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수상 - 적념에 든 겨울 숲
장흥 수상 - 적념에 든 겨울 숲
  • 장흥투데이
  • 승인 2022.01.2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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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수/시인, 수필가
유용수/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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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뭇가지가 바람길로 몸을 내밀고 겨울바람을 견디고 있습니다. 아마도 올겨울 혹한을 이겨 내기 위해서는 더더욱 단단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비슷한 또 다른 나뭇가지는 아직 나뭇잎 하나를 붙들고 있습니다. 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뭇잎을 바라봅니다.

올겨울을 이겨 낼 수 있을까. 한껏 붉어진 나뭇잎이 왠지 애처롭습니다. 나무는 내려놓을 때가 되면 가장 아름답습니다. 무엇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바라지도 않습니다. 내려놓아야 살 수 있다는 방하착의 삶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메인 아세라파는 〈정원 명상〉이라는 시에서 ‘나뭇잎이 되라./ 놓을 때가 되면 우아하게 떨어지는./ 원의 순환을 신뢰하라./ 끝나는 것이 곧 다시 시작하는 것이므로. 라고 노래합니다.’

새들도 숲을 떠났습니다. 새들이 떠난 숲에는 침묵만이 짓누르고 있습니다. 지금 짓누르고 있는 침묵은 소리를 차단한 침묵이 아닙니다. 침묵을 소리로부터 차단이 아니라 보는 것으로부터 차단, 말하는 것으로부터 차단, 행동하는 것으로부터 차단이라고 합니다. 침묵이 중요한 이유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겨울 숲에 파묻힙니다. 세상과 잠시나마 차단할 수 있는 곳, 숲으로 몸을 숨깁니다.

숲은 스스로 묶이지 않고, 채우고 비우기를 반복합니다. 휑하니 뚫린 길에도 적당히 채우고 또 비웠습니다. 바위 틈새에 오래된 난초가 햇살에 몸을 말리고 있습니다. 덕지덕지 달라붙은 이끼와 푸른 난초가 원시 숲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바스락거리는 이 헐벗은 숲을 떠나지 않고 둥지를 틀고 겨울나기를 시작하는 생명이 꿈틀거립니다. 그들의 터전은 피폐해진 겨울 산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들의 삶을 방해 하거나 생명을 위협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터전을 훼손할 권리 또한 우리에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숲을 가꾸고 보전해야 할 의무만 우리에게 주어져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연은 자원이 아닙니다. 자연은 생명입니다. 자연은 힐링처(Healing)이고 휘게(Hygge)입니다. 그래서 산에 사는 생명이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도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숲에서는 보고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의 울음소리와 삶의 소리를 보아야 합니다.

어린 계수나무 가지가 파르르 떠는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앙상한 줄기에 붉게 익은 열매를 붙들고 눈이 오기를 기다리는 청미래덩굴을 보아야 합니다. 흘깃 엿보듯 지나가는 것보다는 하찮은 잡풀과도 눈 맞춤하고 걷는 산길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연이 토닥이며 ‘잘 될 거라고,’안부를 묻습니다. 겨울바람이 부딪칩니다. 응달진 언덕배기에는 새벽녘에 내린 눈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몸으로 겨울을 느끼며 생각을 비워냅니다. 나 스스로 만들어 놓은 집착의 족쇄를 기억하지 못하고, 가슴을 조여 오는 욕망을 붙들고 있습니다.

겨울 숲은 내면의 시끄러움을 털어내는 곳입니다. 내 안에 들어 있는 혐오적인 것들과 집착을 비우는 곳입니다. 마음을 곧게 세우고 걷습니다. 깊숙이 숨어있는 채우지 못한 것들에 대한 집착과 더러움과 수다를 끄집어내 놓습니다. 그럴 때마다 심장은 소용돌이치며 붙들고자 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합니다. 붙들고 있는 것을 버리면 무너질 것 같은 소란스러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버리고 비울수록 남는 것들은 더욱 소중해 집니다.

오늘 같은 날은 단순해지고 싶습니다. 그래야 그 가치는 더욱 빛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안을 더듬어 보고 싶습니다.

 

2

누군가 뜨거운 한숨을 쏟아놓았을 자리에 나는 거친 숨을 쏟아 놓고 앉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바라보는 숲의 독립된 개체가 서로 의존하여 비로소 자연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숲을 재우기 위해 장엄한 석양이 서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숲들도 누어야 합니다. 다 내려놓은 참나무도, 등 굽은 소나무도, 시퍼렇게 날을 세운 동백도 산을 기대고 누어야 합니다. 그래야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웁니다. 동백나무 아래 참나무 잎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은 참나무 잎이니 참나무 아래에 있어야 한다고 다투지 않습니다. 동백 아래에서 곱게 썩어 동백의 거름이 됩니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입니다. 인간만 자리를 다투고 있습니다.

인디언의 삶은 자연과 함께합니다. 그들은 풀 한 포기, 물 한 방울, 흙 한줌, 그리고 공기까지 대지의 어머니에게 빌려 쓴다고 했습니다. 나무를 자를 때는 왜 잘라야 하는가를 나무에 말하고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필요한 것은 자연에서 구했으며 절대로 헛되이 쓰지 않았으며 필요하지 않은 것은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중에서 캐나다 알공킨 인디언인 크리족의 예언문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비장한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나무가 잘려진 뒤에야, 마지막 강이 더렵혀진 뒤에야, 마지막 물고기가 집힌 뒤에야, 비로소 당신들은 깨닫게 되리라, 사람은 돈을 먹고살 수 없다는 것을.”이라며 경고하고 있습니다. 인디언들은 누구도 대지의 소유자가 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영혼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어른이 되기 전에 광야에 나가 대지의 소리를 듣는다고 합니다. 자연이 그들에게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을 성장시킵니다.

겨울 숲이 적념寂念에 들었습니다. 숲에서 눈을 감으면 귀가 열립니다. 나무의 숨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이 오는 소리를 듣고,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새들의 소리도 엿듣습니다. 오늘은 별것도 아닌 것 하나를 덜어냈을 뿐인데 마음에는 여백이 생기고 생각은 낮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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