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암 김재계-한평생 항일민족운동 외길 걸었던 선각자
성암 김재계-한평생 항일민족운동 외길 걸었던 선각자
  • 전남진 장흥
  • 승인 2018.10.26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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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인물(7)/독립투사 성암 김재계(城庵 金在桂)(상)
1919년 3월 15일~4월 1일 장흥 독립만세운동 주도하다

장흥 독립운동 모급 전개 앞장, 학술강습회 개설도 주도

장흥의 대표적인 항일독립운동 지사는 성암 김재계(城庵 金在桂 1888년<고종 25>∼1938년) 선생이다.

일제강점기 때 선생은 한평생 독립운동에 투신한 공을 인정받아 국가는 1991년 ‘건국훈장애국장’을 후손에게 수여했다. 선생의 묘소는 억불산 기슭에 있는데, 해마다 묘소 앞에서 선생의 독립정신과 공훈을 기리는 추도식이 거행된다. 올해도 4월 22일 환원(還元) 76주년을 맞아 ‘성암 김재계 선생 63주기 추도식’을 거행한 바 있다.

성암은 1888년 4월25일, 장흥 회진면 신상리 205번지(당시 대덕면大德面)에서 농민 김규현(金圭炫) 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김규현은 천도교인으로서 1894년의 동학농민 전쟁시 석대전투에 직접 참전하였다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부지한 인사였다.

성암은 7세 때 부친을 따라 동학농민군의 활동과정을 직접 목격하였는데, 이것이 이후 그의 사상형성에 큰 요인이 되었다.

■15세 때 천도교 입교

유소년 시절 성암은 서당에서 한문교육을 받았는데, 이때 신동(神童), 재동(才童)이라고 불리어졌다. 성암은 1902년 4월 5일 15세 때 천도교에 입교하여 천도교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보다 더 넓은 세계를 알기 위해 17 세이던 1905년 4월5일 상경하였다. 천도교 제3세 교조였던 손병희로부터 사사받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손병희는 당시 일제의 핍박을 피해 일본으로 도피해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손병희와 조우는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서울에서 천도교 중앙 간부들과 만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성암은 서울에서 활동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으로 바로 귀향하였다.

장흥지방에 천도교 조직이 개설된 것은 1906년 4월 7일이었다. 이때 장흥 천도교는 장흥군 부내면 교촌리에 원(原) 5칸, 랑(廊) 4칸의 초가집에 교구실을 연 것이다. 서울에서 귀향한 성암은 장흥 천도교에서 교훈(敎訓)으로서 활동하였다. 교훈은 일반 신도들 중에서 활동력이 강하고 신앙심이 깊은 인사들로 이루어진 직위였다

1909년 2월 천도교 중앙총부는 서울에 사범강습소를 설립하고 일반 교도 중에서 청년들 213명을 선발, 체계적인 천도교 학습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는데, 장흥 교구에서는 김재계, 박종우, 최홍룔 3인이 참여하였고 이를 통해 성암은 이후 천도교 활동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장흥·전남지방의 대표적인 천도교인

▲안양면 억불산 기슭의 김재계 선생 묘소
▲안양면 억불산 기슭의 김재계 선생 묘소

성암은 1911년 23세 때부터 성암은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1911년 7월 10일 성암은 장흥교구의 금융원·강도원·공선원 등의 직책을 두루 거치게 되었고, 1913년 그의 나이 25세때 장흥교구장을 맡게 되었다.

이후 1916년 개편에서 강도원으로 임명된 성암은 ▶1917년, 1918년, 1919년, 1920년, 1921년 개편에서 5년 연속 교구장과 강도원으로 임명되는 등 장흥교구에서 주요 핵심인물로 활동하였으며 ▶1921년 8월 7일 장흥, 완도 고흥 3개군 대표 의정원장(3개군 대교구장격) 선임됐고 ▶1922년 6월 10일, 중앙교헌 기초아 예산을 집행하는 ‘교인대회 대표위원’에 전남도 대표위원 역임- 전남지방의 청도교 대표 자격 ▶1922년 11월 15일-종법사 종의원 24명중 장흥,완도, 강진 3개군 대표 종법사에 피선 등 장흥지방 및 전남지방의 천도교 대표적 역할을 담당하는 천도교의 주요 핵심인사로 자리매김 되었다.

성암이 중앙으로 진출, 천도교월보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던 1920년대 중반까지 장흥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인 성암에게 항일민족운동과 관련한 대표적인 활동은 3.15만세운동과 독립운동 자금 모금, 사설학술강습회 성립운동(현 명덕초등학교 전신) 등이었다.

■장흥 3월 15일 만세운동 주도하다

당시 장흥에서 3.1만세운동은 천도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1919년 3.1운동은 없었지만 3,15 만세운동 등 3,1동 이후 독립만세운동은 천도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천도교 중앙총부 삼임위원이었던 장흥출신 신명희로 인해 소식이 빨리 중앙의 소식이 빨리 전달되어 3.1운동 전 해이던 1918년부터 장흥 천도교인들은 이미 독립기원 49일 기도를 가지기도 하였다. 특히 장흥교구장 성암은 군내에서 모았던 독립운동 성금 500원을 가지고 1919년 3월 6일 상경, 전달하기도 하였다.

장흥의 경우, 장흥교구장 성암은 황생주, 황성엽 등과 비밀모임을 갖고 만세운동을 3월 15일로 잡고 준비를 갖추었다.

당일 장흥장터에서 김재계, 김재반의 신호로 만세를 부르기 시작하자 삽시간에 수백 명의 천도교인들과 군민들이 모여들며 만세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만세운동 개최일이 서울보다 15일씩이나 늦었기에 일본 헌병과 경찰들의 정보망에 이미 3,15 만세운동에 대한 정보가 포착되어 있었던 데다 갑오동학농민전쟁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가 당시까지도 장흥지방에 남아있었기 때문에 일반 민중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작아 3.15 만세운동은 쉽게 진압되어버렸다.

그러나 당시 장흥면을 제외한 용산, 안양, 장동, 장평, 유치, 부산, 관산 등 7개 면에서는 4월 1일까지 만세운동이 계속된 것으로 밝혀졌다(3월 20일 대덕면에서 만세운동-수백명 참여, 4월 1일-용산, 안양 장동, 장평 유치, 부산, 관산 등 7개면에서도 만세운동).

장흥의 3,4월 만세운동으로 구속된 인사는 17명이었고, 이중 실형을 받은 인사들은 김재계를 비롯하여 10여 명에 이르렀다.

■국권 회복 위한 사설강습회 설립추진

▲2018년 4월 22일- 김재게 선생 제76주기 추념식 및 학술대회를 마치고
▲2018년 4월 22일- 김재게 선생 제76주기 추념식 및 학술대회를 마치고

한일합방을 전후, 민족의 선각자들은 전국 곳곳에 학교를 세워 국권회복 운동의 일환으로 교육을 부흥시키기 시작하였다. -당시 장흥지방에는 1905년 장흥의 명진학교(장흥초교 전신), 1918년 장평공립학교(장평초교 전신), 1924년 대덕간이학교, 1930년 덕도 간이학교가 살립되어 있었다.- 이러한 시대상황에 맞추어 성암도 장흥 대덕면(현 회진면) 신상리에 사설 학술강습회 개설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였다. 덕도가 도서지역으로 교통이 불편하여 덕도를 중심으로 청년아동을 교육할 기관이 필요해서엿다.

1921년 12월 7일부터 시작된 사설강습회는 1922년, 1923년에도 계속되었다. 강습의 과목은 수신, 산술, 국어, 한문, 조선어였고, 수강생은 8세부터 20세까지를 대상으로 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이러한 강습소의 설치를 갖가지 이유로 불허했다. 이에 장흥지역 주민들이 134명의 연명으로 진정서를 제출, 설치를 시도하였지만 이것마저도 불허를 당하기에 이르자 1928년 서당으로 개명하여 설립을 신청하여 1930년에야 ‘양영서당’의 개설을 인가받았다.

1933년 덕도에 공립학교가 설립됨으로써 양영서당은 폐지되면서 양영서당은 대덕 공립보통학교 부설 덕도학교로 편입되었다(현재의 명덕초등학교 전신)

1925년 성암은 서울과 장흥을 오가면서 천도교회 월보 편집위원으로서 메무 적극적이고 맹렬한 활동을 펼쳤다. 성암이 당시 천도교회 월보에 발표한 글들은 오늘날까지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러한 활동 와중에서 성암은 중앙의 재정문제 고갈을 해결하기 위하여 그리고 장흥 천도교의 발전을 위해서 10월 26일 장흥천도교에서 성미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모금 운동을 전개하여 장흥지방에서만도 은·동장(銀銅章)을 기증한 사람이 245명이나 되었다.

이 자금이 단지 천도교의 재정에만 충당되는 것이 아니라 독립자금으로 전용되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다음호에 계속>

▲2018년 4월 22일- 김재게 선생 제76주기 추념식 및 학술대회를 마치고

▲안양면 억불산 기슭의 김재계 선생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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