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다 자기 소리를 내지르게 됩니다. 우리 인간이 태어날 때 응아, 하고 소리치듯 자기 목소리를 내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존재하는 부류에는 늘 깨어있는 사람과 깨어있지 않고 잠을 자거나 계속 취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깨어있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이 아무리 더러워도 상관하지 않고 자기 가족들만 잘 살면 돼, 하고 부정한 세상에 대해 전혀 상관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장흥투데이 김선욱은 깨어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기에 저는 이 사람을 좋아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언론이 있지만, 그 모든 언론들 중에는 어떤 신문은 주로 왼쪽 눈이 먼 신문, 또는 오른쪽 눈이 먼 신문이 있습니다. 즉 왼쪽 눈을 가진 좌파적인 언론과 오른쪽 눈을 가진 우파적 언론으로 대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신문은 왼쪽 눈만 뜨고 오른쪽 눈을 감습니다. 또 어떤 신문은 오른쪽 눈을 뜨고 왼쪽 눈을 감습니다. 이들 언론들은 대개 한 마디로 ‘애꾸 신문’인 것입니다.
또 어떤 신문은 아토피 환자 같은 신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토피, 옴 같은 것에 걸리면 가렵습니다. 긁어야 시원해집니다. 그런데 긁고 나면 더 화끈거리며 아프고, 그 가려움이 잠시 잦아지다 다시 가려우면 이때는 더 팍팍 긁어야 시원해집니다. 이처럼 아토피 환자같이 미친 듯이 긁어대기만 하는 언론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장흥에도 그런 부류의 신문이 보입니다. 그러나 김선욱 편집인은 그런 아토피 환자 같은 언론인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담론을 이야기 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의 눈을 깨어있는 눈을 가집니다.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깨어있지 않은 눈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깨어있는 눈으로 여러분의 자서전을 쓰십시오. 자서전을 쓰는 동안 늘 깨어있는 영혼으로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언론인으로서 김선욱의 글은 그야말로 담론(談論)입니다, 어떤 내용의 담론이야? 장흥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할, 꼭 논의해야 할 담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제 말이데, “글을 쓰는 한 살아있고, 살아있는 한 글을 쓸 것이다”라고 다짐합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이냐? 글을 쓰는 것은 작가적인 생명력이고 그냥 살아있는 것은 생물학적인 생명력인데, 이것들은 수레바퀴 2개와 같습니다. 같이 굴러가야 존재하는 것입니다. 작가적인 생명력이 끝나면 다 끝나는 것이고 생물학적인 생명력이 끝나도 다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생명력이 함께 존재해야 합니다.
김선욱 편집인도 벌써 칠순인데, 오래도록 건강하면서 깨어있는 글도 오래도록 쓸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다시 말해 이 두 가지 생명력을 오래도록 유지해서 오래도록 깨어있는 글을 쓰는 작가, 시인으로 여생을 살아가길 당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