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모 교사의 소고 - 김두석 전 교장과 질긴 인연에 대해
스승의 날 모 교사의 소고 - 김두석 전 교장과 질긴 인연에 대해
  • 전남진 장흥
  • 승인 2018.06.0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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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석 선생 - 20세 소년교사로 시작하여 45년간 교직, 교도소재소자 교화위원, 각급 학교예절지도
다문화 여성교육, 장애인교육,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는 노인대학과 유교학당에서 일본어 교육 강사로 봉사하다

글-김재열(전) 교장

‘스승의 날’이라고 지금의 80세의 제자가 당시 20세였던 교사였던 나를 찾아왔다.
스승의 날이 제정된 지 근 60년이 지났건만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오늘도찾아온 제자였던 김두석이 올 것이라 생각한대로 찾아왔다. 기특하기만 하다.
나에게 세삼 교육력을 재생시키기는 보약이기도 하다, 오늘이면 강원도 인제에서 거르지 않고 문탁의 전화와 서울에서는 이명자가 부산에서는 최융희의 전화도 있을 것이다.
비정기적이지만 위광우, 김재철의 전화도 있을 것이니 기이한 일이어서 옛날이 회생된다.

호랑이 같은 교사였는데! 제자였던 80세 김두석이 90세인 나를 찾으니 옛날이 재생된다.
1948년(미군정시이며 단군 연호를 통용했기에 단기 4281년) 3월 1일 20세의 소년 교사로 장흥남초등학교에 착임하였었다.
교사의 소양도 전무하려니와 교사가 되려는 생각도 전혀 없었다. 광복이 되자 교육 입국의 기치 아래 각급 학교가 급작스럽게 늘어나 교사 부족이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외국에서 귀국한 젊은이들이 졸업 사진만 있어도, 중학교 교복 차림의 사진만 있으면 한국어가 낯설고 한글을 몰라도 간단한 채용 심사로 교사로 임용되었다.

10급 4계단 준교사로 2,700원의 봉급을 받았었다. 중학교 졸업의 학력만으로 귀한 교사가 되었으니…. 배우며 가르치는 교사생활의 나날이었다. 체육시간에 “우향우”로 구령하는 교사가 있는가하면 “오른쪽으로 돌아”로 구령하는 교사가 있었으며, 진달래와 철쭉을 구분도 하지 못하는 교사들이 있었으니 학습방법도 전무하여 일정 시 일일 교사들에게 학습받던 경험 기억이 학습지도 방법인 양 교사생활을 회상하면 씨익, 웃음이 난다.

제자들이‘선생님’하고 부르면 부끄럽기만 하다.
교육학의 이론, 학습 지도의 미숙은 말할 수 없었으나 제자들의 이름과 제자들과 나누었던 정겨웠던 생활의 기억만은 천상스럽게 남아있다. 답지 않은 교직생활로 엮어진 나의 교직생활이였는데 더러는 그 교사를 오늘날까

지 잊지 않고 있음은 그 제자들의 오류일 것이리. 아니 사제 간의 정 때문이기도 하리.
김두석은 영특함과 학구력을 지니고 하필이며 교직을 택했을까? 그는 현재에 불만성이 있으며 과격한 성품의 동일성은 나와 같으나 합리적이며 학구적인 영특한 제자였는데…. 물에서 언 얼음은 물보다 더 단단하다고 했던가? 그와 나는 교직생활의 거의 전부를 장흥에서 봉직하면서 둘이의 생활은 좀 동일한 점이 많았었다.

어려서는 스승과 제자로, 함께 평교사로, 교감과 교사로, 교장과 교감으로, 함께 교장으로. 내가 군민의 상 교육문화상을 받자, 그런 나를 이어 그가 받았다. 또 장흥인재육성장학회장을, 교도소교화위원을, 도서관운영위원장을, 노인대학장을, 다문화교육원장을, 항토연구위원을, 장흥향교전교를 나의 후임으로 맡으며 나를 보완하고 힘을 더해 주고 했었다.
스승의 날을 접하니, 새삼 뉘우침도 많다. 삼무삼다(三無三多)로 살아왔음을, 삼무(三無)는 무식하고 무능하고 무명인을 뜻한다. 삼다(三多)는 못 배운 것이 너무 많고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배우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 둘이는 조상의 숨결 속에서 자랑스럽게 살자고 서로 격려도 하여 본다.
나는 교장으로 한혼양재(韓魂洋才) 즉 “한국 사람의 혼을 지니고 서양 사람의 재주를 배우자”고 바램을 걸 때 그는“고운 심정 위에 바른 지식을 쌓자”고 걸며 공부하는 교원 실력 있는 어린이의 새로운 시설을 짓자며 서로 부르짖었다.

김재열선생과 인연이 깊었던 김두석 선생
김재열선생과 인연이 깊었던 김두석 선생

 

장흥교육이란 큰 나무의 작은 나무 가지가 되자고 우리는 다짐할 때 교육 행정이 불합리할 때면 직책의 고하를 불문코 항명 항쟁도 불사했었다.
내가 어느 학교 교감 직에 있을 때였다. 장학지도라고 어느 장학사가 나이 많은 우리 교장에게 너무 과격한 언사를 쓰기에 나도 극단적인 언사와 손찌검을 했었다. 교직원들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니 겁에 질려 벌벌 떨 때 그는 “선생님 잘했습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얼마나 흐뭇했던가. 나는 마음속으로 ‘역시 너야’시끄럽게 수습했다. 역시 “너는 훌륭해”했다.
그는 동직에 있으면서 나를 교감이니 교장이니 부른 적이 없었다. 선생님하고 부르는 것이 정겹기만 하다. 오늘도 선생님하고 부름이 옛 그대로니, 세상을 내다보는 눈이 어쩌면 그렇게 같으며 같은 일을 하면서 고차원적이며 합리적으로 나를 도와준다. 어쩌면 현명한 동반자이며 장흥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다.

“두석 군! 넌 아직 80이니 젊었어!”
장흥은 버려진 땅이 아니라 아껴놓은 땅이야!
장흥인의 넋을 심어다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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