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장애와 느림 : 공리주의와 능력주의의 바깥
특별기고 - 장애와 느림 : 공리주의와 능력주의의 바깥
  • 장흥투데이
  • 승인 2022.05.0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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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윤정/부산대 사회학과, 조교수

장애/장애인이 공론장과 도시공간에서 가시화되는 것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측면에서 여러 질문거리와 난제를 던진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장애인의 이동권 운동이 제기하는 사회적 난제를 생각해 보았다. 첫째, 최대다수의 행복이란 원칙이 소수성의 정치와 만났을 때조차, 통용될 수 있는 절대적인 원칙인지?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회적 효용을 평가하기 위해 통계와 숫자를 활용하는데, 숫자에 기반한 정치가 이 경우에도 여전히 적합한 것인지? 둘째, 신분제의 철폐 이후 현대사회의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능력주의의 신화가 실질적으로 사회에서 배제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도 유효한 것인지? 마지막으로 점점 가속화되는 자본주의 질서와 도시공간의 속도에서 느림이 무기일 수밖에 없는 이들의 저항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세가지 난제들

첫째 근대 사회에서는 공리주의적으로 사회의 효용, 일반선(general good)을 추구해오는 것이 명목상의 관례로 자리잡고 있다. 권리라는 것은 어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인데, 그것이 타인의 이익 혹은 사회의 전체 이익과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보편성 혹은 다수에 속하지 않은 권리는 단순히 지엽적인 이익으로 인식되어 권리의 언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장애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출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기 시작했다.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 사회에서는 한정적인 자원을 분배하기 위해 통상적으로 효용을 입증하기 위해 숫자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서울의 지하철 엘리베이터 92%의 보급률, 장애인 콜택시 평균 배차시간 32분 등의 숫자와는 달리, 길거리에서 장애인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지하철이 출퇴근 시간에 시위로 인해 멈출 경우 발생하는 비장애인의 불편과 평생 자유로운 이동을 하지 못한 장애인의 고통의 총량은 수치화하고 비교가능한 것일까?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는 이런 숫자를 넘어, 사회정의의 요구에 대해 파악하고 응답하기 위한 것이다. 이후 현대 국가의 관료제는 이를 어떻게 구현가능하게 하는지 논의하고 정치는 이를 감시해야한다. 하지만 곧 여당이 될 정당의 대표는 계산에 능숙한 기재부의 관료처럼 효용과 공리주의적 언변으로, 무정한 현대 관료제의 쇠우리를 뛰어넘어 달라는 문명전환의 절박함 외침에 대응하고 있다.

두번째로 현재 장애인의 저항은 새 정부가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는 능력주의의 바깥을 보여주고 있다. 경쟁에 의해 합리적으로 능력이 입증된 사람들을 선발한다고 하지만, 사회에는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기에 시험장에 갈 능력조차 키울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성인(25-64세) 장애인의 최종학력의 경우 중졸 이하가 31.1%, 고졸 45.0%, 대학 이상 23.9%인 반면, 전체 성인 중 중졸 이하는 11%, 고졸 39%, 대학 이상 51%로 현격한 교육격차가 존재한다. 이동조차 부자유한 상황에서 교육에 기반한 능력을 키우기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들을 정치의 장, 시민의 영역에서 근본적으로 배제하고 외부화한 능력주의의 정치가 민주주의에 부합할까? 우리는 능력과 사회의 자원분배의 개념을 새로이 정의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장애인의 이동권 저항은 정신없이 가속화되는 도시와 자본주의의 속도를 멈추게 한다. 물론 서울은 전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밀집도가 높은 도시이자, 서울의 지하철은 지옥철로 악명이 높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헉헉 속도를 내며 살아가기에 이 멈춤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의 시위들은 우리의 도시환경에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드러냈다. 이 사람들이 사회성원으로 정당하게 인정받게 된다면, 숨찬 도시의 속도는 빠름과 느림의 공존으로 다원화될 수 있다.

이자벨 스탱게르스라는 과학철학자는 현재 사회에 대한 가장 근본적 저항은 일반선의 이름으로 소수의 정치를 억눌러온 억압에 대한 저항, 가속화하는 사회 질서에 대한 저항인 느린 운동이라고 한다. 느림의 충격과 저항은 숨가쁜 능력주의의 틈새(interstice)를 가까스로 벌리어, 기존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원칙과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문명 전환기, 새로운 정치의 성공은 바깥과 느림의 저항에 대한 응답능력(response-ability)에 달려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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