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고문학-산문 :정명국사 천인의 ‘천관산기(天冠山記)’-(5)-천관산 탑산사는 한국 불교 최초 도래지다
장흥고문학-산문 :정명국사 천인의 ‘천관산기(天冠山記)’-(5)-천관산 탑산사는 한국 불교 최초 도래지다
  • 장흥투데이
  • 승인 2022.02.1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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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록원, “탑산사-최초로 부처님 사리가 들어온 곳” 인증
“아육왕이 BC 833년,약 2100년 전에 아육왕 탑 세웠다”
시인. 본지 편집인
탑산사 아육왕 기록-‘석보상절’
탐산사 아육왕탑 기록한 ‘월인석보’

 

 

 

 

 

 

 

 

 

 

천관산 탑산사
천관산의 아육왕탑

<지난호에 이어>

* …산 남쪽 언덕에 우뚝 서서 두어 길이나 되는 포개진 돌이 있으니, 이것은 서축(西竺)의 아육왕(阿育王)이 성사(聖師)의 신통력을 빌려서 8만 4천 개의 탑(塔)을 세웠는데, 이것이 그 중의 하나이다. 탑 앞의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 위에 한 길 남짓하게 우뚝 솟아 있는 층대(層臺)가 있으니, 이것은 우리 부처님과 가섭(迦葉)이 편안히 앉았던 곳이다. 상고하건대, 〈불원기(佛願記)〉에 이르기를, “내가 가섭과 편안히 앉았던 곳에 아육왕이 내가 입적(入寂)한 뒤에 탑을 세워서 공양(供養)하겠다.” 하였는데, …

-《동문선》‘천관산기’ 上

* …불설(佛說)에, 석가모니가 말하길, 내가 죽은 후에 염부제(閻浮提)의 여러 명산이 삼겁(三劫 : 영원)토록 훼손되지 않는 땅에서 가섭(迦葉 : 과거 칠불七佛 중 여섯 번 째 부처)이 앉았던 곳을 찾아 탑을 세우고 공양하라 하니, 아육왕이 드디어 신병(神兵)써서 두루 보탑(寶塔)을 세우고 부처님 사리를 보장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이다. 탑 아래쪽의 조그마한 석대(石臺)믐 가섭이 쉬던 곳이요 …

-《支堤誌》 (1992, ‘아육왕탑’ 《支堤誌》, 장흥문화원, p70)

① … 아육왕은 사리탑(舍利塔)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사병(舍兵)을 거느리고 왕사성(王舍城)에 들어가 아사세왕((阿舍世王)이 세워 놓은 탑에 있는 사리를 모두 다 꺼내고 또 다른 일곱 탑에 있는 사리도 모두 다 내어 금은(金銀), 유리(琉璃), 파려(波瓈)로 8만 4천 통을 만들어 사리를 나누어 담고 또 금은 유리 파려로 8만 4천 개의 병(甁)을 만들어 그 사리를 통에 담고 또 무량한 백 천 개의 번당(幡幢)과 덮개를 만들었다 … 왕(아육왕)은 밤에 귀신들을 시켜서 칠보를 가루로 8만 4천 개의 보탑(寶塔)을 만들고 야사존자(耶舍尊者)에게 명하여 손가락을 펼쳐 8만 4천 개의 줄기에 광명의 빛을 발광케 하고 날랜 귀신을 시켜 한 광명의 빛줄기를 쫓아가서 그 빛이 다다르는 땅에 한날한시에 탑을 세우게 하니 … 너희들은 가서 준비만 옳게 하고 있으면 내가 아수라(阿修羅)를 시켜 월식(月食)을 일으키고 사천하(四天下)가 다 함께 북을 칠 것이니 그때 맞추어 세우도록 하여라 하시여 그 귀신들이 월식을 할 때 8만 4천 개의 탑을 모두 다 함께 세웠던 것이다 ….

그 탑이 진단국(震旦國(발해, 삼국)에 아직도 남아 있으며 우리나라 전라도의 천관산(天冠山)과 강원도의 금강산(金剛山)에 이 탑이 있으며 신령하여 영험(靈驗)한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아육왕이 이탑을 세운 해는 려王(려왕) 46년 무진(무辰年)으로서 기원전 833년이었다.

-《석보상절》권 24 中

② …그때 파련불읍에 상좌가 있었는데, 이름이 야사였다. 왕이 거기에 가 상좌께 사뢰기를, “내가 하루 안에 8만 4천의 탑을 세워 염부제에 가득하게 하고자 합니다.” 상좌가 이르기를, “좋습니다. 탑을 세우고자 하신다면, 탑 세우실 때에 내 손으로 해를 가릴 것이니, 두루 명하시어 ‘해를 가릴 때 다 우러러 탑을 세우라’ 하십시오.” 그 후에 손으로 해를 가리니, 염부제 안에 일시에 8만 4천 탑을 세우니 【이 진단국에 있는 것이 열아홉 곳이다. 이제(지금의) 낙양, 팽성, 부풍, 촉군, 임치〈와〉 고려 땅 정안(장흥), 금강산에 이르기까지 다 탑이 있어서, 다 기이한 일이 있다.】 세상 사람이 못내 경하하여 호를 ‘법아육왕法阿育王’이라 하였다. 【탑 세움이(탑을 세운 것이) 여왕 마흔여섯째 해 무진년(B.C.833)이다.】

-《월인석보》 ‘제25(하)’ 8만4천사리탑조성2

③ … 불설(佛說)에, 석가모니가 말하길, 내가 죽은 후에 염부제(閻浮提 -수미산을 중심으로 인간 세계를 동서남북 4주로 나눈 가운데 남쪽에 있는 남주. 인간이 사는 지구를 의미)의 여러 명산이 삼겁(三劫 : 영원)토록 훼손되지 않는 땅에서 가섭(迦葉 : 과거 칠불七佛 중 여섯 번 째 부처)이 앉았던 곳을 찾아 탑을 세우고 공양하라 하니, 아육왕이 드디어 신병(神兵)써서 두루 보탑(寶塔)을 세우고 부처님 사리를 보장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이다. 탑 아래쪽의 조그마한 석대(石臺)는 가섭이 쉬던 곳이요 …

-《支堤誌》,(1992, ‘아육왕탑’ 《支堤誌》, 장흥문화원, p70)

‘천관산기’ 서두 부문에 나오는 탑산사와 아육왕탑 관련 기사는 이후 석보상절, 월인석보, 지제지 등에서 나온다.

①은 《석보상절》‘권 24’에. ②는 《월인석보》 ‘제25(하)’에 ③은 《지제지》에 나오는 기사이다.

아중 《석보상절》은 1447년(세종 29년)에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주요설법을 뽑아 한글로 편역한, 불교 서적 중 한글로 번역, 편찬된 최초의 책이다. 그리고 《월인석보》는 1459년(세조 5년)에 간행된, 석가모니 생애를 다룬 불경 언해서로,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과 세조의 《석보상절》을 증보한 책이다.

《삼국유사》와 ‘요동성 아육왕탑’

천관사 아육왕탑과는 관련은 없지만 아육왕탑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에서도 출전된다.

일연이 《삼국유사》에서 아육왕탑이 있었다는 요동성은 당대 고구려의 땅이었을 것으로 유추되지만, 대한반도는 아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고구려 성왕이 국경을 순행하던 중 요동성에 이르렀다. 왕은 오색구름이 땅을 덮는 것을 보고 그곳으로 향했다. 한 승려가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왕이 다가가자 승려는 없어졌다. 왕이 그곳을 벗어나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승려 옆에는 삼층탑이 있었다.
왕이 다시 승려 있는 곳에 가니 승려는 간 데 없고 풀만 무성하였다. 땅을 파보게 하였더니 한 길쯤 되는 곳에서 지팡이, 신이 나오고 더 파보니 범서(梵書)가 있었다.
신하가 글을 읽은 후 삼층탑은 불탑이라고 했다. 이 일로 성왕은 불교를 믿을 마음이 생겼고 그 자리에 7층 목탑을 세웠다. …”

일연은, 이어진 후기에서, “아육왕이 염부제주(閻浮提洲, 인도)를 통일하고 곳곳에 탑을 세웠으니 이상할 것이 없다 今更損髙, 夲塔朽壞. 育王所統一閻校浮提洲處處立塔, 不足可恠”고 하면서 “요동성은 압록강 밖에 있고 한(漢)의 유주(幽州-한나라 때 만들어진 13주 중 하나로 현재의 중국 요녕성 일부)에 속한다. 고려의 성왕은 어느 임금인지 알 수 없다. 혹은 동명성제(東明聖帝-동명왕 주몽)라고 하는데 아닌 듯하다.”고 덧붙였다.

일연 이어 아육왕탑에 대한 기록도 남긴다.

“≪고전(古傳)≫을 살펴보면 아육왕은 귀신의 무리에게 명하여 9억의 사람이 사는 땅마다 탑 하나를 세우게 하였으며, 이와 같이 하여 염부계 안에 8만 4천개를 세워 큰 돌 속에 숨겼다고 한다. 지금 곳곳에 상서로움이 나타나는 것이 하나가 아닌데 대개 진신 사리는 감응을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아육왕탑 관련 전거는 ‘천관산기’, 《삼국유사》, 《석보상절》, 《월인석보》, 《지제지》 등 5건이고, 이중 천관산과 아육왕탑 관련 건은 4건이 된다.

이 중에서 ‘천관산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으로, 《석보상절》은 불경 외의 사서(史書) 성격의 책자로는 최초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2007년에 한국기록원이 ‘천관산기’의 아육왕탑, 《석보상절》의 아육왕탑 관련 기록을 공식 기록으로 인정하고, 이 기록들을 근거로, 장흥 천관산 탑산사에 부처님 진신사리가 최초로 도입됐다는 사실을 공식으로 인증했다. 이 사실을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한국기록원, ‘천관산기’‧《석보상절》 기록…공식 기록 인증

지난 2007년 9월 3일, 한국기록원(KRI)은 ‘천관산기’‧ 《석보설절》의 아육왕탑 관련 기록을 근거로 ‘탑산사는 한국 최초 부처님 진신사리가 들어온 곳’으로 공식로 인증했다. 이에 대해 한국기록원은 한국기록원 홈페이지(korearecords.co.kr)의 ‘공식기록’난에 이 사실을 정식으로 등재했다. (‘KRI 공식기록난’)

한국기록원의 인증 내용

-‘최초 불교, 부처님 사리가 들어온 곳‘

▶제목 : 최초 불교, 부처님 사리가 들어온 곳

▶기록보유자 : 탑산사

▶인증일 : 2007-09-03

▶장소 : 전남 장흥군 탑산사

▶기록명 : 최초 한국 불교 도래지

▶인증 내력 : 전남 장흥군에 위치한 탑산사는 아래 문헌적 근거로 볼 때 우리나라 최초로 불교와 부처님 진신사리가 들어온 곳이다.
▶문헌적 근거 :

아육왕(阿育王)은 아도세왕(阿闍世王)이 세운 탑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다 내어 84,000개의 금은, 유리, 파려(波瓈)로 84,000개의 통과 병을 만들어 불탑을 세웠으니 중국에는 열아홉이고 우리나라에는 전라도 천관산과 강원도 금강산에 이 탑이 있어 영험한 일이 있었다. 아육왕이 탑을 세운 것이 려왕(厲王) 마흔 여섯 째 해인 무진년(BC833년/약2100년 전)이었다.

-《동선문》 ‘천관산기’, 대한민국 보물 제523호 《釋譜詳節》 二四권 요약 발췌

탑산사, 한반도 불교 최초 도래지인가?

호남의 5대 명산인 천관산 중턱 600m의 탑산사 터. 지금도 탑사사지에는 주춧돌이 괴여있고 주변에는 기와조각들도 널려 있다. 근처에는 인도 아육왕(阿育王)의 탑으로 알려진 아육왕탑과 의상대사 등 고승들이 수양한 선방 터와 석등이 남아있다.

탑산사는 장흥군 대덕읍 연지리 천관산에 있는 한국 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로, 그동안 서기 800년 통일신라 애장왕 때 창건됐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번 공식기록으로 인정받은 사실에 의하면, 사찰건립과 부처님 사리 전래 시기가 BC 883, 즉 2100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석가, BC 563~BC 483, 아육왕 재위 BC. 268~232).

BC 883년 인도 아육왕이 부처님의 사리로 8만 4천 탑을 세웠고, 이 가운데 중국에 19개, 우리나라에는 전라도 천관산과 금강산 두 곳에 세웠다는 《동문선》)‘천관산기’, 《석보상절》‘제23권‧제24권’) 등의 기록이 공식으로 인정돼 ‘탑산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처음 들어온 곳’이라는 내용이 공식으로 인증됐다.

이로써, 탑산사가 한반도 최초의 불교 태동지로 추정되기도 한다.

그동안 한국의 불교의 최초 도래설은, 고구려 372년 전진(前秦)의 승려 순도화상이 고구려 사신으로 입국하면서부터였다는 설이나, 가야국 김수로왕 7년(48년)에 인도 아유타국에서 건너온 김수로와의 왕비 허황후 등에 의해 불교가 처음으로 전해졌다는 이른바 남방불교 전래설 등이 무게를 가지고 제기돼 왔다.

그동안 인도의 아육왕이 천관산 탑산사에 보탑을 세워 부처의 사리를 봉안했다고 설화로만 전해졌지만, 구체적인 문헌 기록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따라서 ‘천관산기’, 《석보상절》 등의 기록을 근거로 한다면, 우리나라에 불교와 부처님사리의 전래시기도 BC 83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기록으로 보는 석가 진신사리 최초 도래기

삼국시대의 불교 도래기는 3,4세기 전후의 일이다.

고구려는 372년 전진(前秦)의 승려 순도화상이 고구려 사신으로 입국하면서부터다. 그러나 당시 위(魏) 사신 아굴마와 고구려 여인 고도령 사이에 태어나 5세 때 출가한 아도화상이 이미 불법을 유포하고 있었다고 한다.

신라는 417년(눌지왕),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신라에 와 처음으로 포교하며 신라 최초 사찰 도리사를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백제는 384년(침류왕 원년) 인도 마라난타 스님이 백제에 최초로 불교를 전하고 불갑사를 세우면서부터다.

이와 달리 가야국 김수로왕 7년(48년)에 인도 아유타국에서 건너온 김수로왕 왕비 허황후와 그녀의 오빠 장유화상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했다는 설, 남방불교 전래설과 그 흔적이 남아있는 명월사지 등이 있기도 하다.

또 부처님 진신사리 도래설 중 최초는 신라 549년(진흥왕 10년)이었다.

“양나라에서 사신과 입학승(入學僧) 각덕(覺德)을 파견하여 부처의 사리(舍利)를 보내왔다.”-《삼국사기》

이 밖에도, ▶643년(선덕여왕 12년))에 자장법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사리 1백립(粒)을 사리 100톨을 삼분해서 3분의 1을 황룡사구층탑 기둥 속에 넣었다. (《삼국유사》 ▶636년(선덕여왕 5년) 왕명으로 제자 승실 등 10여명과 함께 중국 당나라의 오대산에 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가사와 사리를 받고, 불도를 닦았다. (《삼국유사》 등의 기록도 있다.

또, 1976년 구미 도리사에서는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하려 올 때 모셔온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세존사리탑 보수공사 중 금동육각사리함(金銅六角舍利函)에 봉안되어 있는 발견했다. 이 진신사리가 아도화상이 가져온 것이라면, 그 시기는 417년으로 삼국유사 기록(549년, 양나라에서 사신 등에 의해) 130여 년을 앞서게 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실 기록을 인정한다고 해도, 아육왕 때, 즉 기원전 3세기 때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한반도에 건너온 것은 장흥 천관산 탑사사가 유일한 것이다.

이는 곧 그때 불교가 탑산사에 전래된 것이므로, 이 사실(史實)은 김수로왕의 허황후의 남방불교 전래(48년) 3백여 년, 고구려 불교 전래(372년)보다 무려 640여 년이나 앞서게 된다.

옛날 탑산사는 어떤 사찰인가

현존하는 아육왕탑은 자연의 힘으로 만들어졌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기이하면서도 영락없는 탑의 형상이다. 본래는 5층이었는데 그때 한층이 무너져 내려 지금은 4층만 남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탑은 인공적 탑이 아니라 자연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마 옛날의 탑산사의 아육왕탑이 무너져 버려 이 아육왕탑 형상의 자연석에 설화를 입힌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육왕탑 관련 문건이 공식기록으로 인증된 만큼, 아육왕탑 관련 기사 자체만으로(아육왕 사상이 불국토와 관련이 깊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는, 아육왕탑 관련 기사는 불국토였던 천관산의 위상과 불교세의 현황을 증거해 주는 기사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천관산기’, 《석보상절》의 탑산사 아육왕탑의 기록이 ‘한국기록원’에 의해 인증이 되었다 하더라도, 지표 학술조사 등에 의해 아육왕탑 실제 근거가 나오지 않는 한, 전설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산 중허리 부위의 아육왕탑이 아육왕탑을 상징한다고 해도 그 탑의 형상은 자연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탑산사의 사리 봉안의 아육왕탑 관련 기사는 전설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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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미산을 중심으로 인간 세계를 동서남북 4주로 나눈 가운데 남쪽에 있는 남주. 인간이 사는 지구를 의미.

2) 그제 巴連弗邑上座 이쇼일후미 耶舍러니 이 그上座   八萬四千 塔셰여 閻浮提게 코져 上座 닐오실쎠 ㄴ셰오져 거시든 저긔 내 소 료리니 두루 出令  저긔 다 울워러 셰라 쇼셔 그 에 소 려늘 閻浮提 內一時八萬四千 塔셰니 震旦國 019) 에 잇니 열아홉 고디라 이제 이제 洛陽) 彭城 扶風 蜀郡 臨淄 高麗 定安 金剛山애 니르리 다 이 이셔 다 神異이리 잇니라世間ㅅ 사미 몯내 慶賀法阿育王이라 더라셰요미 厲王 여슷찻 戊辰이라)

3) 삼국유사권 제4 탑상(塔像), 요동성아육왕탑, 고구려 성왕이 탑을 세우다

4) 按古傳, 育王命鬼徒每於九億人居地立一塔, 如是起八萬四千於閻浮界内, 藏於巨石中. 今處處有現瑞非一, 蓋真身舎利感應難思矣.

5) ‘KRI 공식기록난’ : , http://www.korearecords.co.kr/cms/dk_record/kri_view.php?ht_id=kri_01&no=240

6) 삼국사기권제4 신라본기4 진흥왕본기

7) 삼국유사3 탑상4 皇龍寺九層塔

8) 《삼국유사3 탑상4 皇龍寺九層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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