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1절 계기 장흥군 출신 항일독립운동가 5명 독립유공자 포상 받아
2022년 3.1절 계기 장흥군 출신 항일독립운동가 5명 독립유공자 포상 받아
  • 김용란
  • 승인 2022.02.2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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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수(劉學守, 1910년 당시 49세, 출생지-장흥군 장서면 청룡, 주소-장흥군 장서면 대평, 건국훈장 애국장)
문경호(文京浩, 1944년 당시 60세, 장흥군 부산면 부춘리 182, 건국훈장 애족장)
이유섭(李有燮, 1904-1968, 장흥군 용산면 어산리 719, 대통령표창)
문수옥(文壽玉, 1934년 당시 24세, 장흥군 용산면 어산리 385, 대통령표창)
문우열(文宇烈, 1934년 당시 30세, 장흥군 유치면 덕산리 571, 대통령표창)

 

 

 

 

 

 

 

 

 

 

장흥의 묻힌 독립운동가를 발굴, 기록하고 있는 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과 장흥문화공작소(이사장 이웅기)는 제103주년 3.1절을 맞아 장흥군 출신 독립운동가 5명이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고 알렸다. 이로써 장흥 출신 독립유공자는 60명으로 늘었다.

유학수 선생은 1909년 당시 농민의병으로 심남일 의진에서 활동하다 일경에 피체되었다. 판결문이 남아있지 않아 자세한 활동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광주지방재판소에서 ‘폭동暴動 모살謀殺’이란 죄명으로 징역 7년을 언도 받은 재판기록을 보면 총기를 휴대하고 일제에 대항하여 무장투쟁을 벌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장평면지에는 유학수 선생이 동학농민혁명에 참전하여 일본군과 싸웠다는 마을구전이 기록되어 있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던 1910년 49세이니,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는 33세로 참전한 것이다. 이렇듯 동학농민군에서 의병으로, 항일무장투쟁의 역사는 면면이 이어졌다.

문경호 선생은 일제강점기 말 소작인으로 살면서 생활이 점점 빈궁해지고, 일제가 전쟁을 일으켜 모든 물자를 강제 공출하고 조선인들을 징용으로 끌고 가자 독립을 꿈꾸었다. 선생은 1944년 7월 중순경 장흥군 부산면 부춘리 자택에서 마을사람들과 이야기 하던 중 “소화(일본 히로히토 천황 시기 연호)의 딸은 조선을 독립하게 하고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그만두어 평화가 오지 않으면 우리 민족은 한 사람도 남지 않을 것이니 평화가 오게 해 달라고 말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살로서 끝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에 일본경찰은 천황에 대하여 불경한 행위를 하고 불온한 말을 했다고 선생을 피체한다. 이 사건으로 선생은 1944년 12월 29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불경, 안녕질서위반이란 죄목으로 징역 1년을 언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문우열, 이유섭, 문수옥 선생은 똑같이 1934년 사회주의 독립운동 비밀결사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으로 일경에 피체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옥고를 치렀다. 이들은 소작료(小作料)의 감하(減下) 또는 전면(全免), 영농회사(營農會社)의 토지겸병반대(土地兼倂反對), 목화(棉花)와 해태(海苔) 등의 가격인상, 호세(戶稅) 및 기타 공과세(公課稅)의 인하(引下) 등 농민의 요구를 주장했다.

특히 문우열 선생은 지주로서 1933년 소작료를 자진해서 4할을 감면해 주거나 더 어려운 소작인은 면제해 주었다, 는 기사가 한 신문에 미담으로 쓰여 있다.(조선중앙일보, 1933. 12. 26.) 선생은 대학교수이자 시인으로 활동하다 최근 작고한 문재구 박사의 부친으로 알려졌다.

이유섭 선생은 장흥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영권 회장(전 국회의원)의 부친으로 우여곡절 끝에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 호적 상 생년이 1904년으로 1934년에 31세인데 재판기록에는 22세로 기재되어 있어 ‘동일인 여부 불분명’으로 세 차례나 포상을 거부당했다. 일제강점기 조사과정에서 오기한 것이다. 2021년 국가보훈처 공훈발굴과에서 현장조사를 나와 동일인 여부가 확인된 후 재심을 통해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게 되었다.

이로써 이번 3.1절에 포상을 받은 문수옥, 이유섭 선생을 포함하여 지난 3년 간 용산면 어산리에서만 이순주, 이길원, 이길종, 이천흠, 이덕흠 선생 등 7명이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아 독립운동마을로 우뚝 서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과 함께 앞장서서 독립운동을 했던 문병곤 선생이 ‘해방 후 행적 불분명’이란 사유로 아직까지 포상을 받지 못해 지역사회에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한편 현장에서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기록하여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는 장흥문화공작소 서선미 역사문화기록팀장과 장흥문화원 문충선 이사는 활동 시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문경호, 문수옥, 문우열 선생은 후손을 만나지 못해 장흥문화원과 장흥문화공작소 명의로 포상신청을 했습니다. 공적인 일이니 이제라도 장흥군이 협조하여 선생들의 제적과 후손들의 거주지를 열람할 수 있다면 의향장흥의 역사를 기록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고 말했다. 최근 장흥문화원에서 펴낸 『장흥독립운동가 인명록 1900-1945』를 널리 배포하여 아직도 발굴하지 못한 100여명의 독립운동가들을 기록하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장흥문화원 관계자는 유치면 운월리 출신으로 경술년(1910년) 경술국치때 순절한 애국지사 정두흠(鄭斗欽:1832~1910)선생은 8.15 광복절에 추서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전하며, 국내유일 안중근의사 사당이 있는 의향 장흥의 위상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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