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사람들 / 덕운 위황량 선생 , 60여년 ‘배려와 베품의 한세상 산 사람’의 표본
장흥사람들 / 덕운 위황량 선생 , 60여년 ‘배려와 베품의 한세상 산 사람’의 표본
  • 김선욱
  • 승인 2021.11.24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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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베품의 삶 일관 … 문화 활동‧지역봉사의 본보기…문화훈장 추서
존재기념사업회, 존재 현창 등 선생의 공 기려 ‘덕운여광德雲餘光’ 간행도
90줄에도 헌성 지속, 지역사회 관심 놓지 않아 …“참된 복인福人의 삶”

덕운 위황량(德雲 魏滉良) 옹. 1927년생으로, 올해 연세가 망백(望百)도 두 해가 지난 93세이다. 지금도 비교적 건강한 편이다.

홍순석, 한시선집 《천관산》, 덕운에게 헌정

지난 2021년 7월, 장흥문화원은 《장흥 암각문》을 발간했다. 이 책자는 지난 2020년 10월부터 2021년 4월까지 장흥문화원이 해동암각문연구회 홍순석 교수 팀 등과 공동으로 추진한 장흥 암각문 발굴 조사 결과의 성과물이었다.

이때 홍 교수 팀은 2020년 2월 첫 현장 조사 때, 노구인 덕운(德雲) 옹의 안내로 천관사와 장천재 등을 탐방하며 장흥 암각문의 첫 발굴 조사를 시작하였다. 장흥의 암각문 발굴 조사가 덕운 옹의 참여로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이다.

덕운(德雲) 옹과 홍순석교수와 인연은 30여 년 전으로 올라간다. 홍 교수가 1989〜1990년, 강남대학술조사단을 이끌고 장흥지역 문화유적과 민요 조사를 실시하며 관산 방촌마을 방문했을 때 덕운(德雲) 옹이 홍 교수 팀을 안내한 것이다. 이때 존재공 생가 방문 중 《지제지(支堤誌)》 원본을 발견, 존재 위백규의 조명 운동이 본격화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후 장흥과 인연을 소중히 여긴 홍 교수는 장흥과 덕운(德雲) 옹과의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고, 이번에 장흥 암각문 발굴조사 용역을 맡게 됐고, 그 발굴 개시도 덕운 옹과 함께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에 앞서 홍순석 교수는 2020년 7월, ‘역사기행 한시 선집’인 《천관산(天冠山)》을 펴냈는데, 이 책자 표제 뒷장에 “이 책을 평생토록 천관산을 사랑하며 살아오신 덕운(德雲) 위황량 선생에게 바친다”고 표기하고, 이어 ‘책 머리’에서는 덕운 공과의 인연을 회고하며 ‘덕운 선생의 망백 기념 책자로 이 역사기행 한시 선집 《천관산》을 헌정한다’고 적시한 것이다.

90줄에도 지역사회 관심, 헌성 지속해와

지난 2019년 장흥군은 국비 11억여 원을 들여 국도 23호선 관산우회도로 구간인 솔치재 생태통로 조성사업을 추진했다. 그리고 2019년 7월 주민설명회를 가졌는데, 이때 덕운 옹은 솔치재 일대의 사실적인 도면을 손수 작성하여 의견을 제시하는 등, 지역의 현안에 대한 지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은 면모를 보여 주기도 했다.

서예가이기도 한 덕운 옹은 지난 2019년 11월 28일 장흥읍 병천마을 치인서예전시관서 가진 ‘제13회 서가협 장흥지부전’과 2019년 12월 18부터 20일까지 장흥군민회관 2층 소회의실에서 열린 ‘안중근의사 정신계승 서화특별전’에 모두 서예 작품을 초대작으로 출품하는 등 90줄 고령에도 그 활달한 필법의 진수가 여전함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했다.

또 지난 2018년 11월 3일, 장흥읍 평화리 회주사 경내에 고려조 명신이었던 문하시중 총렬공 위계정(忠烈公 魏繼廷 ?~1107년) 신도비가 세워져 그 제막식을 가진 바 있었다. 장흥위 씨 성지성역화 10대사업 중의 하나로 추진된 이 충렬공 신도비는 덕운 옹이 3천800만 원의 기금을 헌성함으로써 제막될 수 있었다.

평생을 ‘배려와 나눔·기부 정신’으로 살아 온 선생의 덕행이 나이 90줄에도 여전히 빛을 발한 위업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덕운 옹은 이처럼 90이 넘은 고령임에도 노익장(老益壯)으로서 ‘성실한 삶의 영위’는 여전하다.

그 성실한 삶은, 바로 윤수옥 전 문화원장이 한 마디로 평한 ‘배려와 베품의 한세상을 산 사람’으로서 삶이다. 이러한 덕운 옹 처세는 10년 20년 3,40년 5,60년 전에도 그랬고 2021년인 지금도 유효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덕운 옹의 이러한 삶의 증표는, 81세 때이던 지난 2007 10월 18일 정부로부터 문화훈장(4등급 옥관)을 서훈한 데서 전적으로 증명되기도 했다. 장흥 출신 인사로 문화훈장 서훈은 2004년 장흥문화원 육성의 공으로 윤수옥 전문화원장이 문화훈장(5등급 화관)을 받은 이래 덕운 위황량 선생이 두 번째였다.

당시만 해도 문화훈장 서훈자는 주로 중앙무대의 문화예술인들이 차지했고, 이에 따라 지역 인사들의 문화훈장 서훈은 경쟁력이 아주 치열했던 때였다. 예년에는 4,5명의 지역 출신 서훈자들이 있었지만 2007년에는 덕운 선생을 포함 고작 2명에 불과할 정도였다. 또 전남북 출신 문화 인사로는 장흥의 덕운 옹이 유일할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훈된 문화훈장이었기에 덕운 옹의 문화훈장 서훈은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문화훈장 서훈은 선생의 나눔‧봉사의 삶 증표

다음은 당시 문화훈장을 서훈한 위황량 선생의 공적 내용을 포함 선생을 소개한 ‘장흥신문’ 보도기사의 일부이다.

“… 덕운 위황량. 올해 나이 81세다. 지난해 회혼과 80순 잔치를 갖기도 했다. 20세 때 결혼하고 22세 때 약방(신생약국)을 개업했으니, 올해로 그의 약업 인생 60년이며, 성인의 삶도 60년이다.

선생의 ‘60년 사회 인생’을 돌아보면, 참으로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영위해 온 삶이다. 그의 기부적인 삶도 26세 때부터 시작되었고(26세 때 관산지서에 반송을 기증하고 27세 때 숭조모선위토답 8두락 봉정), 29세 때 당시 관산면 지방의원에 당선되었으니 30세 이전부터 사회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셈이다.

그 후 선생의 사회봉사, 문화 창달을 위한 봉사, 교육 장학사업 등 지역을 위한 헌신과 봉사활동이 50년 동안 한결같이 지속돼 왔으니, 참으로 치열하게 열정적이고 투사적으로 ‘봉사적 삶’을 불살라 온 것이다. 그가 60여 년 간 숭조를 위한 일은 물론 지역사회를 위한 기부·헌납 행은 지금까지 총 45회에 걸쳐 2억 8천여만 원에 이른다.

선생은 대부호도, 기업가도 아니었다. 또 도회지에서 상업을 일으켜 부를 축적한 것도 아니다. 조그만 시골에서 펼쳐온 ‘약업 인생’이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60년 세월을 한결같이 존재선생 등 선조들의 현창을 위해, 지역사회를 위해, 천관산 가꾸기와 홍보를 위해, 지역의 문화 창달을 위해, 지역 후학들의 면학을 위해, 끊임없이 나누어 주고 봉사하고 헌신하며 살아온 삶이었다.

그는 이 시대 마지막 남은 선비 중의 선비였다. 아름다운 의인(義人)의 한 사람이었으며 서도(書道)에 파묻히며 서예가로 입지하며 휘호를 나누어주는 등 휘호 봉사적 삶도 유지해왔으며, 약국의 약사로서 지역민의 건강수호에도 기여했고, 선조 헌창사업에도 헌신하면서 ‘목사고을 회주 옛터 관산의 수호자’로서 빛나고 향기 나는 삶을 영위해 온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생의 말년에 자랑스런 문화훈장을 서훈한 것이다. ‘복 받은 삶’이 아니라 그 스스로 복을 만들어 온, 진실로 복인(福人)의 삶에 대한 대가이리라. 하여 그의 훈장이 더욱 향기 나는 아름다운 훈장인 것이다.…

모선(慕先)사상, 유림문화 육성에 기여=선생의 봉사정신은 그의 철저한 모선(慕先) 숭모사상에서 시작됐다. 그의 나이 27세 때 신생약방에서 번 돈으로 매입해 그의 재산목록 제1호가 되었던 논 8두락을 숭조 위조답으로 헌납하던 것을 시작으로 ▶조부 덕암공에 대한 《덕암 의렬록》, 《덕암 유고》 발간 ▶종 6대조 존재 위백규 공 《정현신보》 번역 발간 ▶위 씨 사우(祠宇)인 하산사(霞山祠) 신실 건립 ▶존재 위백규 공 동상 건립 ▶덕암 위공 의렬비 건립 ▶전국 위 씨 종친회 장학기금 협찬(2,000만원) 등 그의 애족 숭배 사상과 선조에 대한 현창 사업은 남달랐다.

모선 숭모사상에 투철했던 선생은 유림인(향교 전교 역임)으로서 유림문화 육성에도 적잖게 기여했다. 특히 ▶《유가요람(儒家要覽)》 출간 ▶장흥향교 계단, 제복, 제기 정비 협찬 ▶장흥향교 윤리성금 기탁(2,000만원) ▶장흥충효회관 건립기금 출연(1,100만원) 등 향교 및 유림문화 활성화를 위한 활동을 비롯 기부·기탁의 수범은 유림활동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장학사업‧교육사업‧사회 기부도 헌신적=선생은 관산중학교‧관산고등학교 초대운영위원장, 장흥교육청 행정자문위원장, 관산고교기숙사건립추진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각종 교육 기자재를 헌납하고 기숙사 건립을 주도했으며 ‘관산고교 낙학(樂學) 면학 석탑’ 건립 등 지역교육 환경개선을 위한 교육관련 활동과 교육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 ‘청운장학회’ 창립과 제1‧2‧3대 회장을 역임하며 지역의 장학 사업을 선도했으며, 개인 자격으로 3천만 원을 출연하여 ‘천관장학회’도 창립, 명문대학 합격자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오는 등 지역인재 육성에도 기여해 왔다.

이외에도 관산읍 마을표석 42개 방범등 7개 설치, 관산읍 경로당 유도회에 답 3두락 씩 봉정하는 등 지역사회를 위한 기탁 행에 모범을 보이면서 숭조‧사회‧장학 부문에서 선도적인 기부문화 정착에 기여하였다.

천관산 가꾸기 사업에 헌신적 참여=선생은 특히 천관산 가꾸기에 열정적으로 참여해 왔다. 즉 ▶천관산 봉수대 복원(86년) ▶회주고지 천관낙토 천관산 표석 건립(91년) ▶천관산 도록 《사진으로 본 천관산》(4×6배판, 24면, 올 칼라) 3,000부 발간, 전국 배포(92년) ▶《지제지支提誌》, 500부 발간 배포(74년) ▶《지제지支提誌》 한글 번역본 발간 협찬(5백만원, 92년) ▶장천동 도화교 건립(78년) ▶천관산 장천동에 영월정 건립(93년) ▶장천동에 회주목사골 및 천관산 홍보석 건립(2004년) 등 천관산 알리기와 천관산 가꾸기 사업에 평생을 결쳐 헌신적으로 주도해왔다.

지금 80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관산읍 천관산 고인돌(산저마을 성주골 고인돌)의 세계문화유산 등록, 천관산 장천동의 만남의 광장 조성 운동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장흥문화원 활동, 향토사 발굴 적극 참여=선생은 지난 1986년부터 장흥문화원 이사에 피선되어 9년 동안 정기간행물 《장흥문화》 편집에 적극 참여해 왔다. 그리고 향토문화보존위원회 부위원장, 《장흥군지》 편집위원 등을 역임하며 향토사 발굴·보존·복원의 실무를 담당하고, 장흥문화원 회원 확보에도 열성을 다하는 등 장흥문화원 활성화와 향토문화 발굴에 기여해 왔다.

선생은 또 서예가로, 국제예술서화대전 금상(87), 대한민국예술대전 금상(91) 등 29회 입상 성과 등 각종 서예대전에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국제교류 서예전에 13회 참여했으며, 특히 2003년부터 3년 동안 전남도내 각 시군 경로당에 가훈 및 휘호 400여 장을 기증하는 등 서예인으로서 지역의 서예문화 활성화에 기여하였다.

60여년 봉사적 약업 경영, 지역민 보건에 기여=선생은 또 의료혜택의 사각지대인 지역에서 60년 동안 약방을 경영하며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중무휴로 새벽 6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약방문을 열어 지역민의 불편을 해소하는 등 고 지역민 보건에 기여해 왔다.

-장흥신문/2007/11.08.

문화훈장을 수여한(2007년) 이후에도 덕운 선생의 선덕(善德)의 여정은 계속된다.

▶2008년(82세) 장원봉 유래비 건립 주간 ▶2015년(89세), 국제로타리클럽 관명장학회 총 3천만원 헌성(대학생들에게 1년 2백만 원 씩 지원) ▶대종 회관 구입 시 3백만원 헌성 ▶충렬공 신도비 조성에 3천8백만 원 헌성 등이 그것들이다.

또 서예가인 덕운은 그동안 1987년 5월부터 2019년 5월까지 필치의 휘호를 써 수많은 사람과 단체 등에 증여했다. 특히 덕운 옹의 ‘휘호일기’에는 그동안 휘호를 써준 단체와 개인의 성명과 당시 직위를 기록해왔는데 그 휘호일기 건수 즉 휘호 봉사회 수가 무려 4,000여 건이나 되어, 공의 나눔과 베품은 서예활동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덕운 여광》)

이처럼 덕운 옹의 서예 활동 즉 휘호를 통한 봉사 역시 놀랍지 않을 수가 없다.

존재 기념사업회…《덕운 여광》 출간

지난 2019년 7월 존재기념사업회(회장 윤수옥)는 존재 선생의 현창에 크게 기여하고 평생을 나눔과 베품으로 일관되게 살아 온 선생의 생애 공적을 기리기 위해 《덕운여광(德雲餘光)》을 발간한다.

이 책의 발간사에서 윤수옥 회장은, 덕운 선생을 ‘배려와 베품의 한세상을 산 사람’이라 칭하고 “망백(望百)을 넘어 백세를 향한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곧은 자세와 올바른 몸가짐으로 강건하게 사시는 덕운 선생은 당신의 아호처럼 천관산 영봉에 피어오른 자운과 같이 저리도 찬란한 인생을 엮어 오신 삶을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존재기념사업회는 평생을 헌성과 헌납 그리고 관용과 배려, 봉사정신으로 살아온 덕운 선생의 90여년 생을 되돌아보는 뜻에서 살아오신 빛나는 선덕의 여정 발자취를 다듬어 한 권으로 책으로 엮어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전범이 되어 선덕을 베푸는 풍토가 이어지길 소망한다”고 썼다.

한 마디로 ‘덕운 선생의 90년 삶은 나눔과 베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덕운 선생은 가히 지역에서 나눔과 베품의 삶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평생을 봉사…“시골 약국점포가 전부”

그래도 누구와 비견할 수 없는 복인(福人)

덕운 옹은 올해로 93세. 백수를 바라보는 연세이다. 그럼에도 건강한 편이고 여전히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에 대한 배려와 나눔의 정신은 멈추지 않고 있다. 혹자는 “덕운 선생의생애가 그렇다 보니 동기 약업인들 중에는 대성하여 국내 국지의 제약회사와 학원을 경영하고 있기도 한데, 현재 덕운 공이 쥔 것은 큰아이가 경영하고 있는 시골의 약국 점포 하나가 전부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백수 바라보는 나이까지 건강하고, 선행‧선덕을 베풀고 참으로 아름다운 ‘나눔의 정신, 공유의 정신’까지 실해해 오고 있으니, 그 누구와 비견할 수 없는 복인(福人)임에는 분명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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