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태의 장흥읽기(5) 선정비를 통해 읽어 보는 향촌사회사(상)
김희태의 장흥읽기(5) 선정비를 통해 읽어 보는 향촌사회사(상)
  • 장흥투데이
  • 승인 2022.04.06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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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예양리 석대 모탱이 암각 선정비(명)-
김희태/전 전라남도문화재전문위원
장흥 예양리 석대 모퉁이 암각 선정비 조사, 2007년(1985년 조사했던 곳을 2007년 다시 찾았다. 석대들 동학농민혁명유적 국가 사적 지정신청서 작성을 위한 조사차. 근대기 전적지는 건조물이나 성곽 등 유구가 거의 없기 때문에 지정의 가치를 잡아 내기가 어렵다. 석대들은 장흥부-벽사역-고읍-강진현-전라병영으로 이어지는 지리적 요충지임을 주목했고, 이는 석대 전적 현장의 역사적 중요성으로 자리매김되어 지정되기에 이른다. 그 길목 석대모퉁이에 1768년~1769년 사이의 전라도 관찰사 홍낙인, 장흥도호부사 이동태, 벽사역 찰방 김세위의 암각 선정비 3기가 새겨져 있다.

석대모퉁이 암각 선정비(명) 조사, 1985

“石臺 모퉁이의 碑石(岩刻)은 현재의 道路面에서 약 7m 程度 높이의 岩壁에 長方形으로 四周를 線刻하고 그 안에 碑文을 岩刻하였다. 그 중 府使 李東泰의 碑는 1768年(英祖 44) 에 세웠는데 李東泰는 長興 府使로 1768 年(英祖 44 ) 12 월에서 1769 年(英祖 45 ) 까지 在任하였다. 이곳은 汭陽江의 중류지점으로 현재의 路面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을 보면 이 周邊으로 汭陽江이 흘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곳에 沼가 있었다는 老人들의 傳言이 있었다.”

1986년 1월에 장흥문화원에서 펴낸 <장흥문화> 8호(79쪽)에 실린 ‘우리 고장의 문화재’ 글 가운데 일부이다. 그때는 한자를 많이 쓰던 시절이다. 예양리 석대 모퉁이 암벽에 음각으로 새겨진 선정비, 불망비 조사 내용을 소개 한 것. 1985년 국립문화재연구소와 목포대학교박물관에서 실시한 장흥군 학술지표조사에 참여하고 조사한 내용 가운데 3개소를 장흥문화 학술지에 소개했다. 원도리 석불입상, 평장리 오릿대와 선독(돌), 장흥읍 공적비군(향교앞, 교도소 앞, 석대모퉁이, 흥덕정 앞, 벽사역지 등). 당시는 사학도로 입문하여 공부하던 시절이다.

조사책임위원은 목포대 사학과 이해준교수님.

다시 2007년에 현장을 찾았다. 지금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이 된 석대들 동학농민혁명 유적지의 문화재 지정 신청 논의가 있어 지정의 가치를 탐색하고자 현지를 답사한 것이다. 그러던 중 석대 모퉁이의 암각 선정비군에 대한 생각이 미쳐 어렵사리 올라 판독을 다시 했다. 1985년 조사와 2007년 조사 때의 조사기록과 사진을 어딘가 있을 것이다. 기록은 그때 그때 하는 편이지만, 자료를 차분히 분류 정리하지 못하고 쌓아 놓기만 하다 보니 찾기는 쉽지가 않다. 2007년 조사 때의 사진이 한 장을 어렵사리 들쳐 낼수 있었다. 장흥군청 학예사가 찍어 보내준 걸로 기억이 난다.

그 뒤로 언젠가 현장을 지나다보니 암벽 앞에 철책과 철조망이 둘러져 버렸다. 처음 철책이 설치될 때만 해도 올라가서 볼 수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뒤로 철망이 설치되어 이제는 오르기가 어렵다. 2021년 다시 찾아가 보니 길에서 쳐다보고 선정비의 형태만 찍을 수 있을 뿐이었다. 장흥문화원에서 암각문 조사를 할 때라 1985년 조사과정과 <장흥문화> 8호의 글을 제보하면서이다. 현장은 철망에 가려 오르기 어려워 사진마저 찍을수 없었고 예전의 조사 자료마저 찾기가 어려웠다. 지표조사 전후의 사정을 밝히면서 다시 선정비의 주인공 세사람 관인의 행적을 찾아본다.

철책과 철망으로 둘러 쌓여 지금은 오르기도 읽기도 어렵게 되었다.
(2021.3.22.)

장흥 부사 이동태와 세선(稅船)의 파손

관찰사 홍락인 불망비, 찰방 김세위 선정비, 부사 이동태 선정비 3기. 전라도관찰사, 장흥도호부사, 벽사역찰방을 이른다.

장흥도호부사 이동태(李東泰), 1718~?)는 1768년(무자) 12월에 도임하여 1769년(기축) 5월까지 재임했다. 6개월 남짓이다. 자는 도중(道仲), 본관은 전주이다. 1755년(영조 31, 을해) 정시(庭試) 문과에 급제했다. 이동태의 장흥 부사 재임 중 관련된 기록은 많지가 않다. 선정비를 세울만한 행적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 기록에서 ‘선정’과는 거리가 있는 기록이 보인다. 즉 장흥의 세선(稅船)이 고의로 파손된 일이 있어 부사 이동태가 유배되는 내용이다. 세선은 매년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운송하는 배이다. 조운을 말하는 것이다.

1769년(영조 45) 11월 13일(신묘)에 부사 이동태는 찬배하고 선리(船吏)와 뱃사공[梢工]은 곤장을 쳐서 흑산도(黑山島)의 종으로 삼도록 명하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있다. 이 기록을 풀어 가면서 그 과정을 보자.

임금이 연화문(延和門)에 나아가 사수(死囚)를 친히 처결(處決)한 기록이다. 당초에 장흥(長興)의 세선(稅船)이 취재(臭載)하였다고 보고된 모양이다. 취재(臭載)는 짐을 실은 배가 뒤집혀 가라앉거나, 배에 실은 곡물이 상하여 냄새가 나거나 못쓰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더 자세한 조사가 있었던 모양인지, 선혜청 당상(宣惠廳堂上) 정홍순(鄭弘淳)이 고의로 파선(破船)시킨 것이라고 하여 엄중히 다스려 뒷사람을 징계(懲戒)할 것을 계청(啓請)한 것이다.

선혜청(宣惠廳)은 1608년(선조 41, 광해군 즉위년)에 실시된 대동법(大同法)의 시행에 따라 대동미·대동포·대동전의 등의 출납을 맡은 관아이다. 1608년 경기청(京畿廳)이 설치된 이래 강원, 호서, 호남, 영남청 등의 지청을 차례로 두었다. 아마 호남청의 보고가 당상에게 올라간 것 같다. 그냥 풍랑 등으로 물에 빠진 ‘취재’가 아니라 고의로 세선을 파손하여 물에 빠뜨려 버렸다는 것이다.

당시 임금은 섭이중(聶夷中)의 시(詩)의 ‘쌀 한 톨 한 톨마다 모두 백성들의 고생이 담겨 있다.[粒粒皆辛苦, 립립개신고]’는 것을 외우며 “도둑질하는 것은 그래도 할 말이 있겠지만, 고의로 파선시킨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그만큼 고의 파손은 국법으로 엄중하게 다스렸던 것이다.

‘립립개신고(粒粒皆辛苦)’는 농부의 수고로움과 곡식의 소중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섭이중(聶夷中, 837?~884?)은 중국 당나라 시인이다. 만당(晩唐)의 현실주의 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농촌에서 생활하면서 백성들의 고통을 옆에서 목격하고, ‘씨 뿌리고 거두는 어려움’을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구절은 『고문진보(古文眞寶)』전집(前集)에 있는 이신(李紳, 772~846)의 오언고풍(五言古風) ‘민농(憫農)’에 있는 시귀에도 나온다. 이신도 중국 당나라 문학가이다.

이 같은 임금의 지시에 따라 금부(禁府)에서 조사하여 장흥 부사 이동태(李東泰)를 찬배(竄配)하였다. 금부는 의금부(義禁府)를 말한다. 왕명을 받들어 주로 반역죄, 부모에 대한 죄, 노비의 주인에 대한 죄 등을 지은 자에게 형벌을 내리는 곳이다. 승정원과 더불어 왕권 강화의 핵심 기구이다. 찬배(竄配)는 장소를 정하고 죄인을 귀양 보내는 것이다. 정배(定配)라고도 한다.

그리고 형조로 하여금 선리(船吏)와 뱃사공[梢工]을 조사하게 하였는데, 모두 도둑질하였다고 죄상을 자백하였다. 이같은 경우에는 법전에 참형(斬刑)에 해당되었다. 이에 임금이 마침내 연화문에 나와서 본율(本律)을 적용하는 것이 마땅한지의 여부를 여러 신하들에게 물었다. 신하들은 “이미 실토하였으니, 용서할 수 없습니다.”고 하였다.

이에 임금은 “도둑질한 물건은 오히려 백성들이 먹을 수 있지만, 고의로 파선시킨 것은 비록 혹시 건져낸다 하더라도 물에 잠겼던 쌀을 백성에게 주었다가, 다시 <정곡(精穀)>을 징수(徵收)하는 것은 어찌 잔인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도둑질한 물건은 다시 먹을 수 있지만, 세선을 고의로 파손시켜 물에 잠겼던 쌀을 백성에게 주었다가 새로 쌀로 받는다는 것은 백성들에게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처결의 결과는, 세 죄인은 군문(軍門)으로 하여금 무겁게 곤장을 쳐서 흑산도(黑山島)의 종으로 삼도록 명하였다. 세선의 고의 파손은 참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특별히 죽음만은 면해 주었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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