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을 넘어선 여행을 상상하다
팬데믹을 넘어선 여행을 상상하다
  • 장흥투데이
  • 승인 2021.11.0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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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성균관대 글쓰기교수

짧지 않은 지난 삶을 돌아보니 아내와의 연애 빼고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단연 국내, 국외여행이다. 고딩 때 캠핑 가서 문청 가슴을 황홀하게 물들였던 동백정 낙조부터 ‘대 2병’에 걸려 실존적 깨달음을 위해 투신하려 했던 낙산사 의상대의 시커먼 어둠, 2005년 남북한 작가들이 감격적으로 상봉한 백두산 천지의 일출, 유라시아 대륙 서쪽 끝인 까보다 호까의 낙조 빛내림, 마추픽추의 가슴 서늘한 풍광까지 인생 화면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2년 가깝게 이어지는 코비드 팬데믹은 지구촌 시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우리 부부는 날마다 팬데믹을 넘어선 여행을 상상하며 지낸다. 엊그제는 빗속에서 점봉산 곰배령 산길을 걸었고, 오늘은 TV로 ‘걸어서 세계속으로’ ‘세계테마기행’ 재방송을 본다.

‘여행과 문학, 여행과 글쓰기’란 교양과목을 10년 강의하였다. 처음에는 여행의 개념과 기원, 문화적 의미를 가르쳤다. 신화시대 영웅 탐색담에서 소설과 영화의 기원을 찾기도 하였다. <길가메시 서사시>, <오딧세이>부터 <인디애나 존스>, <반지의 제왕>까지 예를 들었다. 그런데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여행과 문학에서 ‘여행과 글쓰기’로 이름을 바꿔 직접 여행을 떠나고 답사하면서 여정과 소감을 글로 쓰는 방식으로 운영방식을 싹 바꾸었다. 호응이 커졌다.

학교 위치도 반전에 기여하였다. 학교가 한양도성과 궁궐, 대통령궁(청와대), 북촌에 둘러싸여 있고 문묘(성균관)도 있다. 따로 멀리 갈 것도 없이 교내에서 답사를 시작하였다. 정문의 하마비와 탕평비각을 보고 문묘의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를 거쳐 후문 고갯길로 올랐다. 북촌 8경을 답사하였다. 주민생활공간이라 절대 정숙을 요하지만 모처럼 야외에 나온 학생들이 수다 떨고 인증샷 찍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북촌 전망대에서 인왕산, 북악산, 경복궁, 민속박물관, 청와대, 총리공관, 정부서울청사를 조망하며 미래의 너희들 거처라고 너스레도 떨었다.

다음에는 서울 성곽을 답사하였다. 창의문(북소문)에서 출발하여 말바위, 와룡공원, 성북동 성곽길, 혜화문(동소문), 낙산공원을 거쳐 흥인지문(동대문), 광희문에 이르러 남산을 바라보았다. 한양도성 순성(巡城)놀이를 재연한 셈이다. 뒤이은 궁궐 답사. 학교 담을 낀 창경궁 홍화문에서 집합하여 명정전, 함인전, 통명전, 춘당지를 구경한 후 함양문을 통해 창덕궁으로 넘어갔다. 인정전, 선정전, 희정당, 대조전을 거쳐 입장권을 새로 끊고 후원에 들어섰다. 부용정, 영화당, 주합루, 애련정, 관람정, 존덕전, 청의정까지 갔다가 나오는 길에 연경당을 거쳐 돈화문으로 나왔다. 어떤 때는 청계천 광교부터 수표교까지 걸었다.

강의실과 컴퓨터, 스마트폰, 영어책에 갇혀서 스펙 쌓기에 몰두했던 학생들을 한 주에 2,3시간씩 무조건 걷게 하였다. 문화재 해설사도 되고 인생 선배의 조언도 덧붙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조별로 1박 2일 여행, 답사를 다녀와 기행문을 쓰게 했더니 처음엔 몹시 힘들어하면서도 즐거워하였다. 지식, 정보가 아닌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보람이 차츰 공유되었다.

코비드 팬데믹 시대에 여행을 꿈꾸는 것이 뜬금없거나 사치일 수 있다. 그래도 여건이 다 갖춰지면 그때 가서 여행을 다시 하는 게 아니라 지금 바로 ‘저질렀으면’ 한다. 꼭 해외여행이 아니더라도 국내에 여행, 답사할 곳도 많다. 공간 이동, 세상과의 만남이 여행 목적이라면 스마트폰과 랜선으로 충분하다는 분도 있다. 그들에게 눈만 즐거운 관광, 유람이 아니라 고생 여행을 권한다. 인증샷도 찍고 순간의 감동을 음성 녹음이나 실시간 메모로 남기면 더 좋다.

팬데믹이 비대면 가상 만남을 강제하면서 사람들의 직접 만남이 팍 줄어들어 걱정이다. 여행을 하면서 몸으로 낯선 현장을 체감해야 비로소 내가 누군지 실감하게 된다. 그와 함께 나와 다른 타인에 대한 배려와 너그러움이 절로 체득된다. 눈빛과 숨결을 직접 나누는 만남이 일상화되어야 ‘혐중, 혐북’ 같은 증오, 배척의 바이러스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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