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의 문학, 문학의 정치-녹두장군’(3)
‘개벽의 문학, 문학의 정치-녹두장군’(3)
  • 장흥투데이
  • 승인 2022.12.29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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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순천대 교수

미학의 개벽, ‘문학의 정치’

그의 소설쓰기는 랑시에르가 말한 ‘문학의 정치’를 온몸으로 구현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의 정치’는 문학이 시간들과 공간들, 말과 소음,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등의 구획 안에 문학으로서 개입하면서, 실천들, 가시성 형태들, 하나 또는 여러 공동 세계를 구획하는 말의 양태들 간의 관계속에 개입한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정치행위는 감성의 분할을 새롭게 구성하게 하고 새로운 대상들과 주체들을 공동 무대 위에 오르게 하는 것이고,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이게 하며, 킁킁대는 동물로 취급되었던 사람을 말하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송기숙의 <녹두장군>이야말로 랑시에르가 언술한 ‘문학의 정치’에 의해 실현할 수 있는 가장 궁극의 정치행위 그 자체였던 것이다.

고부의 보잘 것 없는 사람들로 치부되었던 노비 출신의 만득과 유월례, 강쇠와 같은 인물들, 절름발이 김판돌과 곰배팔이 설만두, 기생으로 팔려갔던 연엽, 이 땅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했던 소수자와 여성들이 고부민란으로부터 시작된 인내천의 세상, 사람이 하늘로 추앙받는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개벽의 세상을 위해 실천하는 투사의 모습이었다.

랑시에르가 강조한 “인민의 삶을 감성화하는 것”으로서의 새로운 예술의 양태를 송기숙의 <녹두장군>에 등장하는 수많은 설화와 민요, 판소리 등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녹두장군>은 민중의 예술적 양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소설에 도입함으로써 기존의 소설쓰기, 문예양식과 미학체계에 균열을 가하고 새로운 충격

정호웅은 <녹두장군>이 민중적 예술 양식인 판소리 형식을 창조적으로 계승해내었는데, 판소리 사설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여 어떤 사실의 되풀이 또는 덧붙이기의 방식으로 한 판 말놀이의 축제, 말놀이의 재미를 드높임으로써 그들의 말잔치에 연극적 입체성을 부여, 송기숙은 <녹두장군>에서 기존의 판소리 양식과 주제에 대한 민중들의 혁신적인 의식의 단층을 제시했다.

<녹두장군>에 드러난 ‘문학의 정치’는 기존의 자리, 점유, 직무에 부합하는 존재방식에 따라 정의되는 치안의 논리를 넘어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단어와 사물들 사이에 틈을 만들어내는 정치의 논리에 충실한 바, 기존의 언어와 예술 체제, 미학적 양식에 균열을 가하고 새로운 해방과 개벽의 미학을 지향했다.

기존의 칸트미학에 입각한 순수형식 미학주의자들의 창작 방식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소설쓰기를 송기숙이 시도한 것이다.

식민지시대로부터 기원하는 기존의 순수미학 양식에 대한 균열을 가하였다는 점에서 송기숙의 미학이 선취했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미학체계와 예술양식을 깨뜨리고 새로운 미래사회를 열어나가기 위한 새로운 방식의 소설쓰기와 미학의 거점을 확보하고 제시했다는 점에서 송기숙의 소설쓰기를 개벽의 미학에 비견된다.

문학주의가 전면화되어 있는 현단계 문단의 흐름 속에서 본다면 문학성을 포기한 채 정치성을 전경화시킬 작가나 시인은 없을 것이다.

남은 문제는 ‘문학의 정치’=> 기존의 사상이나 가치에서 답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예술에서 문학에서 새로운 미래 사회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부조리한 현실의 개벽을 위해 문학적 행위를 통해 개입하는 것이 바로 문학의 정치화이다.

젊은 평론가의 “문학이 문학다워야한다”는 발화의 이면에는 문학의 미학적 완결성에 대한 지나친 강박이 내재한다. 순수 형식에 경도된 미학과 문학교육이 우리의 의식과 감성에 내면화된 결과이기 때문일 것이다.

랑시에르는 미학적 타율성을 부정하지 않는데, 미학적 타율성이란 예술의 삶-되기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예술의 독특하고 자율적인 경험이 순수예술의 영역에 유폐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영역으로 들어가 삶이 되는 운동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 점에서 송기숙의 문학이야말로 미학적 타율성에 충실한 것이었던 바, 그것은 바로 송기숙의 문학이 문학 그 자체의 영역을 넘어서 당대 사회의 정치 사회 제반 의제에 대한 문제제기이면서 기실은 그의 삶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의 문학이 문학을 넘어 사회현실을 포획하면서 동시에 그의 삶 자체였다는 점에서 <녹두장군>은 랑시에르가 언명한 ‘예술의 삶-되기“의 전형이 되는 작품

송기숙은 기존의 순수미학에 침잠해있는 당시 문단권력과 그러한 미학체계를 숭배하는 시인 소설가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가상의 미학체계, 허구에 매몰된 자본주의 인식체계에 대항하여 구체적인 삶, 실제에 다가서도록 송기숙의 <녹두장군>은 우리를 자극하고 독려한 것이다.

“문학의 사회적 소명만을 강조하는 목소리에 대해 그것만이 문학의 목적인가라고 첨언하는 소리, 문학의 효용성도 중요하지만 문학의 미적 완결성도 필요하다는 소리”야말로 현실의 부조리함에 비견하면 너무나도 한가한 소리일 것이다.

도깨비가 판치는 세상에서 도깨비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기란 얼마나 힘든 일일 것인가? 지금 우리는 도깨비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제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처한 역사적 현실 속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그것을 성실하게 실현하는 일이겠고,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러한 존재의 가장 적극적인 발현이라 생각한다. <중략> 문학의 사회적 기능은 도깨비가 도깨비인 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을 그것은 도깨비의 삶이라고 깨우쳐 주고 서로가 도깨비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일 게다. 도깨비가 세상에서 활개를 치고 도깨비들이 세상에서 득세를 할 때 작가의 사회적 사명은 그만치 커지 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때 문학의 목적이 어디 그게 전부더냐는 소리는 한가한 소리라고 생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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