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태의 장흥읽기(4) 장흥 월송리 백자 요장(窯場)의 역사적 배경
김희태의 장흥읽기(4) 장흥 월송리 백자 요장(窯場)의 역사적 배경
  • 장흥투데이
  • 승인 2022.03.30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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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태/전 전라남도문화재전문위원
1918년 지형도의 사점 - 백자 요장
장흥읍지 경술지(1910년) 남상면 여리성씨 신지조 - 왼쪽에서부터 7행 가운데 "사점"이 보인다.

 

 

 

 

 

 

 

 

 

 

 

 

 

 

 

장흥 월송리 백자 요장의 역사적 배경을 살피고자 하여 장흥의 도자관련 기록을 검토하고 “월송리 요장”과 사점의 마을사와 구성원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어 토지 소유자의 변화를 통하여 사점 요장 공간의 변화를 살펴보고 생산과 유통 보급을 장시와 토산물을 살피면서 유추해 보았다.

『세종실록지리지』(1454년) 장흥도호부조에 자기소 1개소와 도기소 1개소 기록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자기소 139개소, 도기소 185개소 합하여 324개소 기록이 있다.

전라도는 70개소이고 전남 지역에는 25개 군현에 자기소와 도기소 기록이 보이는데, 장흥도호부 계수관 예하의 13개 고을에는 22개소가 있다.

장흥 지역 도자요장은 49개소가 조사 되었다. 청자요장 3개소, 분청자요장 5개소, 백자요장 31개소, 옹기요장 9개소이다. 백자요장의 시기를 구분해 보면, 조선 중기 22개소, 조선후기 8개소, 근대 1개소이다. 백자 요장은 31개소이지만, 월송리 백자요장을 따로 살펴보려는 것은 시기적으로 근대기로서 다른 지역 백자요장과는 다르게 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월송리 요장”의 소재지는 전라남도 장흥군 용산면 월송리 126번지 일원이다.

전라남도는 1896년 8월 4일 23부제(나주부 등)가 13도제로 바뀌면서 그 이전 8도제하의 전라도가 남북으로 나뉘면서 생겨난 지명이다. 바로 전인 1895년 윤 5월 l일에는 장흥도호부는 장흥군이 된다. “월송리 요장”의 운영시기에 도단위 광역지자체는 전라도-나주부-전라남도, 군단위 기초지자체는 장흥도호부-장흥군, 면 단위는 장흥도호부 남면-장흥군 남면-장흥군 남상면-장흥군 용산면으로 바뀐다.

이처럼 “월송리 요장”이 속한 행정구역은 여러 차례 변화를 겪게 된다.

월송리 백자요장은 재송(재흥)마을에서 1키로미터 거리에 있다. 이 백자 요장 지역이 “사점(沙店)”으로 따로 표기된 것은 1910년에 편찬된 『장흥읍지』(경술지) 기록이다.

“沙店 朴·金”이라 하여 마을 지명과 성씨가 기록되고 있다.

월송리 백자요장 운영 시기가 “조선 말기 1880~1890년대 어느 한 시기”로 보고 있어 『장흥읍지』(경술지)에 기록은 의미가 있다.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사점”의 지명 연원이라 할 수 있는 사기 제작 장소로서의 “사점”과 바로 인연이 되는 성씨이고 집단으로 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사점”의 사기 제작 집단과는 관계없이 “사점”이라 부르던 곳에서 정착 생활하였던 성씨로 볼 수 있다. 가마의 상태로 보아 갑작스런 사건으로 옮겨 간 것으로 보이고 이는 조선말기 동학농민혁명기의 전쟁(1894~1895)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장흥 지역은 동학농민혁명 최후 최대 전적지로 알려진 곳이다. 이를 지휘한 동학대접주 이방언장군의 출생 활동지가 사점과 바로 이웃한 묵촌과 월림이란 점에서 석대들 전쟁 패전 뒤 일본군에 의한 동학농민군 살육과정에서 온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월송리 요장”의 인적구성은 기본적으로 한 요장이 성형대장(2인), 뒷일꾼(2인), 찬모, 판매, 가마주인 등 7명 내외로 보인다. 가마 2기는 개인 소유라기보다는 공동 운영하면서 그때그때 작업을 하였는데, 봄이나 겨울에는 가마 운영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1~6월과 9~10월에 주로 운영하였을 것 같다. 소성하는 것은 2~3일간임으로 여러 요장이 공동으로 사용했을 경우 1달에 많게는 4회에서 최소 1회는 소성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6칸의 번조실에 재임하는 그릇의 수는 가운데 칸 등 넓은 곳이 많이 재여지는데 넓은 칸의 경우 사발은 200~250개, 주병은 2~30개, 찬기류와 제기류 소수 정도는 함께 소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월송리 요장”의 토지는 1915년 토지대장에 등재되면서 문화재구역 16필지 가운데 8필지가 "박씨"로 확인되어 『장흥읍지』(경술지)의 "사점 박씨" 기록과 연결된다. 가마 2기의 소재 토지는 주소는 다르지만 "김씨"로 확인되는 것도 읍지기록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16필지 가운데 12필지가 전(田) 또는 답(畓)이라는 점은 요장의 공방 흔적들은 자취를 감추고 1915년에는 개간이 이루어져 경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15년 최초 토지소유자들의 주소는 5필지가 확인되는데 고읍면(관산면)이 4명이다. 두 번째 소유자로 10필지가 소유권이 바뀌는데 모두 고읍(관산)에 주소를 둔 사람들이다. 그만큼 가까운 거리로서 교류 유통이 이루어졌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월송리 백자요장 생산품들도 장흥읍장 보다는 죽천장(대내장)을 통하여 유통 보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19세기말 근대의 문화유산 현장이고 유적은 잘 남아 있는 편이지만, 관련된 사람들과 기록자료나 구전 등에 대해서 탐문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지역의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을 기존의 글쓰기방식과는 달리하여 정리해 보았다. 단편적인 자료를 대상으로 억측과 추정에 머무른 점이 없지 않지만 월송리 요장, 나아가 도자유산은 물론 문화유산 현장 이해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잘못 이해한 부분은 질정을 바라며 관심과 제보를 기대한다.

*국가 사적 지정을 위한 국제학술대회-장흥 월송리 백자 요장의 현황과 성격- 발표문(맺음말)

2019.06.28. 금. 10:00, 장흥청소년수련관/주최 장흥군, 주관 민족문화유산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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