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암자 승탑엔 든문, 난문이 있다
야천 이정호/시인
스님,
저 사리탑에 자물쇠는 왜 채운답니까?
바람 한 점 드나들 수 없는 돌 문비(門扉)에 세월 때꼽 고스란히 묻혀있는 문고리는 동그랗고
연봉 자물쇠가 닫힌 이후 열린 적 없는 사연을 외려 스님은 날 더러 알아보라 하시네 삶을 닫고 죽음이 열리는 이 자리에서 죽음을 닫고 또 다른 삶이 열리는 이 탑에서 둔중하게 닫힌 이 세상에 열쇠마저 잃어버린 날을 살아왔다는 걸 저 탑 꼭대기 옥개석이 하늘에 떠 있다는 걸 아는 이 순간까지도 나는 습관처럼 철조망 치고, 울타리 담장은 더 높이고 밤마다 알카트라즈보다 견고한 감옥을 지었다.
스님,
저 사리탑 뒤쪽에 풀어진 자물쇠는 또 뭐랍니까?
동에서 해가 뜨면 살아나고 북으로 해가 지면 죽어나다가 어느 날 아예 해가 뜨고 짐이 없을 땐 동으로 들어와 이승을 걸어 잠그고 북망산천 가려면 전생을 풀고 다시 가야지요 비밀스런 자물쇠 풀리고 석문 열리는 날 문고리 열고 화엄세상 열리는 날 해탈문은 열리지 않겠는지요
뒷산 좌불되신 달마대사 가사 자락에 놀 빛 붉게 물들일 때면 벌떡 일어나 돌탑 속으로 지잉-징 징소리 흘려 주시는데 이 돌 주인은 참 명도 길지요? 아직도 살아서 어둑어둑한 나를 다독여 주시니
스님, 智宛스님
햇볕에 놀았으니 달빛에 취해야겠습니다
오늘은 노래 한 곡조 뽑으세요
“님은 먼곳에”
염화 부처님 귓불 붉으레지게요
천년 슬픔은 굳어 돌이 되고
다시 깨어져 아픈 탑 귀퉁이에서 파드득
새 한 마리 날아올라 조각달이 된다.
*보현암자 : 보물 156호로 지정된 두기의 고려시대 승탑(서승탑)을 간직한 보현암은 보림사에 속해 있는 암자이다.
*이 시는 지난 10월 30일 보림사 뒷편 보현암에서 봉행한 ‘불화점안·암자현판제막식’에서 낭송한 시다.(이날 보현암의 ‘불화점안·암자현판제막식은 점안식 외에 사찰음식 전문가와 함께하는 중식공양체험, 보림다향차 시음 등이 열리기도 했다).
*서예가로 야천서예연구원을 운영하고 있는 시인 이정호는 2022년 6월, 문학전문지 계간 <문예운동>(154호) 여름호에서 시 신인 추천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