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태의 인지의 즐거움(1) 구름 같이 깊은 전각속엔 장엄한 철불
김희태의 인지의 즐거움(1) 구름 같이 깊은 전각속엔 장엄한 철불
  • 장흥투데이
  • 승인 2022.06.2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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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사를 찾은 사람들6 담헌 이하곤과 남유록
김희태 전 전남도문화재 전문위원
보조선사 창성탑

 

 

 

 

 

 

 

 

 

 

 

 

 

 

 

 

 

 

 

 

 

 

 

현장을 보는 듯한 이하곤의 시

조선후기의 문인학자인 담헌 이하곤(澹軒 李夏坤, 16771724)2,000여수의 시를 남기는데, 보림사 기행시는 11수에 이른다. 1722년 월. 보림사를 찾은 문인들로서는 가장 많은 시를 남겼다. 그리고 일종의 문화유산 답사기인 <남유록(南遊錄)><남행집(南行集)>이라는 기행기록도 남긴다.

이하곤의 시는 창건 연기설화를 담고 있으면서도 중문, 천왕, 철불, 보조비석 등 각각의 성보문화유산도 바로 눈앞에 있는 듯 읊고 있다. 많은 유가 문인들의 제영이 있지만 이처럼 사실적으로 풍광을 읊은 경우도 많지 않다. 그리고 철불이 층각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어 조선초기 절집인 대웅전과 관련이 있을 듯 싶다.

담헌의 시 2편을 <보림사>(최인선김희태양기수저, 장흥문화원 발행, 학연문화사, 2002)에 번역 소개한 바 있는데, 그때는 필자가 어설프게 번역을 해 본 것이었다. 번역은 또 다른 창작이라 했는데 어줍잖게 손을 댔던 것. 당시 한시(漢詩)를 전공하는 최한선 학형(담양대)에게 부탁을 해서 깔끔하게 다듬어진 번역문이 손에 들어 왔는데, 마지막 교정을 앞두고 그만 병원에 실려간 신세가 되었다. 미처 손을 쓰지 못하고 필자의 번역문이 그대로 인쇄되었던 것이다. 이와 함께 몇가지 오류도 바로 잡지 못했다. 재판을 간행하는 날 반영하리라 다짐해 둔다.

보림사 寶林寺

절집은 이미 서역처럼 우뚝한데 伽藍已與西竺並

경이로운 유적 보조스님 때부터 남아있네 異蹟曾從普照存

법력으로 밤사이 연못을 절터로 바꿨더니 法力夜翻潭窟改

오래 살던 용이 피하느라 떠들썩 老龍潛遁雷雨喧(노룡잠둔뇌우훤)

중문의 땅 빛 검고 천왕상은 고색창연 重門地黑天王古

구름 같이 깊은 전각속엔 장엄한 철불 層閣雲深鐵佛尊

신라 때의 비석은 아직도 뚜렷한 곳 羅代有碑今尙有

석양 받아가며 이끼 속의 글을 읽네 夕陽來讀抉苔痕

명산 중에 최고는 천관의 경승이요 名山最說天冠勝

소문난 보찰은 가지산의 대웅전일세 寶刹曾聞迦智雄

두 곳을 장흥에 함께 갖췄다더니 二者長興兼得有

이제와 보자 하니 말 그대로 이구나 今來所見略相同

천근의 철로 비로부처님을 주성했고 千斤鐵鑄毗盧像

칠척의 비에는 보조선사의 공을 새겼도다 七尺碑鐫普照功

방문하여 살펴보니 크고 큰 절이로다 看取南僧豪富甚

정성으로 이룬 도량 지상의 천궁일세 敉成佛地似天宮

담헌 이하곤은 17221123, 일찍 출발하여 보림사를 향한다. 정몽설(鄭夢說)과 조만우(趙萬瑀)가 동행한다. 대암령(大巖嶺, 장흥군 유치면 오복리), 율현[밤재]을 지나 남여를 타고 보림사에 이른다.

1124일에는 보림사 곳곳을 답사한다. 80여세 되는 부도암의 계순(戒淳)과 선지(禪旨)를 논하고 시를 짓기도 한다. 그리고 병영으로 돌아간다.

보림사의 신구 불전과 용자각, 천자각, 불자각

담헌 이하곤은 이 시기 즉, 17221123일과 24일에 보림사 관련한 시 11수를 짓게 된다. 그리고 기행일록상의 몇 군데를 살펴보면, 그의 답사기행기록에 대한 사실성을 엿볼 수 있다. 다음 기록을 보자.

*1123: [전략] 율현[밤재]을 지나 여물물 줄기를 따라 동쪽으로 조그만 고개를 넘어 북으로 꺽어 몇 리를 가니, 남여승(籃輿僧)이 이미 와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바로 남여에 올라 천천히 동네 구렁 가운데의 아늑하고 깊은 곳을 지나가는데, 오래된 소나무들이 그윽하고 울창하다. 시냇물이 흐르다가 가끔 웅덩이를 이루기도 하는데, 이곳이 예양강(汭陽江)이 발원하는 곳이다. 좌우를 살펴보며 감상하다 보니,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절에 이르렀다. 제도와 규모가 지극히 웅장하고 화려하다. 사중문(四重門)을 지나 동서로 각각 긴 낭요가 있는데 스님들이 식사하는 곳이다. 새 불전과 옛 불전(新舊佛殿) 모두 층각으로, 높이가 수백자인데 쇠 2천 여근을 사용하여 주조한 비로상(毘盧像)을 구전(舊殿)에 안치했다. 스님이 말하기를 신라시대에 조성한 것이다고 했다. 그 건물이 화려하고 아름다워 쌍계사나 대둔사 보다 훨씬 낫다[후략].

*1124: 걸어서 동쪽 요사채에 이르니 책 읽는 소리가 문밖까지 들리는데 장흥의 유생(儒生) 몇 사람이 와서 막 묵고 있다고 한다. 또 천천히 북쪽으로 한곳의 원()에 이르니, 창문과 벽을 새로 발라 눈처럼 깨끗한 것이 한점의 티끌도 없다. 주승(主僧) 숙객(肅客)이 들어와 부들로 만든 자리에 앉아 대좌했으나 맘이 잘 통하지 않아 서먹했다. 부도암의 승려 계순이 마침 왔기에, 그와 함께 선지를 말해 보니 자못 아는 것이 있었다. 나이는 80여살인데 용모 또한 그리 늙어 보지 않았다.

*돌아와 남쪽 요사에서 식사를 하고 또 걸어서 용자각(龍子閣)에 이르렀다. 그 동쪽에 다시 천자(天子), 불자(佛子) 두개의 불각이 있는데, 낮은 담으로 둘러쌌으며, 대나무와 수목이 뜰을 가려 덮고 있었다. 승려들은 모두 사립문을 닫고 조용하게 거처하고 있어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문을 열고 살펴보니, 방이 밝고 깨끗하고 좋아, 사람으로 하여금 머물고 싶은 생각나서 떠나고 싶지가 않았다. 남여를 타고 절의 문을 나서 흙으로 쌓은 돈대에 이르렀다. 위에 고목 몇 주가 서 있으며, 앞에다 네모난 못을 파놓고 산에 있는 샘에서 물을 끌어 댄다.

*보조선사비에 대해서 물으니. 팔상전 남쪽에 있다고 했다. 다시 남쪽 요사로 들어가서 또 동쪽으로 꺽어 하나의 작은 문을 지나니, 문안에 비석이 있는데 길이가 7자 쯤 된다. 이두(螭頭)와 귀부(龜趺)는 제작기술이 오묘하고 정교하다. 비석에 새겨져 있기를 문림랑 수 영변부 사마 사비의대 김영이 교지를 받들어 지었고, 유림랑 수 무주 곤미현령 김원이 교지를 받들어 쓰다고 되어 있다. 모두 신라사람이다. 신라는 당나라 관제를 모방했기 때문에 사비어대라는 명칭이 쓰여져 있는 것이다. 비석 동쪽 수 십보 지점에 층탑이 있는데, 그 아래에 보조선사의 사리를 안장했다. 사면에 불상과 천왕을 조각했으며, 주위에는 돌로 만든 난간을 둘러 쳤는데, 또한 숙련된 장인이 조성한 것이다. 사기(寺記)절터(寺址)는 옛날에 연못이었으며,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다. 보조선사가 신부(神符)를 던지니 용녀(龍女)가 스스로 못에서 나와 보조에게 절을 하며 살 곳을 마련해 달라고 청하여 절을 지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 절의 승려들은 용녀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하는데, 그 화상(畵像)을 보니 아마도 근일에 솜씨 없는 장인이 그린 것 같다[후략].

<남유록>의 기록처럼 자연풍광과 문화유산, 그리고 인물들에 대한 현장과 느낌에 대해 치밀하면서도 진솔하게 기록하고 있다. 보림사 관련하여 11수의 시가 있는데, 그 가운데 2수를 소개해 본 것이다. 이 시기 즉 18세기 초에는 보림사에 동서로 긴 요사가 있었고, 용자각과 천자각 그리고 불자각의 건물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보조선사탑이 문안에 있다 하여 비각이 있었음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탱화에 대한 평가도 곁들였다.

*김희태, 보림사를 찾은 사람들, <장흥문화> 25, 장흥문화원, 2003. 8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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