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역사 재조명(1)/회령진성 최후의 만호 엄흥묵
■장흥역사 재조명(1)/회령진성 최후의 만호 엄흥묵
  • 전남진 장흥
  • 승인 2018.09.2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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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비 복원, 사당 조성, 엄흥묵 만호 제례도 봉행돼야’
‘고려조 원감국사 진형(眞形)’-장흥지역 나말 불교전성시대 증언
회령진성 복원-역사성 확충 위해 최후 만호도 재조명돼야

회령포문화축제가 9월 21일~23일까지 3일간 회진면 회령진성과 회진항에서 열리게 된다.

본래 회령진성은 조선조 1490년(성종 21) 4월 축조된 만호진성(萬戶鎭城)으로, 왜구를 소탕하기 위해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 회진리에 설치한 진성으로 1987년 1월 15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44호로 지정된 바 있다.

현재의 위치는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 회진리 1755 번지다.
회령포진성의 최초 설치 시기는 정확한 사실(史實)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조선조 초기에 이미 설치되어 있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회령포와 회령진성은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 교지를 받고 장흥으로 내려와 회령포 결의를 다졌으며 명량해전 승리의 기틀이 된 배 12척을 수리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회령진성 최후의 만호-엄흥묵

회령진성의 마지막 만호는 엄흥묵(嚴興默,1836~1910)이었다. 이같은 사실은 <승정원일기><전라좌수영계록>등에 의하면, 고종의 관직 제수, 이른바 인사 단행에서 ‘엄흥묵을 회령포 만호’로 관직을 제수했다는 데서도 확인된다.(승정원일기 3002책, 탈초본 137책, 고종 27년 10월 29일 을축 53-62 기사 1890년 / 전라좌수영계록(全羅左水營啓錄), 고종高宗, 고종高宗 28년 1891).

1890년 이후 회령포 만호 관직 제수 현황이 다시 보이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전라좌수영 회령포 엄흥묵 만호는 회령진이 폐영되던 1895년까지 재임한 것으로 보인다.

또 이러한 사실은 엄흥묵이 오남 김한섭((吾南 金漢燮,]1838~1894)의 문집 간행에 도움을 주었다는 기록에서도 확인된다.(1901.11월. <경회집> 238(100·434)쪽/1900년 12월. <경회집> 239,101쪽.

이 기록은 경회 김영근(景晦 金永根, 1865~1934)이 엄흥묵에게 보낸 편지에 있는 내용이다. 김영근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때 강진에서 활동한 도학자 겸 시인으로 조선 후기 오남 김한섭, 중암 김평묵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위정척사 정신을 체득해 학문과 詩作 활동, 북간도 망명 등으로 외세에 저항했던 인물로 강진에서는 유명한 역사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유고집으로 2천여 수의 산문, 시문을 모은 경회집景晦集이 있다. 강진의 옛 이름인 금릉金陵을 따 빼어난 경치 8곳을 노래한 시 '금릉팔경金陵八景'이 잘 알려져 있다.

김영근은 김한섭의 제자인데 스승의 문집 간행에 도움을 주었던 엄흥묵에게 편지를 보내 사례의 말을 전하고 있다.
또 오남 김한섭과 엄흥묵은 젊은 시절부터 형제 같은 정리가 있었다고 하였다. 동향, 동연배의 김한섭과 엄흥묵은 친밀한 교류를 했고, 김한섭이 동학란 때 순절한 뒤에 제자 김영근이 문집을 간행한다고 하여 힘을 보태주었던 것이다.

김영근은 편지에서 (엄흥묵공이) “근면하고 근신하며 사물을 정하게 살피고 인륜(人倫)을 사랑했으며…현인을 높이고 좋아했으며 덕을 숭상한 의리가 있었다”면서 자신도 그러한 엄흥묵공을 “늘 흠앙하고 사모하여 배우고 싶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김영근이 엄흥묵에게 보낸 편지는 2통으로 <경회집景晦集>에 실려 있다. 1900년과 1901년 사이다. 김영근은 강진 출신으로 김한섭의 제자이며 1900년 10월에 장흥 사자산 밑으로 옮겨 살기도 한다.
또 엄흥묵의 초상화 기록에 따르면, 동지중추부사 오위장(同知中樞府事 五衛將) 직에 올랐음을 알 수 있다.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는 조선조에 중추부(中樞府)의 종2품 벼슬이다. 김영근의 편지에서도 엄흥묵을 영감으로 표기하고 있다.

영감은 조선시대에 정3품과 종2품의 당상관을 높여 부르던 말이다. 김영근의 첫 부인이 영월 엄씨(寧越 嚴氏) 흥현(興鉉)의 딸인데 이 집안과 엄흥묵이 관련 있어 보인다. 김영근의 편지를 통해서 엄흥묵의 손자가 김영근에게 배웠음을 알 수 있다.
1909년 3월 엄흥묵은 장흥군 군내면 남문외(현 장흥읍 남외리)에 살고 있었는데 장흥군 남상면(南上面) 유동(柳洞, 柳川里)에 머물 때 의병 19명이 집에 들어 와 물품(모포, 금전)을 갖고 갔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한국독립운동사 자료 13권 의병편Ⅵ > 七. 隆熙三年 (一九○九·明治 四二) > (三) 三月, 全羅道 > 暴徒에 關한 報告.

김영근의 편지에서도 사자산에서 밑 마을에서 강진을 가면서 석대부근을 지나면서도 안부 인사를 못 드렸다는 내용이 있다. 이로 보아 엄흥묵은 장흥읍 남외리 석대 부근에서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
엄흥묵은 1836년 9월 4일 장흥군 회진면 회진리 산 88번지에 출생하였으며, 1910년 20월 28일 75세 일기로 별세하였다.

엄흥묵 공은 호적명은 석렬(錫烈), 초명은 흥묵(興黙), 자(字)는 자렬(子熱), 호는 남곽(南郭) 이었으며, 벼슬은 가선대부오위장(嘉善大夫五衛將)에 올랐다.

후손가에 초상화가 전해지고 있다. 관복과 관모를 갖추고 앉아 있는 전신좌상이다. 이 초상화에는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겸오위장 엄공흥묵지영(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嚴公興黙之影)’라 표기돼 있다(사진).
엄흥묵은 독자로 형영(衡永, 1856-1891)을 두었다. 형영은 독자로 종순(鍾(純, 1894-1963)을, 종순은 을준(乙準, 1915-1983)을, 을준은 영학(榮學, 1937-), 영언(榮彦,1943-), 영훈(榮薰, 1951-), 영봉(榮鳳, 1954-) 등 4남을 두면서 엄흥묵 후대는 5대째 이어오고 있다.

1913년에 회령진성 부근에 엄흥묵 공적비를 세웠다.
그러나 이 묘비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 때 화령진성 정비사업을 할 때 회령진성 남문자리에 있던 큰 돌들이며 물레방앗간 터 자리를 메우면서 엄흥묵 만호의 묘비도 땅속에 묻어버렸다고 한다. -회진면 회진리 이선홍 씨(67세) 증언.

■회령진성 복원- 엄흥묵만호도 조명돼야

회령진성이 1895년 폐영된 지 123년 만에 회령진성 복원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회령진성 복원사업은 이순신 장군이 배 12척을 인계받아, 회령포 결의를 통해 조선수군을 재건했던 격정적인 장흥역사의 현장이었던 회령진성을 역사적 관광의 명소로 개발하기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그런데 이 사업에서 장흥 출신으로 마지막 만호였던 엄흥묵에 대한 조명사업은 없다. 그러나 엄흥묵 공에 대한 마지막 만호로서 화령포만호 재임 사실이 확인된 만큼, 회령진성의 역사적 사실 뿐만 아니라, 화령진성 역사성의 확충을 위해서도 엄흥묵 공적비를 찾아 복원하고, 사당이라도 조성하여 후손들이 엄흥묵 만호에 대한 제례를 화령진성에서 봉행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주장은 엄흥묵 후손 측에서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엄흥묵의 4대 손인 엄영훈 씨는 “지금 회령진성 복원사업을 추진 중인데, 기왕에 추진되는 복원사업에서 ▲장흥읍 연산2구 뒷산 영월엄 씨 선산에 있는 고조부(엄흥묵)의 묘를 회령진성 부근으로 이장하고 ▲회령진성 부군에 세워졌다 마을 담장 밑에 파묻었다는 고조부 공적비를 찾아 이장묘지 앞에 복원해 주고 ▲고조부 묘지 옆에 사당을 지어 후손들이 그곳에 제례를 치룰 수 있게 해주고 ▲낡고 훼철 위기에 있는 고조부 초상화도 복원하여 사당 안에 걸릴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김선욱 기자(*엄흥묵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은 김희태 전남도문화재전문위원의 도움을 받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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