에 결코 조각상이 못된 나를 교단위 의자에 앉혀놓고 급우들에게 과제물로 그리라고 했고, 나는 자세를 흐트렸다간 화공들의 시선에 방해될까봐 부끄러움을 인내하며 주인이 내려놓을때까지 마치 정물화의 화병처럼 고정된 위치에서 얌전히 놓여 있었다.

나는 그런 정서에 물들어 그 당시 전국 유일한 청소년잡지 “학원”을 애독하며 슬기를 키워갔다.

더불어 내가 10대때 읽은 초원의 집이나 외로운 어린왕자 등 감상적인 소설에서 발전 서사문학의 명료함과 신화가 지닌 다양성을 갖춘 윌리엄 골딩의 명작 “파리대왕”에 심취하게 된 동기부여의 시점이기도 했다.

이제 마지막 교실 고3 박경섭 담임선생님을 찾아 뵙고 문안드릴 차례다. 강직하고 꾸밈없는 성품에 인도의 성자 같은 크고 둥근 크렁크렁한 눈이 매력적인 선생님, 하지만 원래 얼굴 피부가 붉은데다 급한 성격 때문에 대단찮은 호통애도 학생들의 반응은 민감했다. 그땐 학교 교칙도 엄격했다. 특히 전국 최초 남녀고교 공학이라는 교육정책의 허점을 이용하여 상아탑 안에서 조숙한 이성간에 교류하는 억압된 순정의 분출구인 “러브레터”마저 금기 사항이었는데 어쩌다 그 기밀이 선생님께 발각되어 동료들 앞에서 호되게 문초당하는 형극은 차마 보기에 딱한 청춘이 건너야 할 숙명의 강이었다.

필자와 같은 반이었던 이들 화제의 주인공 주거석이와 김머숙이의 순애보는 기어코 그 강을 건너 천생부부로 올인 하였다는데 지금은 무르팍위 손자들의 재롱에 숨이 차 있다나,

우리들 동년배보다 나이가 한 두 살 위였던 그들은 가슴에 뭔가 이글거리는 불덩이를 안고도 거동부터 태연하게 어른스러웠고 생각도 앞섰다.

그처럼 삼엄한 환경속에서 언젠가 필자가 무단결석을 하고선 다음날 닥칠 처벌에 겁이났다. 궁지에 몰리니 생존의 용기가 치솟는다. 당장 급전을 차용 삼학 소주 됫병을 사들고 으슥한 저녁시간 선생님 사택을 찾아가 용서를 빌었다. 그때 곁에서 상냥하게 반겨주시던 사모님의 배려에 나는 긴장을 풀고 여유로울 수 있었다.

다음날 계산은 맞아 떨어져 출석 점호시간 말미에 평소 선생님 답지 않게 무단결석 죄목의 단죄를 엄하게 추궁하지 않고 주의 정도 꾸지람으로 슬그머니 눈감아준 것이다.

속사정을 알 리 없는 급우들은 그저 오늘 선생님의 컨디션이 좋은날이라고만 해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줄기에는 지난밤 나와 숙의했던 묵계가 숨어있을터, 정겹던 시절 사제지간의 미담과 현대판 뇌물비리 특혜가 극명하게 비교되는 대목이다.

또 한편으론, 선생님께서 한 때 탈선했던 여수 부둣가 주먹 세계의 체험담을 자랑삼아 털어 놓으면서 사나이 의리를 호언 했는데, 그 코란을 보란듯이 지켜주신 맥락일 수도 있다. 오늘날 정치권에서 거래되는 심야의 외교와 정오의 특사는 그런 역사의 진행형이다.

물리학 전공이신 스승께선 재임시 전국과학경시대회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하셨다. 말년엔 그 격에 어울리게 광주과학고 교장을 역임하셨으며, 은퇴 후에도 성향으로 보아 아직껏 뉴턴의 사과나무 아래서 만유인력의 의문을 캐고 있을 것으로 얼핏 짐작된다.

그밖에도 선생님들의 극적인 일화들이 수두룩하나 죄다 상정하지 못해 아쉽게 생각한다. 다만, 기억에 남은 그리운 선생님들의 존함만이라도 목청껏 불러보며 사은에 감사하고 모처럼 해후의 위안으로 삼고자 함이다.

이름하여 구제술, 구희두, 김내호, 김상철, 김찬기, 김호출, 김형연, 노봉기, 백금선, 손영호, 오용석, 이희갑, 전병곤, 천낙경, 황계연, 말코누나미술선생님 등 얼굴이 선명히 떠오른다.

그분들의 백묵가루 묻은 가냘픈 손목에서, 부릅뜬 눈에서, 담임선생이란 무거운 소명 속에서 제자들을 극진히 아끼는 사도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 학생들에게도 아침 등굣길 한가지 고민거리는 안고 있었다.

특히 비포장 살얼음 등판길, 손등을 호호불며 종종걸음 등굣길의 종착지 학교 정문 통과 검문 절차는 학생들을 긴장케 하였다. 거기다 무게 실은 책가방에 도시락, 체육복까지 힘겨운 도보였다. 어쩌면 가깝고도 고통스런 간이역, 마치 임검원의 검표 확인후 극장 출입이 허용되듯 학교 정문 입구에는 건장한 체격의 학생들로 선발된 규율부 어깨들이 턱 버티고 주변을 호령한다. 의상부터 나치 독일장교 차림의 국방색 가죽혁대에 경고용 호각을 쭈빗거리며 어깨엔 가장 공포스런 활자 “주번 완장”이 학생들을 은근히 위협하며 주둑들게 한다.

검문은 모자, 뺏지, 명찰, 두발, 신발, 지각 등 촘촘한 체크 항목중 단 한종목이라도 규정위반으로 찍히는 순간, 일단 정지 즉시 “가방 내려놓고 저쪽으로 가 있어! 명령이 떨어지고 대기중인 피고석 동료들과 함께 쪼글 뛰기, 풋샾 등 체벌이 집행된다. 그 시절 그깐 체벌은 교육특수 목적상 문교부의 승인 품목이었다. 하여 완장맨들의 위세는 막강하여 나도 완장 한번 차 봤으면 원이 없겠다는 넋두리가 나올 정도였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입법 이전이라서, 억울하게 고스란히 당하고도 속수무책이었다. 우린 그렇게 통렬하게 완장을 체험했다.

완장의 최초 출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추측컨대 군대나 공사판 종교집단 기타 조직 단체에서 권위나 특권의식의 증표로서 조직의 체계적인 질서유지와 원활한 통제를 목적으로 최고 권력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의 표식일터, 그 권한은 오늘날 “을”을 야멸차게 지배하는 “갑질”이란 해머로 둔갑하여 그 기능은 아쉽게도 근본 취지를 무색케 힘없는 자들에게 고통스런 부적으로 배척받고 있는 것이다.

교정의 추억은 더 깊숙한 곳까지 삐긋이 열려있다.

교내 서쪽 탱자나무 울타리 사립문을 밀치면 나즈막히 오두막 단팥죽 집이 있었지, 집 주인은 모습에서 자상하면서도 강당진 기개의 중년 촌부, 코묻은 돈 50원짜리 팥죽을 한사코 많이 먹으라며 넙죽한 국자 등으로 꾹꾹 눌러 퍼주시던 울엄마 같은 아줌마, 일명 용식이 어메의 살가운 모정이 머문 자리다.

바로 그 울타리 옆, 천장이 높은 학교 강당 유리창 틈 사이로 새벽녘이면 세어나오는 가녀린 피아니스트 소녀의 건반음에서 소년에겐 처음 여심(女心)에 대한 동경이 움튼 시기였다.

세월은 흘러 20대 후반의 숙녀로 변신한 그 소녀로부터 어느날 경상도 대구의 한 음악다방에 있다며 필자에게 걸려온 러브 콜, 일순 보헤미안의 고독이 폭발하듯 한참 동안 지나간 여고시절, 자주색 책가방, 그리워라 보고파라 나의 동창생을 노래한다. 두 우정은 한 동안 뜨겁게 반응하다가 갑자기 소식이 뚝 끊겼다. 그리곤 영원히 사라졌다. 아! 딜라일라 불꺼진 그대 창가, 어쩌면 집시와의 짧은 동거였다지만 그 행간에 달콤했던 세레나데의 곡조가 멈춘 순간 만큼 쿵심을 놓친 청년의 가슴에 일말의 싸늘한 물음표로 찍혀졌다.

이제 모두가 흩어져가 다신 껴안을 수 없는 이야기들,

1960년대 필자의 중․고 학창시절 스승님들을 찾아 뵙고 그 시절 감정을 호소하고 만저도 보았다.

어쩌면 청정한 자연과 넉넉한 인정이 함께 호흡하며 이웃간에 하루 건너 나눠 먹고 좀처럼 찡그리지도 않고 허물을 감싸주던 포근한 세상, 필자는 그런 과거가 베푼 행복에 항상 감사한다.

지나간 아름다움이란 우리를 사로잡으며 매혹시킨다. 폐허에는 또 마음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다.

고귀함의 잔해 앞에서 느껴지는 우리의 내면은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한다. 한때 드높고 고상한 광채로 빛나다가 스러진 유적은 우리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킨다. 비유하여 몰락한 재벌, 패망한 권력에 대한 향수의 서글픔 같은 연민 말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또 이렇게도 해석했다. “과거의 아름다운 것은 우리가 경험을 하는 순간에 생기는 감정은 잘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확장된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현재가 아니라 오직 과거에 대해서만 완성된 감정을 지니게 된다.”라고,

그럼에도 요즘 세상은 집단사고의 짓눌린 틀 속에서 각자 도생의 치열한 경쟁과 분화로 인해 감정의 창고는 핍박받고 그만큼 정신적 빈곤으로 삶은 척박하고 회의적이다.

하지만 우리들 곁에 아직도 깊은 산속 옹달샘 같은 온기가 조금은 남아있다. 우리 선조들은 옹달샘 위에 떠 있는 표주박의 달빛 서정에 자연과 친숙하며 시를 읇고 내 한몸 고되다고 그곳에다 함부로 발을 담구지도 않았다.

세월의 변덕에도 우리들의 근원 만큼은 감출수도, 쉽게 지워지지도 않는다.

오늘의 풍요에 포만하여 과거의 행복을 소외시키는건 역사를 망각하는 불충이요, 진정한 행복에 대한 무지이며 고결한 자아의 상실이랄 수 있을 것이다.

친애하는 장흥 중․고동문 후배들이여!

바라건데, 학창시절 우정에 몸살 앓고 스승과의 인연을 깊이 있게 조각하라. 제자가 준비되면 스승이 나타난다는 말이있다. 인연이 운명일지언정 마냥 기다리지만 말고 능동적으로 찾아가서 멘토의 문을 두드려라.그리고 모교의 창연한 모습에 긍지를 갖고 사랑하며 감사하자.

먼 훗날 내가 긴 여행에서 힘을 다 소진하고 다시 찾아올 이곳을, 끝.

※ 프로필

용산면장 역임, 한국작가 수필등단, 한국작가협회 회원, 별곡문학 동인회원, 수필칼럼집「세상의생각,사람의생각」간행, 2020(문학춘추)수필부문 신인상수상, 칼럼니스트, 장흥신문논설위원, 고향의 사람과 사연들의 만들어낸 ‘사랑’과 이야기들을 지나치지 않고 자연속으로 끌어들이며 글쓰기에 정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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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기 2021-10-27 17:04:18
# 최병태 약력
- 출생 : 1921년 06년 16일
- 호 : 규 담
- 장흥초등학교 입학 : 1930. 03.
- 순천공립농업학교 농업과(5년재) : 졸업(1941년03월06일)-(현 순천대학교)
- 중등교사 임용 : 장흥군 장흥교육청 - 1954.05.15.
- 교사재직기간 : 25년 (1954.05.15. ~ 1978.02.28.)
- 일기 : 1921.06.16.~1987.02.22.

최순기 2021-10-27 16:52:46
존경하옵는 선배님
먼저 「야은칼럼」에 추억을 되살려주신 모교 선배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선배님의 칼럼 내용(장흥투데이 뉴스 「야은칼럼」 2021.10.22.16.56)중에서
선생님 세분을 거론하신 내용이 있어 규담 최병태 선생님 자녀중 일부가 소환된 느낌으로 댓글(첨언)을 올립니다.
첫 장 내용 중
『그 첫 장은 언제나 스승과의 만남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중략~~~~
『필자의 자랑스런 모교 장흥중,고의 사도의 서품에서 그 위상이 대부격인 남전 김용술 선생님을 필두로 최병태, 유정운 선생님 세분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중략~~~~
다음은 소탈하면서도 근면한 맑은 성정의 농학자 최병태 실업선생님의 담백한 미소가
평화롭고~~~
댓글(첨언) : 아버지이자 스승님의 직분이셨던 규담 최병태 선생님은 장흥군 부산면 용반리 343번지에서 출생하셨으며 약력 및 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 출생 : 1921년 06년16일
- 호 : 규 담
- 장흥초등학교 입학 :

최순기 2021-10-27 15:14:57
규담 최병태 선생님은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으며 67세에 소천하시어 현재는 장흥군 부산면 선산에 영면하고 계시고 미망인(이기남-1924년생 )은 선생님의 평생 좋아하셨던 농장(장흥읍 행원리)에서 장녀와 함께 생활하고 계십니다.
슬하의 자녀 중 막내 딸 최순옥(1963년생)은 2017년 제87회 현대문예 수필부문으로 현대문예 시에 등단하여 현재는 문학과 사회적기업<꿈을 돕는 사람들>한문강사, 사회복지관 문해반 강사, 경신여자고등학교 평생교육원 강사 역임,조선대학교 평생교육원 인문학 강사등으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야은칼럼」 〃내마음의 강 빛나는 스승님들〃 이라는 주제를 선정하여 연재칼럼으로 모교의 추억과 스승의 발차취를 되살려주신 수필가 김창석 선배님께 감사와 더불어 모든 동문께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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